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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로열 패밀리 / 이한영 저

이문경 (판) 2007.08.16 08:44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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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이던가, 1997년 초던가 북에서 파견한 공작원에 의해 총격 피살당해 당시 크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었던 김정일 친외조카 고 이한영씨의 수기이다.

 

젊은 시절 김정일은 유부녀로 딸을 하나 두었던 5세 연상의 남한 출신 월북배우 성혜림을 좋아하게 되어 아버지 김일성 몰래 동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성혜림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낳고 실질적으로 부인 역할을 한다.

 

성혜림의 친언니 성혜랑의 아들이 바로 이한영(본명 리일남)씨다. 엄청난 부 - 김정일은 생일이면 정말로 한달전부터 전세계에서 선물을 공수해 백만달러 가까운 돈을 김정난 선물 구입비로 썼다고 한다 - 와 과보호속에서 그러나 할아버지인 김일성에게도 그 존재를 숨겨야 할 정도로 (김정남이 다섯살이 될때까지 김일성에게 보고를 안하고 숨겼다 한다) 몰래 자라야 했던 김정일 장남 김정남의 가장 가까운 사촌형이란 신분으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 된 리일남이 직접 체험한 김정일 가족의 비사는 상상 이상이다.

 

인민들에겐 끝없는 김부자에 대한 충성과 자주를 강조하고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수용소행이면서 정작 남한의 온갖 드라마, 영화, 가요등에 빠져 파티때면 남한 가요 일변도인 김정일과 그 측근들의 실상이며 사치의 극치를 달리는 내막에 대해 생생히 기술하고 있다.

 

두세살때까지 김정일은 김정남을 밥먹을때 식탁에 올려놓고 먹을 정도로 귀여워하고 그야말로 옛왕족 못지 않게 엄청난 외화를 써가며 호강시켰다고 한다. 그 정남의 보호자 겸 형으로 리일남도 엄청난 특권을 행사하며 북에서 최고의 권력과 부를 누리며 자랐다.

 

교육차 정남이 스위스 최고급 사립 학교로 간 후 리일남은 모스크바등에서 유학을 하고, 평양을 벗어나 모스크바, 체코등을 다니면서 북한이 얼마나 가난하고 폐쇄적인가를 체험하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허나 이 충격은 자본주의국가인 오스트리아 빈에 처음 갔을 때 받은 자유로움과 인간다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만 22세의 젊은 혈기에 북에서 온갖 특권을 누린 덕으로 일찌감치 외국현실에 눈을 뜨고 자본주의의 물질적 부와 자유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확신을 하게 된 리일남은 충동적으로 - 정말 충동적이었다 함 - 빈에서 미국구경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한대사관에 전화를 걸면서 탈북자 대열에 들어선다.

 

이후 숨가쁜 며칠을 통해 서울로 오게 된 그는 처음에는 신분을 숨기고 그냥 탈북자로 한다. 그러나 40평대인 안기부 안가 아파트도 비좁다고 느낄 정도로 북에서 특권생활이 몸에 밴 그의 태도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 당국의 추궁으로 결국 얼마 안가 김정일의 외조카라는 신분을 자백하고 신변 비밀 보장 약속을 받게 된다.

 

한국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김정일의 많은 상식을 넘는 호화생활, 호화파티의 실상이며 취미, 사생활등의 상당부분이 실은 리일남씨의 직접 체험한 극비 증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많다.

 

이후 그는 당국의 주선하에 이름을 바꾸고 탈북자중에서도 워낙 특수신분이라 성형수술까지 하게 된다. 그 후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84학번 이한영으로 입학해 대학생활을 마친후 다시 KBS PD로 취직해 일하며 결혼해 딸을 하나 두고 그럭저럭 정착해 살아간다.

 

그러나 온갖 특권을 누리다가 북을 아니 김정일을 배신하고 탈북한 그의 삶이 평탄하고 순조롭기에는 역시 냉전의 그늘이 깊은 사회였다.

 

1996년 친어머니인 성혜랑과 김정남의 실질적 첫부인이자 김정남 생모인 성혜림의 망명 기도가 엠바고를 깬 한국 일간지의 보도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결국 그들의 망명은 실패하고, 이 사실과 관련해 이한영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김정일은 이한영의 살해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어이없게도 이한영씨의 주소등은 한국 경찰청을 통해 북공작원이 손쉽게 입수했다고 한다. 언론에 보도된 이한영의 대체적인 프로필을 보고 그에게 사기당해 돈을 뜯긴 피해자라며 경찰청에 주소지 요청을 해서 합법적으로 쉽게 알아냈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알아낸 주소를 토대로 북한 공작원은 1997년 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이한영씨 아파트 앞에서 그를 권총으로 살해한 후 신원을 감추었다.

 

북한 공작원의 살해라는 것은 총탄 및 사건 발생 몇달후 검거된 남파 부부간첩단의 진술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한반도 현실에서 김정일 처조카로 태어난 신분 자체부터 파란만장한 삶이 예고되었던 이한영은 그렇게 37년간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이후 가족들의 지리한 법정투쟁끝에 2004년 12월 법원은 국가는 고 이한영의 부인 김모씨에게 이씨의 신변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책임을 게을리하여 그를 피살에 이르게 했음을 인정, 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한다.

 

한편 한국 언론의 앞선 보도로 인해 결국 망명에 실패한 김정일 전처 성혜림(후처는 고영희, 김일성이 시킨 정식 부인은 김정숙, 각각의 부인들로부터 아들딸을 거느림)은 2004년 우울증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한영의 생모 성혜림은 프랑스 파리에 망명해 본업이던 작가생활을 한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더 자세한 내막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시대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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