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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긴 글)

도와주세요 (판) 2018.01.14 00:56 조회418
톡톡 결혼/시집/친정 방탈죄송
나는 2n년을 살아온 여자다.
나에게는 8살~13살 그러니까 초등학교시절의
기억이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잃어버린 퍼즐조각으로
100피스의 퍼즐 중 대다수90개를 잃어버려
그 퍼즐의 완성 그림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돌이켜보니 그 기억은 나 스스로 잠재적인
요소에에 의해 잊으려고 하다가 삭제된 파일같다.
초등학교시절 나는 학교폭력을 당했다.

6년내내..

나는 내성적인 부모님속에서 자랐지만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으로 언제나 당당하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해서 사람들은 내성적이 부모님 속에서
이런 내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 하셨다.
막둥이로 태어나 무수한 사랑속에서 늘 좋은 격려와
공주대접 받으며 귀하게 자랐지만
초등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되 말 하지 않는
소심하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로 활발한 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희소병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크게 아파 부모님께 걱정시켜드리진 않았다.
병의 특징이 신체에 들어나고 그 특징으로 인해
내 또래의 아이에게 수 많은 돌로 맞고 멍이 깊게
세겨지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선생님은 항상 매일 무관심 했고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걸 아는아이들의 괴롭힘 강도는 점점 강해져 갔다.
나는 그 아이를 모르지만 그 아이는 날 알고
함께 비웃고 놀려댔다.

날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신발이라도 던지고
주먹질 하고싶었지만 혹시 빽 없는 우리 부모님이
피해 입을까 늘 꾹꾹 누르며 날아오는 욕과 비난을 늘 들으며 학교를 다녔으며 좁은 지역사회라 전학을 가도 달라지지 않을 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닳았다. 타 지역으로 이사갈 형편은 더더욱 아니기에 부모님 앞에선 늘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그 모진 시간을 이 악물며 버텨왔다.
힘든 시간을 버텨 집에 들어와 휴식을 취할 시간은
너무 짧았다. 6세 경부터 함께 살게된 할머니는 늘
나를 구박하셨다. 이전 살던 집은 엄마 아빠 언니 나
우리 네식구가 살기에 너무 좁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난 늘 구박덩어리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부모님께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며 나의 잘못된 행동을
이르셨고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잘못됬다고
표현하셨다. 유독 나에게만 질투하셨다.
초등학교밖에 안된 어린 애가 옷,머리핀을 구하는 방법은 거의 부모님밖에 없는데 그런거 하나에도 늘 질투하셔 몰래몰래 하나씩 사주시는 방법 뿐이였다 그러다 옷한벌 사준걸 알게된 날에는
"지 새끼밖에 모르지" 하며 나와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는 할머니였다.
내 또래가 머리장식을 한 상자 가득 가지고 있을때
할머니의 눈치로 나는 5개 남짓 돌려가며 머리를 묶었고
새옷이라며 자랑하며 등교하던 아이들 속에서 남 입던 옷이리며 할머니에게 말하며 겨우 두세벌 사 입었다.

언니나 다른 사촌에겐 전혀 그러지 않는 좋은 할머니로
할머니에게 언닌 첫 손주였고 뭐든 다 최고고
아빠 바로 밑 작은 아빠는 외국에서 살아 몇년에 한번 보는 귀한 손주들이고
막내 작은 아빠네 사촌은 우리가 할머니 집에 살기 전 직접 손으로 키운 예쁜 손주였다.
그런 환경의 나는 뭐도 아닌 그냥 손녀였다.
그러게 나는 집도 학교도 늘 상처 받는 공간으로
매일 울던 기억이 선하게 남아있다.
늘 자기 전 기도했다.
내일은 제발 많이 아프게 해달라며 눈물로 애원했다.
차라리 백혈병이나 암같은 중병에 걸려 집도 학교도
아닌 곳에 누워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매일 멀쩡한 몸으로 깨어났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혹시 엄마가 상처받을까 괴로워할까 걱정되서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등교길에 올랐다.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 가 이 악물고
숨죽이며 울었다.
왜 나에게 이러게 힘들게 하냐고 신에게 기도하며
따진 그 나이는 겨우 9살이였다.
한번은 학교에 불이 난적이 있다.
과학실이었나? 아무튼 과학실 외에는 인명피해도 없던 아주 작은 소동이였지만 그날 소방차가 오던 시간동안 운동장에 대피하여 큰불이 나 전체가 타버리길 너무
바래왔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지금은 하지 않는다) 칼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볼펜이나 연필같이 끝이 날카로운 도구로 내 몸을 찔렀고 그로인해나는 상처에 희열을 느꼈다.
가끔 주방에서 보던 칼로 나를 찌르는 상상도 했던
돌이켜보니 참 위험했고 정신적인 치료가
시급했던거 같다. 상처를 낼때도 그 와중 혹시 부모님이 보고 속상해 하실까 허벅지나 어깨같이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찔렀고 손톱으로 누르기도 했다.


나에겐 학교는 괴물처럼 늘 이빨을 내밀고
으르렁거리는 존재였고
집은 편안 안식처가 아닌 늘 감시하며
카메라24시간 찍고있는 감옥같았다.
할머니와 독립할 형편이 너무너무 안되는 우리는
계속 함께, 지금도 살고있다.
부모님은 늘 나에게 미안해 하고있고
그 마음을 상황을 형편을 일찍부터 깨닳아
전학가고싶다 이사가고싶다 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랜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나에게 초등학교시절 기억은 대부분 없다.
내가 나늘 보호하려고 어쩌면 무의식이 지운게 아닐까...

나쁜 기억도 좋은기억도 없다.
지금까지은 세월을 2시간 짜리 영화라 치면
중간부분을 건너뛴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든다.

하지만 애써 기억하고싶지도 않은 재빛이다.
만약 아주 만약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는
단 5분이 주어지면
그때 화장실에서 울고있던 나를 안아주며 함께
울고싶다.
넌 아무 잘못 없다고
넌 앞으로 잘 될거라고
그런 말도 없이 그냥 같이 울어주고싶다.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부모님 얼굴 보는것도 못해 항상 땅만 쳐다보고 대화했고 그걸 이겨낸건 고등학교쯤으로
오랜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또래 남자아이만 보면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이상해지고 숨을 빠르게 쉬어지는게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상담치료가 정신적치료가
필요하다는걸 느끼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동안
계속 울었다

돌을 던진 그들은 나늘 잊고 너무 잘 살고 있겠지만
돌 맞은 나는 평생 그 멍을 안고 살아야되고
그 아픔을 혼자 이겨내야한다

몇년이 흘러야할지 모를 이 싸움을 시작하기도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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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요 2018.01.14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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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네이트판 댓글 잘 안다는데 님 글 끝까지 다 읽고 댓글 남겨요.너무 고생 많았어요.상상 못할만큼 힘들었을텐데 잘 자라주어 고마워요.그때로 돌아갈순 없겠지만 지금 내가 인터넷상으로나마 고생했다고 쓰니 잘못 아니라고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어요.상담 받는게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않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글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는것도 좋아요.지나간 일들이 힘들었던만큼 쓰니 내면은 누구보다 강인해져있을꺼예요.무엇을 하던 남들보다 더 근성있게 해나갈꺼니까.잘 할꺼니까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봐요.남은 삶을 알차게 잘 사는게 지난 삶에대한 보상이 될꺼예요.사람의 삶에 있어서의 고생과 고난의 총량은 누구나 같댔어요.쓰니는 어린시절 그걸 다 겪었으니 이제 행복하고 좋은일들만 있을꺼예요.쓰니의 앞날,행복하길 기도할께요.힘내요 쓰니.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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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18.01.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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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당장정신병원외래진료받으세요!! 솔직히 그할망구를 폐쇄병동에 쳐넣고싶네요 힘내시고 진료한번이라도받아보시길바랍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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