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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천사 희주가 사진으로 위로의 말을 하다 by나관호

나관호 (판) 2018.06.28 17:05 조회462
톡톡 훈훈한 이야기 행복한마음

천사가 정말, 이 땅에 있을까? 나는 아기천사를 만났습니다. 이름이 '희주'입니다. 귀엽고, 예의 바르고, 사랑과 감사를 표현 할 줄 아는 정말 사랑스런 아기천사입니다. 정이 있고 사랑의 본질도 아는 아이입니다. 3년 전 가을 어느 날, 매제의 개척교회에서 아기천사 희주를 영화처럼 만났습니다. 희주 할머니가 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야. 나관호 목사님. 허그(Hug)해 드려.“
"어머머! 얘 좀 봐. 잘 안기지 않는데..... 볼에도 뽀뽀해드려."
어머머! 얘 좀 봐. 희주는 볼에 뽀뽀 안 해요. 자기 손에 뽀뽀하고, 흔들어 보여주는데. 호호호."

아기천사 희주가 나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볼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희주를 향해 손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날렸습니다. 그러자 희주도 하트를 날려 주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 사랑스런 '아기천사' 희주의 유치원 졸업식 모습 (가운데가 희주)    © 정헌영, 나관호

 

그렇게 만난 나와 아기천사는 서로를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습니다. 나는 희주를 만날 때 과자로 사랑마음을 선물했고, 아기천사는 허그로 답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쌓여진 '정과 사랑'은 행복을 주었습니다. 희주를 생각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 내 마음이 정화되고 순수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맑은 눈망울과 미소를 보면, 마음이 행복합니다. 역시 천사입니다. 그런데 희주가 고모가 있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때 내가 말했습니다.

내가 기도로 키우는 영적 딸이잖아요. 희주 평생의 기도 후원자가 될거예요.”

희주도 나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동화책에 안경 쓴 사람이 나오면 희주가 "나관호 목사님이다"라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나를 찾으며, 일명 '까까 목사님'이라고 호칭도 한다고 합니다. 아기천사 속에도 정과 사랑이 싹트고, 사랑과 진실이 드러난 모양입니다.

크리스마스에 희주가 동영상으로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나에게 하트를 날려주었습니다. 나도 동영상으로 희주에게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희주가 내 동영상 속 나를 보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 아기천사 희주를 바라보고 생각할 때면, 어른들이 희주처럼 순수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원이 생깁니다. 시기와 질투, 모함과 이간, 나만 잘되고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돈 욕심 많고, 교만하고 거짓되게 살아가는 때로 찌든 일부 어른사회에 아기천사의 마음이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 아기천사 희주의 이모저모. 할머니,엄마,아빠, 선생님에게 사랑과 진실을 배운다.    © 정헌영, 나관호

 

희주는 그 사이 잘 자라 유치원을 졸업했습니다. ‘프리 킨더가든’(Pre-Kindergarten) 졸업식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역시 눈에 띄고, 흑인과 백인아이들 사이에서도 당당한 희주를 보게 됩니다. 희주가 사진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사랑과 진실을 알아요. 기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예쁘죠? 사랑해요 목사님! 만나고 싶어요. 미국, 빨리 오세요.”

아기천사 희주를 통해 삶을 배웁니다. 희주처럼 순수하고 맑고 밝은 마음을 만들어야 하고, 감사와 사랑을 알고 반응해야하고, 사람을 진실한 마음으로 대해야하며, 마음에 심겨진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희주와 공간적으로 멀어져 있지만, 희주와 나의 마음속에는 서로를 향한 '그 사랑마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 희주야. 잘 자라거라. 목사님이 더 기도 많이 할께"

그런데 희주의 순수하고 진실되고, 예쁜 사진을 보다가 숨겨져 있던 일종의 사진 트라우마가 생각났습니다. 어른들의 무책임하고, 거짓되고, 때 묻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런 상황을 만든 사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도 헛웃음이 생기는 사단의 공격이기도합니다. 에스더를 모함한 하만이나 요셉을 모함한 보디발의 아내 같은 그런 사람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수십년 전, 내가 교회와 대학교에서 마음으로 부모처럼 섬기며, 진실과 진심으로 모셨던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진을 내가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닌다는 거짓과 음모를 그 누군가가 만들어내, 그분에게 보고했다는 말 듣고 경악했던 기억입니다. 당시에는 모함하려면 말이 되게 만들어야지. 사진을 들고 다니며, 자랑을,,,!!??’이라며 웃어 넘겼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나관호 목사님! 나 교수님! 나 실장! 내 사진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녀요?”

엉터리 각본으로 만들어져 방송 못할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문책임자로 헌신을 했습니다. 교회 측에서 들어와 달라는 연락을 먼저 해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중에는 대외홍보 책임까지 모두 맡아서 두 가지 업무에 헌신했습니다. 교회 최고의 부흥기, 내 개인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 제자들과 함께 그리고 비서실장 시절 모습...내 인생의 전성기다     © 나관호

 

어느 날, 그분께서 대외적인 상을 받으러 가실 때, 저를 조용히 불러 수행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조용히 수행하도록 비서와 나만이 알도록 해달라고 내가 먼저 요청했습니다, 은밀하게, 조용하게, 소리 없이 모시고 싶었습니다. 비서에게도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만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이어져, 그분에게 이슈가 있을 때와 내가 인터뷰 환경을 기획해 언론사 15-20개 정도 불러 수시로 인터뷰를 진행해 드렸습니다. 해외도 측근교수들과 같이 다녀오면서 사진을 많이 찍어 드렸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비롯해, 가시는 곳마다 만나는 외빈과의 사진을 꼼꼼히 찍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항상 나에게도 같이 사진 찍자고 날 잘 챙겨주셨습니다. 훗날, 그분의 개인 역사를 남겨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모여진 구별된 사진은 5백 장도 넘어섰습니다.

나는 신학대학원과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하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현장목회를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내 종착지가 목사이니까요. 그래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뒤로하고 목회를 배우러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그분과 상의 드리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날, 그분에게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침 외국에 나가셔서.... 비서에게 그 동안 모았던 사진을 전달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섬겼던 그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에서 새벽예배를 혼자서만, 연속으로 1년도 넘게 자원해서 했습니다. 그 기간은 설교의 칼날을 가는 귀한기간이었습니다. 몇 년 뒤,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분도, 그 누구도 사람을 찾아가 만나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 목회 경험을 하면서 철저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는 목회인생이 되어야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신학교 교수자리가 먼저 연결되었습니다. 미국의 신학대학 한국캠퍼스에서도 교수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학교 앞길에서 우연히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방에서 올라온 것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자기 곁으로 다시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비서실장으로 헌신하게 되면서 신학박사과정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봉을 안받고, 장학금만 받기로 했습니다. 연봉을 일종의 학교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분이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고마워 박사과정을 마치는 동안은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사진 트라우마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어느 날, 교수회의를 마치고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셨는지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 실장! 내 사진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닌다면서요?”
, 그런 적 없습니다. 삼자대면하게 해주세요.”

그러나 속으로는 그분을 바라보며, ‘, 그런 적 없구요. 그렇게 했으면 우리 딸들이 지옥자식이 될 겁니다. 아니면 그렇게 모함한 사람의 자식 그렇게 될 거라고 누구 앞에서나 말할 수 있어요.’라고, 원통해서 무서운 말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모함이 지어졌는지 생각을 전혀 못했습니다, 십여 년이 흐른 후에야, 지방교회로 갈 때 비서에게 전달한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거짓보고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사진과 그분’, ‘그분과 사진아무리 연결해도 풀리지 않았는데, 기도하는데 깨닫게 하셨습니다. 은밀하게, 조용하게, 거의 아무도 모르게 교회에서 그분을 모셨기 때문에 모아진 사진을 본 그분의 측근 누군가가 놀랬을 것입니다.

이게 뭐야, 나 목사 뭐하는 사람인데 어르신 사진이 이렇게 많아. 같이 찍은 사진도 많네! 이게 뭐야!”

그리고 날 모함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오히려 그런 사람이니 자신들의 어두운 마음 수준으로 나와 그분을 이간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철저히 믿어주셨고, 대신 갈 자리도 가게 하셨고, 언론사 사장, 장관, 총장, 국회의원도 내가 대신 만났습니다. 그분은 잊었어도 난 잊지 못합니다. 그런 관계를 떼어놓으려고 사진사건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사진 모함사건의 전말을 말씀드렸더니 그 사진 다 어디 있느냐며 아쉬워했습니다.

그 후 그분과의 만남이 뜸해졌습니다. 아마 측근에게 말을 했을 것이고, 아직도 영향력을 미치는지, 내가 그분을 못 만나도록 하는 것을 눈감고도 알정도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다시 기억합니다,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그분을 위해 늘 기도합니다,

진실 되고, 진심담긴 희주의 사진을 보니, 아기천사 희주가 말을 합니다,

힘내세요. 목사님! 이젠 제가 기도할게요. 유치원 졸업해서 많이 컸거든요.”

희주 사진을 보며, ‘사진 트라우마를 다시 씻어냈습니다. 이글을 쓰며 더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니까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에스더처럼, 요셉처럼 진실과 믿음이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진실 되게, 다 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나관호 목사 (작가, 칼럼니스트, 문화평론가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치매환자 가족멘토/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 /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전문가’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생각과 말을 디자인하면, 인생이 101% 바뀐다> 저자)

 

http://newspower.co.kr/sub_read.html?uid=38592  뉴스파워에 게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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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목사,나관호 교수,나관호 치매가족 멘토,나관호 목사님,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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