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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는 역사적 조작

교독기 (판) 2006.09.10 15:51 조회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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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설의 역사적 실체

 

삼위일체설...

 

그것에 대해 고찰해 보기 위해서, 우선 그 역사적인 상황에 대해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생전의 예수는 자신을 여호와와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초기 교회에서는 신과 예수를 동일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삼위일체설이란 종교를 정치에 이용해 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날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때엔 당시 로마에서 스스로 황제라 지칭하는 사람이

 

6명이나 되었다고하는,혼란의 시기였다고 한다.

 

로마의 황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식의 강력한 황제가 아니라,

 

황제는 프리켑스(princeps=제 1의시민)또는 가이사(caesar)이라 불렸으며,

 

민주주의와 다신교를 숭배하는 로마인의 자유로운 사상때문에 시이저마저도

 

황제가 되려다가 공화파에게 로마시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암살 당하는기까지 했으며,

 

그의 양아들 옥타비우스는 황제라는 명칭을 포기하고 프리켑스라는 명칭을 썼다.

 

[옥타비우스는 그 명칭보다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존엄한자)라는 명칭을 들었음]

 

그후 폭군으로 알려진 칼리귤라(=가이우스)와 네로황제가 암살당한후,

 

군인황제시대 서기69년에는 한해동안 무려4명의 황제가 등장하기도 했었을 만큼

 

황제의 권위와 권력세습체계가 미약했으며, 누구든 힘있는 자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6명의 황제 중에 프랑스와 브리튼의 로마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부제는

 

마지막 라이벌인 막센티우스를 쓰러뜨린 후 유일한 황제가 되긴 했지만 ,

 

언젠가는 또 다른 경쟁자가 나올 것을 막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던 것이다.

 

우선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의 자유로운 사상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미트라 종교의 수명이 다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 동안 핍박했던

 

크리스트교를 서기312년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후임황제에게

 

유언으로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명했고 392년에 크리스트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한편 크리스트교는 박해를 받았던 서기 320년무렵까지는 예수의 신성을 제

 

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인성을 위주로 예수를 파악하는 초대교회가 아리우스와

 

그의 제자 세쿰을 중심으로 지하에서 로마제국에 투쟁했었다.


삼위일체설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확립하기위해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니케아]종교회의(=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라는 자가

 

최초로 주장하였는데, 그는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아첨하여

 

그(콘스탄티누스)를 신과 인간의 사이를 중개하는 교황이라 추대하여 아첨을 떨었던 것이다.

 

신성을 여호와만이 가질 수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한 이 이론은,

 

교황으로서의 로마황제는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받고

 

무오류(로마황제의 행동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별의별 아첨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의 법칙도 이때 확립되었다.


삼위일체설은..

 

당시 정통의 아리우스파들조차도 부정했는데, 이유는 예수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늘 말했으며,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와 여호와와 일치한다는 말이 없었다.

 

즉, 예수=여호와=성령이라는 공식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당시 그들의 반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은 아타나시우스파는 그들의 삼위일체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는

 

극소수 예수제자들의 이론을 마치 예수 자신의 입장인 것처럼 떠벌렸다.  

 

결국 삼위일체설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투표'로 결정났다.


기독교의 진리는 결국 '투표'로 정해진 것이다. 


종교란 승자의 정신적 먹이이다.

 

그 로마황제에 대한 아첨꾼들이 두 번 다시 아리우스의 정통파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파라고 못을 박아버렸고 이는 아리우스파를 결국 박해와 순교에

 

소멸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초기 교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가 분리되어


예수를 신과 동일시 하는 내용과 예수는 신이 아니다는 내용으로


의견을 통합하지 못하였는바, 1차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삼위일체'가 투표로서 예수의 신권을 인정한 후 '아리우스파'의 몰락으로

 

자연스럽게 초기교회가 로마교회로 통일 되면서 "예수는 신이다"라는

 

명제하에 삼위일체론이 만들어 진 것이다. <---


크리스트교 공인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나온 삼위일체설,

 

그것은 종교를 정치에 이용해 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고도의 정치전략 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정통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한의[우리식 사회주의]처럼,

 

[삼위일체설]도 당시의 기독교인들로부터도 외면받은 정치적인 논리였던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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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뚜 2006.09.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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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생 때 봤던 내용과 거의 같군요. 오랜만에 이런 글 읽어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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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독기 2006.09.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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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환갑님의 질문을 위해 한가지 더 얘기하자문 요나가 레비아탄 뱃속에서 3일간 지내다 풀리는 것을 신학자들은 사탄의 권세에 3일간 묶였다 풀리는 걸로 봅니다...즉 여호와도 3일간 방조했거나 건드리지 못한 거죠...예수도 죽었다 3일만에 부활하는데 요게 요거에요...3일간 개신교에서는 지옥, 카톨릭에서는 연옥에 있었다가 살아났다고 하지요...그 3일간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즉 여호와는 3일간 방조했거나 사단의 권세, 어둠의 권세를 건드리지 못한셈이죠...그래서 여호와가 절대신이 아닌 겁니다..십계명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선언부터가 다른 제신과 악령을 인정한 꼴이며 레비아탄에 먹힌 요나와 사망에 먹힌 예수가 똑같은 알레고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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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독기 2006.09.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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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기 올렸던 글입니다,,전문을 보시려면 위 검색창에 삼위일체의 역사적 허구성으로 검색해서 자세히 보세요,,꽤 깁니다..답이 되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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