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보기

게시물 정보
[채널] 행복 | 공개일기장 | 사는 얘기 | 세상사는 이... | 형제
판접속자(1)

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소복사

이 판의 채널명
조회(62,144) 리플(113) 링크판(0) 스크랩(0)
작성일
09.11.03 23:27
작성자
By 밤톨이
추천(87) | 신고(5)

어제는 댓글이 하나도 없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다들 정말 고마워요. 저 위로 받고 싶었나봐요.

 

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러 가겠습니다. s('_ ' *)z

형님 누나들, 행복하세요. (^ ^) (_ _)

 

 

안녕하세요, 저는요, 두 달만 있으면 20살이 되는, 아직은 소년이랍니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 외할머니와 저, 이렇게 둘이서 살고 있어요.

 

저는 지금 피시방에 몸을 담고 있고요, 할머니께선 폐품을 주우러 다니세요.

 

다라이를 바닥에 끄시며 낮은 자세로 다니시니 안 그래도 굽은 할머니의 허리가 자꾸만 더 굽는 것 같고, 요즘처럼 추워질 때면 혹여나 감기라도 드실까 걱정이 되어 몇 번을 말렸지만, 할머니께선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고 몸이 아프다며 계속 일을 하고 계세요.

 

아마도 제가 혹시라도 검정고시를 보게 되고 그제서야 대학을 가겠다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전 정말 괜찮은데....

 

저는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데, 할머니만 너무 고생하는 것 같으셔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서 어떡하면 할머니께서 편이 쉴 수 있으실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취미를 갖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어도 제가 일하러 나간 동안 느끼실 지루함만이라도 달래드리고 싶었거든요.

 

피시방에 오는 손님들은 다양하신데, 그 중에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신 분들도 계신답니다.

 

그분들이 뭘 하시는지를 떠올려 보면 보통 한게임 고스톱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께도 이걸 가르쳐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 중고 카페를 검색하여 근처에 사시는 분께 십이만 원에 아주 괜찮은 컴퓨터를 얻게 되었어요.

 

모니터도 LCD고, 팬티엄 3.0에 512MB예요. 게다가 메이커도 있어요. 삼보 거예요.

 

그것뿐인가요? 컴퓨터를 주신 분께서 책상까지 가져와주셨어요. 너무 친절하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컴퓨터가 오고, 인터넷도 설치하고 하니 4일 걸렸어요.

 

할머니는 "우리 손주, 컴퓨터 박사야!" 하면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시더라고요.

 

원래 제가 고깃집에서 일을 했는데, 할머니께서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고 하셔서 피시방에 오게 됐거든요.

 

피시방에선 일 하느라 컴퓨터를 배우진 못 했지만, 그래도 일마치고 엑셀 자리에 가서 1시간 정도 컴퓨터활용능력 시험 준비도 하고 해요.

 

수험서는 할머니께서 주워온 것인데 2007년 거예요. 아직 새것인데도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할머니께선 그렇게 당신께서 주워 온 책과 권했던 일자리에서 컴퓨터 지식을 배워온 손주를 보며 너무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고요.

 

저는 할머니께 "할머니, 저 많이 배웠죠? 앞으론 진짜 컴퓨터 박사가 될게요." 하고 큰소릴 치고선 자리에 앉아 할머니 주민번호로 인터넷 고스톱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할머니께 게임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렸어요.

 

할머니께선 자꾸만 안 하려고 하셨지만, 평소 밤에 잠이 안 오시면 혼자서도 고스톱을 치실만큼 고스톱을 좋아하시는지라 크게 거부감 없이 금방 배워서 척척 하셨어요.

 

 

오늘 오전이었어요. 할머니께서 고스톱머니를 다 잃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원래는 오후에 저 출근할 때가 돼야 잃으시거든요. 어떨 땐 게이지가 다될 때까지 치시고요.

 

알고 봤더니 할머니께서 원래 1000원 방에서 치시는데, 좀 더 오래 쳐볼까 하는 생각에

5000원 방을 500원 방으로 잘못알고 거길 들어가셨어요.

 

거기선 몇 번만 쳐도 30만원은 금방 날아가 버리니까요.

 

그래서 전 어쩔 수 없이 조금 일찍 출근하기로 했어요.

 

피시방에 가면 쿠폰이 있는데 그걸로 충전하면 50만원이거든요. (예전엔 100만원 이었지만)

 

피시방에 도착하여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전에 일하시는 형께도 인사를 드렸어요.

 

그러고 재떨이를 비우고 씻고, 냉장고에 부족한 음료수를 채워 넣고선 형께 부탁을 드렸어요.

 

"형... 저 쿠폰 한 장만 주세요."

 

형은 웃으시면서 쿠폰을 건네주셨어요. 오늘은 두 장이나 주셨더라고요.

 

그리고 오전이라 자리가 많이 비었기에 아무 곳이나 앉아서 할머니 아이디에 충전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공용 전화기로 가서는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어요.

 

이번에 돈을 다 잃으셔도 나중에 퇴근할 때 또 충전하면 되니까 맘껏 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컴퓨터를 종료하러 자리로 돌아갔더니, 자리에 쿠폰이 없는 거예요.

 

저는 어리둥절해서 다시 카운터로 가서

 

"형이 혹시 제 자리에 쿠폰을 치우신 건가요?" 하고 물었는데, 형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구석에 앉아계시던 사장님께서 이쪽으로 오고 계신 거예요.

 

오후에 저랑 같이 일을 하는 사장님 조카와 함께요.

 

사장님 조카는 저보다 한 살 형이신데요, 피시방이 넓어서 저녁엔 혼자서 일을 하기엔 다소 힘든감이 있어서 원래는 같이 일하는 누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누나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사장님 조카가 절 돕고 있어요.

 

그 조카는 일을 거의 안 해요. 카운터에서 계산만 하고 제가 자리치우고 빨래하고 음료 채우고, 화장실 청소하고 다하거든요. 그나마 카운터 계산도 자꾸만 실수하고, 손님들 주문 들어온 걸 빠트리시거든요.

 

그래서 실수를 하기 싫어선지 손님들이 많이 몰릴 때면 나몰라라 하고 사장님 옆 자리로 게임하러 내빼셔서 제가 계산하고 뛰어가서 자리 치우고, 치우다 말고 뛰어와서 들어오신 손님 받고 다시 자리 치우러 가고 하는 식으로 일해요.

 

제가 이분께 불만이 많았나봐요. 저.... 꼴불견이죠?

 

사장님께서 대뜸 이러셨어요.

 

왜 쿠폰을 마음대로 사용하냐고, 손님들 사용하라고 받는 건데, 너 때문에 손님들이 떨어지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너 마음대로 팍팍 쓰니까 쿠폰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그런데 쿠폰이 사실 한 달에 10개 정도 남아요. 게다가 요즘 고스톱을 치시던 분께서 잘 안오셔서 이번 달은 확실히 많이 남을 거예요.

 

제가 매일 충전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쿠폰을 많이 사용해도 7개 안으로 사용하거든요. 더군다나 저는 오전 형한테 보고 드리고 쓰는 거라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요. 형도 자기 게임할 때 쿠폰으로 충전하시더라고요.

 

전 사장님께 쿠폰이 여유가 조금 남아서 써도 되는 줄 알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남는지 안 남는지 네가 어떻게 아냐면서 소리를 치시는 거예요.

 

옆에 있던 조카는 버릇없게 어딜 말대꾸냐면서 어디 도둑놈 같은 게 뭘 잘했다고 대꾸냐고 화를 내셨어요.

 

사장님께선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나셨는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말을 하셨어요.

 

"부모 없는 것들이 다 그렇지!" 라고 말이에요.

 

어릴 때도 이런 말을 들었어요. 자주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서운하다는 것만 알았어요. 왠지 모르게 우울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중학교에 가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그 말이 이렇게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를 잊고 지냈는데....
사장님을 통해 그런 말을 다시 듣게 됐네요...

 

사장님은 제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신경이 안 쓰이는지 한숨을 내쉬며 이러셨어요.

 

"에휴, 애미 애비 없는 것을 애초부터 받아 주지 말아야했는데." 라고요.

 

전 정말 체면이고 뭐고 간에 그저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어요.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솜뭉치처럼 뭉쳐서 무겁게 내려앉고 다리에 힘이 쭈욱 빠져서요.

 

이때부턴 사장님과 조카가 뭐라 하시는지도 거의 들리지도 않았어요.

 

멍하니 서 있다가 사장님의 "이번 한번만 봐준다." 라는 말을 듣고는 힘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었더니, 조카가 제게 "쇼하네!" 라며 크게 비웃으면서 갔어요.

 

전 너무 망연자실해져서 건물 밖에 나가서 멍하니 있다가 출근 시간이 되어 다시 가게로 내려와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몸만 움직이는 시체처럼 일을 해나갔어요.

 

자리를 치우러 가다 게임을 하고 있는 형제를 보게 됐어요.

 

단골손님이신데 형은 대학생이고, 동생은 중학생이에요.

 

둘이서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팀원이 배반을 한 상황이었봐요.

 

"니가 감히 우리 동생을 괴롭혀?" 라고 타자를 치시며 배반자를 처단하고 있었어요.

 

그 둘은 평소에도 같이 게임을 하는데, 카트를 하면 형이 먼저 골인지점에 도착해서 동생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 같은 걸 보고서 형제의 우애란 게 저런 것이구나 하고 부러워하곤 했어요.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나니 오늘따라 그 형제가 더더욱 부러웠어요.

 

오전 형이 제 형이었다면, 제가 사장님과 조카에게 무시를 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을 텐데, 아니, 제게 성인인 형이 있었더라면 애초부터 오늘처럼 무시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괴롭힘을 당하면 "누가 우리 동생을 괴롭혀?" 하고 멋진 영웅처럼 나타나서 악당을 물리쳐줄 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너무 나약한가봐요. 어른들 말씀처럼 전 아직 어린가봐요.

 

제겐 가족이, 할머니가 계시고, 전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요.

 

세상엔 정말로 의지할 데 없이 홀로 계신 분들도 많으실 텐데 말이에요.

 

저... 너무 욕심이 많나봐요.

 

 

 

링크판
링크판
전체보기(-1)
관련판
관련판
판 제목 작성자 조회수 작성일
겜방 알바하면서 정말 화났어요.(4) 야알바야 426 09.03.21
나가는 손님에게 욕하는 덕천 아망* 커피...(7) 기분나빠 320 09.07.04
피시방 근무중 도난당한 물건.. 제가 책임...(3) 인생고해 312 09.06.11
아..진짜 PC방 이런 손님들 어떻게 해야되죠.(39) Knightr... 1,906 09.11.02
피시방의 진상손님.(7) 한석화 269 09.09.24
BEST 베스트 리플
슈퍼맨(IP: NDZlMmRhOGY)09.11.03 23:37

아 씨바 슬프잖아. 어디야 횽이랑 국밥이나 한그릇 먹자.

리플달기
동감(140) | 신고(0)
아래 채널에서 관련있는 판을 더 찾아보세요. 행복 즐겨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