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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톡14년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는 아무도 모르는 우리집비밀

참새 (판) 2018.05.16 11:22 조회123,074
톡톡 사는 얘기 채널보기

안녕하세요. 쓰니입니다.
아무래도 그냥 하소연한 글이라 10일이 지나서 확인했네요.
정성스럽게 달아주신 댓글 다 읽어봤습니다.
제가 말을 하고자하는 요지를 잘 파악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도 있고,
이글을 읽었을때 다른쪽으로도 생각하실수 있다는 부분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엄마에게 하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한 딸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며 살고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시마세요^^

아마 글을 읽는 시각의 차이는 다양한 경우에 따라 다를것으로 생각되요.
물론 제가 글솜씨가 없고, 다른분들이 제글을 읽었을때, 제가 하고자하는 말을 당연히 
이해할것이라는 생각도 오만했네요. 더 추가해서 적었어야해요.
하지만, 
이글은 잠시 제가 너무 힘든데, 아시다시피 일기처럼 적은 글이에요. 
우리 서로 모르니까요. 편하게 얘기할수있잖아요.
그래서 댓글도 그런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댓글이던, 그러지않은 댓글이든 다른 생각을 한번더 생각해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희 좋게 좋게 생각하면서 살아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원문
네이트판은 언제나 마음이 답답하고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고싶을때 찾게되네요.

27살, 문득 앉아있을때 어릴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교사아빠에, 가게하는 엄마.
풍요롭진않지만 부족하지않게 항상 자랐습니다.
여행이나 캠핑을 그 당시 다른 가족에 비해 항상 많이다니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희집에도 당연히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아빠는 평소에는 점잖으시지만, 술만 드시면 엄마를 때렸습니다.
그뿐만아니라, 보증을 서서, 저희집은 정말 날로 작아졌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지쳐서 제가 초등학교3학년때쯤 엄마는 친정으로 갔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오게 하려고 저와 제동생을 때렸고, 그 효과는 잠시,
제가 5학년이 되었을때 엄마는 이혼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와 엄마는 별거를 했고, 아빠는 퇴직금까지 다땡겨쓰면서 빚을 갚다갚다가
결국 교사직마저 짤렸습니다. 
저희는 엄마따라서 외할머니댁에서 자랐고, 아빠는 경기도권에서 아는 사람이 하는 사업에 따라다니면서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5학년때, 에버랜드에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그 때,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아빠가 제가 보고싶어서 에버랜드에 왔다고 합니다. 저는 화장실에 있다가 급하게 친구들을 두고 뛰어갔습니다. 남들을 많이 신경쓰고 부끄러움도 유난히 많이타는 성격인 저는, 아빠가 보고싶어서기보다 초라해진 아빠 행색이 부끄러울것같아서 누가 보기전에 빨리 만나려고, 아빠의 흰머리가 남들에게 부끄러울것같아서 무작정 뛰어갔습니다.그때는. 참.
매표소옆에 작은 철창틈으로 아빠를 봤고, 아빠는 저를 보더니, 이렇게 하고 왔냐고, 얼굴 타겠다고, 모자를 사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계속 됐다고 했지만, 아빠는 계속 사주고싶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심지어 표확인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아빠가 모자만 사주고 나오면 안되냐고 사정했습니다. 저는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아빠가 미웠습니다. 그러다 멀리서 저를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
저는 아빠한테 됐다고 진짜 괜찮다고 급히 마무리지으면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곤 친구들이 내게 물을 때, 누구냐고, 저는 아 그냥 아는 사람. 
여기까지온 아빠가 주책같았고, 부끄러웠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날, 아빠가 엄마에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더라 이렇게 얘기했다는 걸 듣고 미안했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 아빠는 교통사고로 저의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마 돌아가신 그 시기빼고는 아빠가 보고싶어서 울어본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집은 더 힘들어졌고, 엄마 혼자 애둘을 키워야했으니까요. 
엄마는 항상 남들한테 아빠가 없다는 걸 말하지못하게했고(사람들의 무시가 무서워서) 저희는 아빠가 있는 척 항상 생활해야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집은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고, 엄마도 점점 안정적이게 되면서, 우리집은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억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평소와 다름없이 인스타를 하다가 수학여행과 관련된 아빠이야기를 보는데, 저는 갑자기 그날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저의 잘못들이 스쳐지나갔고,
1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죄책감에 펑펑 울었습니다. 
27살이 되고 철이 들다보니, 아빠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서요.
에버랜드를 매년갔던 우리가족이, 아빠한명입장료만이라도 낼 돈이 없어졌고.
항상 깔끔한 정장을 입던 아빠가, 초라해졌고.
큰딸인 저는, 그렇게 아빠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아빠가 과연 돌아하는 길에 무슨생각을 하면서 갔을지, 어떤 마음이 었을지 생각해보니,
오늘에서야 목놓아 울어보네요.
더욱 답답한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에요. 옆에 없으니, 그저 저는 죄인으로 사는거죠.
내가 아빠에게 한번이라도 좋은 딸이었던 적이 있을까. 
나는 아빠에게 바랬던, 아빠를 원망했던 시간들에서.
과연 나는 좋은 딸이었을까.
아빠를 좋게 기억하면, 엄마에대한 배신일 것 같아서, 지난 세월 꾹꾹 눌러지냈던것같아요.
근데, 저는 아직도 여행을 간 곳곳마다, 아빠 생각이 제일 먼저나요.
아빠가 나를 데리고 와준곳들. 

사실 아직도 믿기지는 않아요. 제가 아빠가 없는 아이라는게요.
정말 아빠는 다른세상에 살고있을 것만 같은, 그냥 지금 멀리 있어서 못보는 것 같은 기분이들거든요.
하지만, 아빠의 목소리가 더이상 기억이 안나네요. 
아마 이제 정말 못 보나봐요.

모든 집은 비밀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이게 우리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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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8.05.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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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죄송하지만 가정폭력 때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습니다. 결국 아빠 때문에 집안 다 힘들어지고 말아먹은 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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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8.05.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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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런 걸 두고 시간의 미화라고 하죠. 저는 쓰니가 죄책감을 갖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만약 아빠가 계속 살아계셨더라도 쓰니가 이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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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푸헤헤 2018.05.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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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커가는 모습을 보니깐요. 자식은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힘에 됩니다. 사춘기시절 그럴 수 있어요. 교사까지 하셨던 아버지시니.. 그런 시기라 가벼이 넘기셨을거에요. 죄책감 갖지마세요. 제일 큰 효도는 그저 행복하게 잘 사는겁니다. 먼 훗날에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내 자식은 늘 행복하고 기뻤으면 좋겠어요. 토닥토닥.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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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대결 2018.05.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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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뭐래? 얘 똘I 아니야? 참..저렇게 썰풀지말고 살아계신 니 엄마한데나 잘해...무슨 본인 감성팔이에 호소하지말고..니가 써논 글만봐도 니 아빠는 인간쓰레기였어...근데 니가 써논 글엔 지금까지 키워준 니 엄마..감사하단 말은 없다?..쓰레기 같은 아빠한테만 미안하고 그리워?..니가 사람새ㄲㅣ야? 감성팔이 하지말고..니 엄마한데나 잘해..아..이글 읽고 기분젖갔네..아..내가 저런자식 키울까봐 겁나네....에이 캭..퇬..가래침이나 받아라..못된자식..넌..평생 니 엄마한데 감사합니다 하고 살어..에이 C팔...기분젖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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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2018.06.0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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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나도 비슷한 가정사가 있고 내나이 마흔에 얼마전 그 아벚가 돌아가셨다. 참으로 미워하고 원망했는데 이런 글을 볼때도, 아니 아빠를 떠올리는것만으로도 눈물이 많이 난다. 엄마한테 미안해하고 잘해라, 미화하지마라고들 냉정히 이야기하지만, 본인이 되어보면 그게 다가 아니다. 그냥 아버지가, 그사람이 불쌍하다 그냥 불쌍하다 그리 인간답지않게 살다가 상처만주는인생밖에 못살고간 그 사람이 그냥 불쌍해서 눈물이나더라. 아버지 삼오제 치르고 어머니도 동생들도 나도 그냥 눈물이 많이 나더라. 우리 정말 눈물 한방울도 안날것같았는데...얼마전 결혼한 남동생이 가끔 아버지가 생각나면 왠지 모르지만 불쌍해서 눈물난다고 할때 이미 서른 넘은 막내동생이 어찌 그리 가엽던지 엄마도 나도 티는 안냈지만 울컥하더라. 죽기전에 미안하다고하실때 우리는 그런생각 들었다 그래 미안하면 조금 더 살아서 그동안 못나눈 정 나누고 다시 한번 살아보자 우리가족모두 그리 생각했는데 동생 결혼하고 얼마후 조용히 돌아가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에 한이 더 쌓이고 그토록 미워했는데 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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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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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시간에 엄마한테나 잘하시길 자업자득이에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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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2018.05.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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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아빠는 처자식 뒷전으로 하고 자기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사셨고, 님 어머니는 매 맞고,남편 없이 홀로 애 키우며 살았는데 뭐가 그리 애달픈가요? 감성에 빠져있지 말고, 님은 그리 살지 않겠다 다짐 ㄷ또 다짐하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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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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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울컥하긴 한데 그래도 가정폭력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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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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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선생들많네 남힘든얘기에 공감안되면 가만히나 있지 가르치려들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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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님 2018.05.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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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자업자득이지 뭐가 슬퍼여 주작 아니면 모지린가 지엄마 졸라패던새키,가정위해 살지 못한 사람이니까 막 살다 죽은거죠 이를 악물고 자식보고 사는 사람에 비해 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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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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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엄마한테 잘해요. 죽기가 살기보다 더 어려운 법이예요. 특히 여자 호자 애둘 데리고는 더 그렇지요. 그리고 부끄러운 애비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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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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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 아버지가 할머니 뱃속에 있었을때, 친할아바지께서 아무말도 없이 3년을 떠나셨다가 돌아오셨대요. 4형제중 막내신데, 그 당시 할머님도 엄청 고생하시고 특히 큰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만 간신히 하고 돈 벌러 다니셨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유난히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방황도 많이하면서 할아버지 원망을 돌아가실때까지 하셨습니다. 사실은, 돌아가셨어도 하셨어요. 그럼에도 아버지가 산소에 가실때 우셨어요. 살았으면 듣고 상처받으라고 뭔 짓을 다하겠는데, 없으니까 그 원망을 못한대요. 그 대상이 사라지니까 허망함밖에 남지 않더래요. 죄수들도 감옥에 가는 이유가 그 곳에서 사람구실을 다시 배워 오라고, 남들에게 폐끼치고 사는 거 아니라는걸 깨닫고 오라고, 사람에겐 죗값을 다하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누구나 있는건데 본인은 그렇게 못해줘서 우신대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어도 같은 행실이셨다면 안그랬을거래요. 그런데, 돌아오시고나서 가장 먼저 품에 안은 것이 아버지셨고, 우물파시는 분이셨는데 그때부터 엄청 노력하셔서 동네에 티비, 냉장고까지 갖푼 집이 됐다거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실수를 만회하려 가족에게 애를 쓰셨고, 그 기회를 잡으셨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니의 아버지도 아마 그런 기회를 잡고 싶어서였을수도 있었을거란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오시던건 아닐까요. 폭행은 사람간에 있어선 안되는 행위이고, 용서받기 어려운 죄예요. 한두번의 실수도 아니었으니 더욱 힘들죠. 어머니에게 주신 상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쓰니에게 준 상처는 그때 매몰차게 거부한 그걸로 죗깂 치렀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정 힘들고 쓰니가 원한다면 차라리 죄책감대신 기일을 챙기세요. 당신이 잘못한게 아니예요. 아버지란 사람이 그렇게 이끌고 온 거예요. 그리고 이제 남은 사람들을 보듬으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도 후회만 하실게 아니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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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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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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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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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안쓰럽네요 쓰니... 죄책감 갖지 말아요. 쓰니는 그때 사춘기였잖아요... 토닥토닥... 저도 아빠가 가끔 보고싶어요. 저는 살아계신데 그냥 참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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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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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 보면 참 인정없고 무식하고 단편적이네 ㅋㅋㅋ 그렇게 각박한 집에서 자랐나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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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댓글러 2018.05.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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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 되게 이상타;; 아빠는 아빤데;; 글쓴이 힘내여, 지금이라도 슬퍼하는 마음
진짜 저승이 있으면 아빠도 아시겠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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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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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빠건 딸이 정말 보고싶을때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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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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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말아먹고 가정폭력하는거랑은 별개로 그냥 아빠랑 딸로써 뭔가 그런 기분이 있겠지 베플들 공감능력제로인가 지금 그걸 말하는게 아니잖아;; 댓글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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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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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왜 에버랜드까지 간걸까? 자신의 죄를 정말 뉘우치고 후회하고 미안해서?? 교사로 등따시고 편하게 마누라 패면서 잘 살다가 남 사업 따라다니면서 뒤치닥거리하니까 ㅈㄴ 힘드었던 거겠지. 그래서 다시 마누라 패면서 살려고 딸내미 먼저 꼬시려고 했는데 딸내미가 싫다고 그냥 가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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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 2018.05.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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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술만 마시면 지 마누라 패, 마누라 없으니까 지 자식새끼 패는 남자 죽었다고 불쌍해 ㅠ 하면서 우는 꼬라지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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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5.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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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녀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편이 니 ㅈㄴ때리고 병으로 디져도 보고싶다..엉엉 이러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판녀들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이런거 욕 조카하면서 디지면 보고싶대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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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남 2018.05.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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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야 천사네 천사.. 아빠한테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다니. 저도 비슷한 케이스인데 얼릉 애비라는 남자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바캉스 복장 입고가서 신나게 웃고 떠들려구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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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18.05.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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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
가정폭력이 심한 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의처증이 심했습니다.
술만 드시면 엄마를 때렸고,
엄마 얼굴에 멍이 바람잘날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술은 거의 매일 드셨다는 겁니다
어떤날은 머리위로 식칼이 날아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엄마는 심하게 맞은날에는 가출을했고, 2-3일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날은 저를 꼭 끌어안고 눈물로 밤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결국 두분은 별거를 시작하셨고
제가 중학교 2학년 되던해에 이혼을 하며 엄마가 절 데리고 갔습니다.
그렇게 엄마랑 둘이 살게되었고,

그후로부터 아빠를 잘 보게 되지못했던거 같습니다.

언젠가 한번 아빠가보고싶어서
아빠 일하던 공장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서 아빠를 만났고,
아빠가 혼자 살게되었다고 한 집을 가게되었는데
방 한칸짜리. 부엌이 간신히 들어가져있는
화장실도 없는 그런 초라한 집 이었습니다.

솔직히 아빠가 지금까지 엄마에게 해왔던게 있기때문에
아빠가 전혀 불쌍하지않았습니다.


엄마만 때리지않고 엄마만 괴롭히지 않았다면
우리가족 행복하게 살수있었을텐데
외려 아빠의 초라한 모습이
아빠에대한 원망으로 더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몇년후,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있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오셔서 아빠가 맞는지 확인하라는 이야기.

엄마와함께 아빠가 있는 영안실로 가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빠를 보냈지만
아빠를 보내면서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죄값 받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아빠가 돌아가신지 10년째입니다.



돌아가신 모습을 봤을때도,
불쌍하고 슬프지않았는데
요새는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조금 아픕니다.


가정폭력,의처증으로 엄마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아빠도, 아빠스스로 힘들지 않았었을까...
아빠도, 엄마와 나를 괴롭히면서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았었을까...



그냥.. . 뭔가 마음이 동조되어 저도 조금 끄적여봅니다.




아빠.
내가 벌써.
서른세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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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 2018.05.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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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이 하나같이 왜 이모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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