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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화장솜 (판) 2017.02.17 23:11 조회21
톡톡 사는 얘기 댓글부탁해
나는 여고생이다.
공부도
얼굴도
몸매도
성격도
그저그런 그런 여고생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나의 언니를 임신하셨을 때
고등학생 때 였다.
나는 언니보다 1년 늦게 태어났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의 생명을 학업보다 중요시 하셨다.
그렇게 나의 언니와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난 어릴때부터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없었다. 날 버리고 도망가셨다.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얼굴도, 나이도, 이름도, 몰랐기 때문이다.
가끔 궁금했다. 내 아버지란 분이
어떤 인간인지.

5살 때 일이다.
유치원에 갔는데 처음 사귄 친구들에 기분이 좋았다.
그 전 까지는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내 유일한 친구는 큰 곰인형, 그리고 나의 언니 뿐이였다.
나는 유치원에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것 같다.
아버지가 없었다는걸 몰랐던 때,
그때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미국에가서 일하고 있어~
우리 이쁜 딸랑구가 초등학생 되면 아빠 보러가자~"
난 그말을 믿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게
진실같았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그 때의 우리 어머니 나이는 20대 초반
청춘이셨다.
할머니와 함께 버섯공장, 국밥집, 기사식당,
나의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아름답던 어머니는 많은 남자들의 유혹을 뿌리쳤다.
나와 언니를 버리고 자신을 만나자는
돈 많은 남자들의 유혹을 뿌리쳤다.
아니, 상대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왕따였다.
아무한테도 이런 말을 못 했다.
어머니한테도, 언니한테도, 할머니한테도,
힘든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하던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라는 분을 대려오셨다.
당시 양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고 막대한 돈을 가지고 계셨다.
나와 언니에게 용돈을 주셨고,
재미있는 낚시도 같이갔다.
생선튀김도 해주셨다.
어머니는 식당도, 공장도 다니지 않았다.
집에 계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가 낯설었다.
어머니는 행복해보였다.
어머니와 양아버지는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양아버지가친아버지인 줄만 알았다.
행복한 줄 알았다.
현실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때도 나는 왕따였다.
혼자였다.
아버지가 나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너무 큰 꿈을 꾸고있었다.

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양아버지의 많은 돈은 빚이였고,
심지어 친할아버지의 명의로 나의 어머니의 명의로
3억정도의 돈을 빌리셨다.

몇 개월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2번 잃었다.

그때의 나는 동생이 2명이 있었다.
양아버지의 자식이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빚이 생긴걸, 양아버지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
도망쳤다.
그냥 내 현실을 부정하고싶었다.

내가 손목을 처음 그은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것 같다.
아마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자해를 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반팔은 입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어머니와 언니, 나, 동생3명은 이사를 갔다.
사채업자에게 도망갔다.
어머니 앞으로 되어있는 빚은 어머니의 꼬리를 물었다.
새벽에 출근하시고 새벽에 퇴근하시는 어머니는 점점 지쳐갔다.

어머니는 힘들어도 우리 5남매에게는 지치지 않았다.
일하는 도중 찾아와 저녁밥을 해주시고,
퇴근하시고 집에 오시고는 한번씩 이마를 쓰담아주시고
입맞춤을 해주셨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나의 하루중 가장 행복했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주위 이모와 삼촌들은 빚을 값을 때 도와주셨다.
큰 돈을  3년도 채 안되서 다 값았다.

내가 중3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의 차를타고 학교에 등교를했고,
하교를하면 어머니께서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매일 어머니와 9시가 되면 어머니와 대화를 했고
어떤날에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작년 겨울에 차를사셨고,
이번 여름방학에는 이사를 간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존경한다.
사랑한다.

가끔 어머니혼자 새벽까지 소주를 드실때는
몇 년전과 같이
우리 5남매 이마를 쓰다듬으시며 입맞춤을하신다.

"여시같은 내 첫째 딸
너무나도 사랑한다
첫째로써 동생들 잘 챙겨줘서 고마워
놀고싶은데 애들보라해서 미안해..
이제 스무살인데 우리 딸
사회 나가서도 여시같이 너 이익만 챙겨..
엄마같이 바보같이 살지 말고.
사랑한다 우리 첫째"


"엄마 닮아서 마음 여린 내 둘재 딸
엄마가 제일 마음이 가는거 알지
고등학생이니까 죽기살기로 공부해
좋은 대학교가서 네 꿈 이루고
엄마같이 마음여리게 살지 말고
항상 너 먼저, 너만 생각해..
너무 마음 여리게 쓰지말고
첫째 언니처럼 여시처럼 행동해봐
우리 둘째만 보면 엄마 눈물나온다..
제일 사랑한다 우리 둘째"


"의젓한 내 셋째
동생들 놀아주고 숙제 도와주고
아직 초등학생인데 철들어서 어떡해
엄마가 미안해
어리광도 못 피우게해서
엄마 눈치보지 말고,
그냥 어린이답게 행동하면 좋겠어
우리 셋째 엄마가 사랑한다"


"장남 넷째 사랑해
눈물 많은 우리 장남
마음이 여려서 항상 눈물바람하고
마음 강하게 갖고 떳떳하게 살아
우리 장남 넷째
엄마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
사랑해"


"막내 내 다섯째
기가 세서 엄마가 걱정안해
커서도 이렇게 너 이익만 챙기고
엄마처럼 힘들게 살지마
우리 똘똘한 다섯째 엄마가 사랑해
엄마 막내 옆에서 잘게
막내도 사랑해'




'엄마 나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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