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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이야기

한동하시인 (판) 2017.04.23 09:07 조회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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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이야기

한동하 시인




소서노 공주님과 백제국

한동하는 백제가 한반도 도래역사로 볼때 삼국중 가장 늦게 왕국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대략 A.D.400년대에 백제는 한강유역에서 주변 연맹왕국들을 통일을 했던것같다

그전후로 한국은 살기좋은 빈땅이 아직도 있어
기회의 땅으로 동북 아시아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꾸준히 이주하는 유입세력이 계속 있었을것이다

그중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이 백제 시조라는
왕국을 건설하셨던 소서노님과 아드님 이야기일것이다

중국 산동반도지역 우리민족 동이족 제나라 후손으로 소금 무역을 했기에 돈을 많이 축적했고 권력을 움직일 군사를 이끌고 한반도로 배를 타고 대규모로 건너온것같다

그 시기전후로 수많은 백제인 조상들이 소서노님과 왕자처럼 꾸준히 도래하고 있었던것이다

또는 시기적으로는 늦어도 중국은 5호16국시대이므로
중국 중원이 전쟁으로 혼란기일때 요동지역 해안가에서 한반도로 건너왔을 수 있고 더 일찍 오셨을 수 도있겠다

물론 소서노님이 도래하셨던 때는 A.D. 초기일 수 있지만 요동에서 산동반도로 나라를
건설한후 다시 재차 한반도로 건너오셨을 수 도있다

옛날 산동반도에 신라방이 있었다는것은 그곳이
한국 식민지였다는 증거라고 할수있는데 고조선
동이족이 통치하던 많은 도시국가가 있던 지역이다

한국 한강유역에 정착했더라도 당장 백제국 이름으로 토착민을 제압하고 백제국으로
이지역 모두를 정복할 수 는 없었을것이다

도시국가 연맹이다보니 여유있는 빈땅을 그곳
토착 영주한테 돈을 준후 영토를 확보했을것이다
그러면서 국력을 강화해서 차차 주변 연맹을
병합하며 영토를 늘리고 그지역 맹주가 됐을때가 대략 문주왕때라고 생각할수있다

당연히 이당시 바다건너 일본은 수많은 도시 부족 연맹 추장들이 큐우슈우와 혼슈 일부지역에만 사람들이 살고있었다
대략적으로 지금의 쿄토지역까지였고 토쿄까지는 이당시에는 거의 한반도 도래
한국인들이 땅을 개척하지 못했을것이다

옛날에는 지금과달리 논농사로 밭으로 쓸 수 있는
평야가 없었고 있다고하더라도 논밭 개간하기가
무척 어려웠었다

산아래 평지는 산속처럼 빼곡히 울창한 산림이
우거져있어서 거대한 나무들을 없애고 돌맹이
바위돌들을 걸러내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노동력이 무척 부족했다

더구나 일본 나무들은 한국 나무들보다 훨씬
거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져있기에 논밭개간은 굉장히 어려웠기에 산이나 산아래
평지나 똑같은 울창한 산림들이었다


백제를 건국했다고는하나 이당시 백제는 짧은역사였기에 부득이 연대를 늘려
거짓으로 꾸민 역사서라고 판단되며
한반도에는 목지국이 있었고 비류왕이 이지역
토착민 호족이었을것이다
부여국 연맹이었을것이다

소서노공주님은 이곳에서 재혼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온조 왕자님이 숨겨진 동일 인물인 문주왕님으로 한반도 도래계 최초 백제시조왕이 되셨을것같다고 생각된다
사실상 백제 역사에서 고대국가 백제라는 나라기틀을 다진 최초의 시기로 해석해본다

아다시피 삼국사기 가 고려때 김부식 님께서
편찬하셨는데 이당시에는 전해 내려오는 백제
역사서가 있었고 이책을 참고해 삼국사기 백제편을 완성한것같다

일본서기에도 백제 임금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일본서기는 일본이 한국에있는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한테 전패한뒤 나라이름을 일본으로
개명한뒤 편찬한것이다
당연히 일본서기를 편찬할때 한국에있었던 본국
고구려 백제 역사책을 참고해 기술했을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단점은 한국에서 새로 생긴
왕조국가가 나올때마다 대응 첨가해 출판한 흔적이 많아 역사서로 신뢰하기가 쉽지않다

즉 삼국 통일신라 개국과 비슷한 때에 일본서기가
등장한것이며 추후에 고려 삼국사기를 참고한 흔적도있고 조선시대 이후에도 계속 첨가한듯하게 보인다

아마도 고려 와 조선시대때 일본 왜구병사들이
한국에서 약탈한 한국 관련 역사책들을 일본에서
일본 서기 역사 편집진들이 참고하며 덧붙이며
일본서기책을 계속 만들고 있었기에 한국역사책처럼 객관적이아니라 신뢰하기가 어렵다고본다
나라가 한국인들 신라한테 멸망했기에 한국에대한 원한으로 늘 일본 역사를 한국 역사보다 유리하게 기술하려는 일본인들 나름의
애국적 국익을 염두해 일본서기를 기술한것임을
우리 한국인들은 알고 있어야한다

오늘날 전해 내려오지않는 잃어버린 소중한 한국 역사책들 대부분이 일본 유물 보관실 어디엔가
잔뜩 숨겨져있을 가능성도 있겠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본 서기 역사책이 완성된
최종본 시기는 통일 신라 시대가아닌 구한말 메이지유신 때였을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학자들이 일본서기를
통일 신라 시대와 동일시대 편찬이 완전히 끝나버린 삼국사기 같은 역사책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한국 역사 참고할때 특히나 백제 나 고구려 부분 기록을 일본 서기를 기준으로 내용이나 시기를 비교 검토 계산하는 실수가
있다
일본서기는 여러 역사적 시간대가 뒤죽박죽 섞여있게 수정 가공 첨가됐기에 믿기 어렵다는 최대 단점이있다

후대 한국인들이 봐도 알수없는 오로지 일본인
들 역사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은밀한 코드를 섞은 수수께끼 역사로 만든 이유가 한국인들을 굉장히 경계했기때문인데 이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한국 역사학계는 일본 역사의 슬픈 고뇌하듯 편찬된 어두운 행간의 비밀을 모르고 일본 서기 역사 편찬인들이 바라는대로 속아넘어 가고있는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역사학계 현실이라 평가할 수 있다

테레비로 시청한 가양동 유적을 고찰해볼때
역사비교언어학자인 본인 한동하 생각해봤다

옛날부터 한강유역은 신라 백제 고구려 군인들이 겨룬 치열한 전쟁터였으므로 가양동 지명만봐도 알수있듯이 고구려땅뜻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가양동 얕은 구릉 동산에있는 신당은 백제를 세우신 온조 비류 백제대왕님의 어머니이신 소서노님과
관련된 유적지일 가능성이있다고본다
이름으로 옛날 한자 이두식표기인것같다

옛날 제정 일치시대 제사와 정치를 한사람이 담당했던때에는 무당 특히나 무녀가
여왕님으로 통치했었다
하백 용왕님 따님이신
소서노님 공주님이면서 용왕신을 믿는 고대
다신교 종교 교주로 해석된다

궁산이 공자님을 모셔서 궁산이라고 해석한것이지만 이것은 조선시대때 개명 해석해버린것이고 이것역시 비류백제
궁을 뜻할것같다
일본에는 궁 이라는 한자는 주로 백제왕실을
나타내는것같다
공자님 역시 고조선 동이족 출신으로 노나라가 산동반도에 있던 제나라 바로 옆에 있다

아마도 삼국시대 전쟁때 당나라군과 신라군이
가양동 동산에있었던 백제궁건물을 부셔버렸을것이다
아니더라도 임진왜란때 궁이 없어졌으리라 여겨진다
조선시대때 사또님께서 정자를 세운것역시 그당시에도 전해내려오는 옛이야기에 동산 꼭대기에 멋진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비극적인 역사 낭만에 심취된 사또님이 아쉬워하면서 귀여운 정자를 세우고 선비풍류를 즐긴듯싶다

일본 도쿄나 오사카에 있는 언덕에 세위진 궁들에 막부 사무라이들대장인 쇼군이 살던 궁처럼 비슷한 모양이었을것이다
적당한 언덕에 일본궁이있고 궁주변은 호수처럼 물로 채워져있는 해자가 놓여있듯이
가양동 궁주변에 해자로써 한강이 옛날에는
둘러싸여 있었을것이다

이것이 백제 궁궐의 특징인데 공주에있는 고대
백제 의자왕님과 삼천궁녀님들이 살았던 주변
역시 언덕에 해자대신 백마강이 있었다

이것만보아도 백제는 물을 숭배하며 자신들 물의신 하백님 다신교 종교를
생활화하며 물을 신성시한
풍수지리를 길하다고 성역화 신앙생활한것같다

일본신사에서는 물로 일단 씻는 절차가 있는데 백제 소서노님 영향으로 전통신앙으로 굳어진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옛부터 단오날에 창포에 물로 씻는
의례가 풍속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혹시 물의신
하백님에대한 존중 의례일지도 모른다

테레비 전설따라 삼천리를보면 가끔 깨끗하다는
뜻 정안수를 달랑 작은 그릇에 떠놓고 하느님
또는 칠성님께 지성을 드리는 연기속 주인공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이처럼 간단히
돈 너무 안쓰듯 초절약정신을 발휘해 흔하디 흔한 물 한그릇을 바치며 신령님께 간절히 염원하며 다신교 종교 신앙생활의 참 모습을 보이는데
신령님도 싸구려보다도 한심한 물 한그릇에도
정성을 탓하지않는 드라마내용을 볼때 다소
의외이면서도 물을 제물로 사용해도 당연시되는 한국사람들 감성에 어느덧 물의신 하백님 다신교는 삼국시대 백제때부터 녹아내려 온것이었다

공교롭게도 한의학 대가이신 허준 선생님의
호가 구암이시고 허씨님 본가 고향이기도 한곳이 이곳 가양동인데 어쩌면 더 오랜시간
거슬러 삼국시대 백제 초기시대때 소서노 여왕님과 온조 비류 임금님이 한국으로
오실때 한강으로 배를 타고 도착하셨는데
배모양이 거북이모양을 닮은 거북선으로
토착 한강유역 원주민들에게 깊이 각인돼
유명했던것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거북은 고구려 상징 동물이다

허준 선생님 탄생하신 장소가 가양동 동굴이었다는 이야기는 중국 공자님 역시
동굴에서 탄생하셨다는 우연치않게 일치된
전설같아서 혹시 두분다 고조선 고구려 동이족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허준선생 허 는 고 로 발음될수있다
공자님 또한 공 이 고 로 소리날수있음을
가정하면 고구려 왕족 고 씨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 놀라운것은 제주도에 고 씨 동굴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서기에 곤지님이 부인과 함께한 일행이 한국을 떠나
배로 큐우슈우에 작은섬에서 도착해 동굴에서
아기왕자님이 탄생했다고한다

고구려는 겨울이되면 동맹이라는 축제를 하는데 국동대혈이라는 곳에서 고구려왕이
천자로서 하늘에 제사를 거행하는곳 역시
동굴에서한다

게다가 단군신화에 곰이 인간이된 곳 역시 동굴이었다

이것을 종합해볼때 고조선 고구려는 동굴과 관련된
이름이 쓰이고있다는 점을 알수있다
동굴의 굴 은
구르 로 발음되니 고구려 와 구려 와 대응된다고본다
고구려 백성들은 비슷한 고구려 나라 이름도
응용했던것같다

공자님 이야기 조금 덧붙이자면 공자님이 고조선 동이족이셨기에 노나라에서 차별대우 받아 출세 못했을거라 추측되는데 중국을 떠돌아 다녔지만 결국 다른 나라에서도 공자님은
중국 한족이 아니고 한국인 고조선 동이족이었기에 조정에 등용되지못하고 방황끝에 다시 자기 고향이있는 노나라로 가게된것인지 모른다

중국은 B.C. 3000년대에는 우리 한국 고조선과
같은 가까운 황하 유역에 살았지만 결국 전쟁으로 갈라서 완전히 민족적으로 두갈래로 나눠진다

한국계 고조선 동이족 치우황제님과 중국계 황제헌원님으로 분리돼

우리쪽 고조선 동이족은
황하강 산동반도부터 중국 해안가를 따라
북동쪽 요동지역으로 그리고 한반도까지
폭넓게 정착하게됐고

중국 한족은
황하강 아래 내륙 중원과 남부지역으로 이동
정착하게된다

소서노님일행이 한반도로 오실때 육지로 말 타고오신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큰배에
말과 마차와 군인들을 태우고 탐사할때는 육지에내려 군병들이 말을타고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주변산세와 위치정보등을 살펴보곤 했을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길지가 한강유역과
백마강 또는 넓게 역사적논리를 비약해
낙동강유역 아니었을까 큐슈 백강이거나
오사카 비와 호수 유역이었던것이리라

아다시피 소서노님은 기마민족이지만 소금이라는 뜻이 이름속에 있는것으로볼때
실은 해양민족이므로 해양세력이 올바른 역사해석 이어야한다

하백님이 아버님 존함이셨고 나라 이름이
하백 이었을 가능성이있다
옛날에는 나라 이름을 성씨 이름으로 왕명으로
지은경우가 있는데 백제라는 이름이 소서노님
부친이름 하백에서 기원했을것같아 보인다
하백님 이야기는 부여지역이다
참고로
백제 시조 왕조 구태 국왕님을위해 백제는 제사를 매년 거행했다고한다
구 씨는 고 씨와 같은 성씨이다

#고조선 # 고구려 # 백제 # 동이족 # 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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