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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커들의 선택레전드 절절한 짝사랑 복붙

ㅇㅇ (판) 2018.10.11 22:03 조회23,678
톡톡 10대 이야기 채널보기
댓글로 계속 달아주셨는데 너무 대댓도 많고 보기도 불편해서 그냥 지금까지 올라온 거 한번에 쭉 복붙했어
추가되면 계속 추가하려고... 글쓰신 분이 삭제해달라고 요청하시면 삭제할게!
***내가 쓴 글이 아니야!!***
밑 사진 글 제목 검색하면 베스트 댓글로 있어!




좋아하는 남자애가 학교는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모범생이었어.
그런데 여기서 모범생이란 게 애어른할 거 없이 모두에게 평판이 좋은 애라는 거.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 반장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세 남매 중 장남인데 동생들도 잘 챙기고 예의범절 몸에 배어 있고,
정말 멋지다 느꼈던 게 그냥 겉치레로 예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뭐라 설명하기 힘든 품위라는 게 느껴진달까?
내가 반하게 된 것도 반 아이들 살뜰히 챙기면서도
한번 성깔 나면 언성도 안 높이고 상대방 멘탈을 조용히
털어놓으며 결국 자기한테 승복하게 만드는 ....
그만의 점잖은 카리스마가 있었어.
그래서 여자애들한테 인기도 많고.
남자애들한테도 인기 많은 친구였다.
게다가 노래도 잘 부르고 악기도 기타랑 드럼 침.
복싱 배워서 몸매도 날렵하고.
얼굴은 준수한 편.
한마디로 사기캐였어. ㅠ
그렇게 모두의 동경을 받던 그애였는데, 나는 그 흔한 발렌타인 초콜릿 한 번 줘보지 못하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갑자기 내가 코피가 났어.
그래서 양호실 갔는데 거기에 그애가 침대에 누워 있음.
(중2때부터 짝사랑했는데 그때가 고1. 중 2때 같은 반인데 고1땐 그애랑은 다른 반이었고.)
거기에 그애가 누워서 무슨 소설책 같은 거 읽고 있는데 심멎하는 줄.
양호 선생님이 나도 코피 멈출 때까지 누워 있으라고 해서 그애 옆옆 침대에 누웠거든.
침대가 세 갠데 걔가 창가쪽에 눕고 난 그 바로 옆에 누우면 티날까 봐 가운데 침대 비워두고 벽쪽에 누움.
양호샘이 반듯이 누우라고 해서 그렇게 있는데... 옆눈으로 걔 얼굴 보고 싶은 거 꾹 참고 눈을 꾹 감았어.
사락사락 걔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으면서 속으로 콩닥거리고 있었는데 양호쌤이 "잠깐 나갔다 올게" 라고 하고 나가신 거야. 그랬는데 그애가 갑자기
"너 왜 나 아는 척 안 하냐."
라고 함. ㄷㄷㄷ
나는 눈 감고 있던 김에 그냥 자는 척해버리려고 대답을 안 했는데,
"김OO, 왜 나 아는 척 안 하냐고."
라고 내 이름 정확히 부르면서 다시 묻는 거야. ㅠㅠㅠㅠ
안 자는 거 안다는 듯이 ㅠ 그래서 자다 깬 척하면서
"으응?"
하며 걔쪽으로 슬그머니 눈을 떴는데,
걔는 소설책에서 눈도 안 뗀 채로 피식 웃고 있음.
여기서 다시 심멎ㅜㅜ 근데 내가 볍신같은 게 그때 한다는 말이
"아, 안녕....?"
이랬음 ㅋㅋㅋ 근데 걔가 심드렁하니 뱉듯이 이러는 거야. 
"넌 왜 걸핏하면 코피 터지냐." 
그 말투가 꼭 딱하단 듯이 오빠가 챙겨주는 말투 있잖아.
‘에그~ 칠칠치 못하게 맨날 코피나 나고~'라고 하면서 코피 닦아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ㅠㅠ
거기에 감동 받은 게.
중2 때 같은 반일 적에 교실에서 두 번 정도 코피 난 적 있거든.
그중 한 번은 반장이었던 걔가 양호실 데려다줬었고.
그걸 걔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근데 여기서 내가 2차 볍신미가 터져.
"넌 왜 걸핏하면 코피 터지냐"하는데 그때 걔한테 신세진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아 미안."
이래버림 ㅠㅠㅠㅠㅠ 그랬더니 걔가 읽던 책을 덮더니 날 보더라.
그러더니
"누가 주먹으로 때린 건 아니지?"
이러는데 누가 봐도 농담인데 꼭 진담 같은 말투에 진지한 얼굴로 묻는 거야. (다시 쓰면서도 심장 엄청 나댄다 ㅋㅋ)
그래서 내가
"아하하... 그건 아니지... "
라고 얼굴 빨개진 게 나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말 더듬었어.
제발 이제 말 좀 그만 시켜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감당 못할 정도로 설레 있는데, 그애가 갑자기 일어나더니만 내 옆 침대(그러니까 걔랑 나 사이에 있던 중간 침대)의 베개를 살짝 아래 방향으로 끌어내리더니 침대 툭툭 치면서
"이리 와서 누워"
이럼 ㅠㅠㅠ
이 무슨 전개인가 싶을 정도로 막 가슴 뛰고 쿵덕쿵덕거리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누구한테든 나 좀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음. 몸은 굳고 심장은 나대고 말로는
"왜. 왜 그래. 시...싫어."
라고 가까스로 의사표시를 함.
그랬더니 걔가
"나도 환잔데, 거기까지 출장 가야 하냐."
라는 거야.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침대 텅텅 두드림.
어서 와서 누우란 듯이. ㅠㅠ (근데 거기까지라고 해봐야 침대 하나만 더 지나쳐 오면 되는 거리 ;;)
그래서 뭔가 그런 야리꾸리한 이상한 분위긴 아니구나 직감하고(꿈깨고서 ㅋㅋ) 엉거주춤 일어나서 그 침대 쪽으로 갔거든?
그랬더니 다시 베개 위치 매만지더니
"자, 여기서 베개를 머리로 베지 말고 목으로 벤다는 느낌으로 누워봐."
라고 하는 거야.
이쯤 되니까 거의 나도 모르게 그애 말에 따라 몸이 움직여짐. 그애가 하란 대로 우선은 위치 잡고 앉았는데.
근데 그러면서도.. 누우려니까 왠지 되게 신경 쓰이는 거야. 베개를 목으로 벤다는 느낌으로 누우면 얼굴이 더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 같잖아. ㅠㅠ
그애앞에서 그런다는 게.;;; 게다가 한쪽 코는 막은 채로 말야.
너무 혐스러울 것 같잖아.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걔가 또 픽 웃어.
그러면서
"안 쳐다볼게, 편히 누워."
라고 하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커튼 쳐버림 ㅋㅋㅋ 그렇게 우리 사이엔 커튼이 쳐지고, 나는 누웠고.
커튼 너머로는 또 사락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내가 진짜 용기 내서 말 걸었다?
"어디... 아퍼?"
라고 물었어. 내가 걔한테.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넌 어디가 아파서 양호실 와 있어?"라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저렇게 물음)
그랬더니 걔가
"일찍도 물어본다."
라고 좀 퉁명스럽게 말함.
그러곤 잠깐 정적이 흘렀는데 이상하게 그애가 화난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근데 그애가 되게 진지한 투로
"몸조리 잘해. 반 달라졌으니까 이제 나처럼 착한 반장이 챙겨줄 일도 없을 거고. 네 몸 네가 알아서 챙겨야지."
라고 말하는데 '착한 반장'이라고 자기를 미화해서 말하는 것도 왠지 밉지가 않고, 영감님처럼 챙겨주는 말을 하는 게 진짜 마음 따뜻해지더라.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 자신이 진짜 원망스러운 게 소설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같았으면 "그러는 넌 왜 네 몸 못 챙겨서 양호실 오냐?"라는 식으로 톡 쏴줬을 텐데.
그때의 난 너무 바보같이 그냥
"응."
하고 말았어.
만화 캔디에 보면 캔디가 테리우스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이라고 하잖아.
난 "이대로 영원히 코피가 멎지 않기를."
속으로 진짜 간절히 원하게 되더라.
그렇게 커튼을 사이에 두고 그애랑 나란히 누워서 가끔씩 들려오는 그애 목소리를 듣는 설렘, 그리고 그렇게 툭툭 챙겨주는 말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곧 양호 샘이 들어오시고 ㅠㅠㅠ
아. 양호 선생님 들어오시기 전에 걔가 그런 말 했어.
"나 사실 꾀병이야.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이니까 선생님한테 이르지 마라."
라고. 난 알았다고 했고.
얘같은 범생이도 이렇게 땡땡이를 치나? 싶어서 속으로 또 다른 매력이다 하고 풉 웃기도 했지.
그러고 나서 양호샘이 들어오시자 그애가
"선생님, 저 조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는데 연기가 너무 천연덕스러운 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또 거기에 호응해서 "아, 많이 안 좋니?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이러시고.
역시 평소 하도 잘하다 보니 누구도 의심 않는구나 싶었지. 양호샘이 조퇴계 써주신다고 하고,
그애는
"감사합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소리 다 들리고.
이제 가겠구나, 싶어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쪽 커튼이 젖혀지면서 그애가
"또 보자"
함. 환하게 웃으면서. ㅠㅠ
그때 진심으로 심장 정지가 0.1초 옴.
그렇게 그애는 가고 ㅠㅠㅠㅠ 발랑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느라고 좀더 누워 있었어.
양호샘이 "넌 코피 아직 안 멈췄니?"하는 소리 듣고 그제야 비실비실 일어났는데, 문득 그애가 무슨 핑계 대고 양호실 왔나 궁금한 거야.
그래서 걱정하는 척하면서 샘한테
"근데 쟤는 어디가 아프대요?"
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샘이 말하시길
"기흉이라서 수술했어."
이러시는 거임!! 완전 놀래가지고 언제요?
하고 벌컥 물었더니 지난 방학 때 발병해서 수술했었다고.
그 뒤로 예후가 나쁘면 재발할 수 있는데 그래서 가슴 통증 생길 때 잘 살펴보고 일시적인 거 아니고 지속되면 곧바로 병원 가봐야 하는 거래.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왔는데 좀 누워 있다가 괜찮아지지 않으면 병원 가기로 하고 온 거라고. ㅠㅠ...
난 순간 혼란스러웠지.
뭐가 거짓말일까 하고.
꾀병이랬는데 기흉 수술 받은 거 핑계대고 아픈 척한 걸까 아니면 진짜 아팠던 걸까.
수술 받은 거 자체를 거짓말할 순 없잖아 ㅠ
그래서 어질어질하면서 교실 들어갔고,
그 다음날 일부러 걔네 반 쪽으로 가봤는데...
역시나 그애 결석했더라고. ㅠㅠㅠ
꾀병 아니었던 거야. ㅠㅠ
그제서야 알았어.
아팠는데 그거 감추고 나한테 장난친 거구나...라고. ㅠ
나중에 '기흉'으로 검색했더니 그 통증이 재발하면 숨 쉬는 것도 힘들고 하여간 사람이 참기 힘든 고통이래 ㅠㅠㅠㅠㅠ 그걸 알고 나니까 내 가슴이 더 미어지는 것 같았어.
자기도 아픈데 나 코피 난 거 챙겨준 거잖아.
나랑 말도 해주고.
근데 난 꾀병이란 거 믿을 정도로 둔했던 거잖아.
그다음 날엔 그애가 다시 학교 나오긴 했지만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못하겠는 거야.
내가 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단 소리 듣고 나서는 더 좋아지고, 그래서 더 눈도 못 마주치겠고.
막 그런 거 있잖아.
많은 아이들을 챙기고 지켜주는 타입의 애였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병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걸 다른 애들한테 아프다고 내색도 잘 안 하고 그런 거 보니까 보호본능 돋으면서 ㅠㅠ 그러면서 내가 더 보호받고 싶어질 정도로 그애가 강해 보이고. ㅠ
그렇게 난 말 그대로 끙끙 앓았어.
그애에 대한 마음으로 내가 기흉 걸린 것처럼 가슴앓이가 심했지.
그렇게 지내전 어느 날 또.
복도에서 애들하고 깔깔거리며 음악실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애랑 또 딱 마주침.
근데 그애가 애들 다 있는 앞에서 나한테 슥 다가오더니만 애들 다 들리게 귓속말로(몸 내 쪽으로 기울여서 비밀처럼 말하는데 다른 애들 다 들리게;;)
"너 비밀 누설한 거 아니지?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이럼. ㅠㅠ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보니까 어버버 하고 있는데...
"말했으면 지금 실토해라. 3초 준다"
이러는 거야.
허허허...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정답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ㅠ 난 또 뇌정지 상태에서 
"말 안 했어."
라고 최악의 대답을 해버림;;;ㅋㅋㅋㅋ ㅠㅠ
그랬더니 걔가 좀 화난 표정 지으면서 이러는 거야.
"근데 왜 나 피해."
하... 지금이라면, 아니 그때 뇌정지만 안 왔더라면
"너 왜 꾀병이라고 뻥쳤어!" 라고 따지는 게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텐데.
퓨... 근데 왜 그애 앞에만 서면 그렇게 지질해지는지 그땐 또
"안 피했어."
라고 또 무미건조한 답을 해버림 ㅠ.
그랬더니 걔가
"거짓말까지 하네?"
라더니 화난 표정을 짓는 거야.
근데 진짜 화난 게 아니라 지어낸 것처럼, 마치 어린애한테 하듯이 말야 ㅠㅠ...
같이 있던 내 친구들도 덩달아 어버버 어버버한 상태고.
그러고 보니까 거짓말은 그애가 했는데 왜 내가 혼나는 기분이 되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그렇게 복도에서 다른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말 걸면서 친한 척하고, 그러니까 너무나 당황스럽고.
같은 반일 때도 이렇게까지 확 다가온달까?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뭔가 특별해진 느낌.
특별대우 받는 느낌이 들어서 다리까지 후들거리더라.
최대한 냉랭하게 태연한 척하면서
"알았어. 다음부턴 아는 척할게."
라는...
역시나 바보같은 말을 하고 지나가려는데
"고맙다."
라면서 또 씩 웃는 거야. ㅠㅠ
속으로 난 뭐가 고맙단 건지도 모르겠고,
머리에선 대혼란 파티. ㅠㅠ
그렇게 그애는 또 덤덤하게 지나가고,
내 친구 두 명은 다들 난리가 났지.
"헐!! 뭐야, 너네. 둘이 무슨 비밀이 있는데? 너 쟤랑 친해?" 등등. 그럴 정도로 그애가 학교에선... 그런 존재였어.
거의 준연예인급이어서 그애의 특별한 행동 같은 건 애들 사이에 괜시리 회자되기도 하고 그랬거든.
걔를 주인공으로 해서 팬픽 쓰는 애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처럼 존재감 없는 애 입장에선 이렇게 튀는 행동하지 말아줬음 하고 바라는 마음까지 생겼어.
그러면 그럴수록 더 피하게 될 것 만 같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인사 안 하기도 겁나서 그애랑 마주치는 것 자체가 겁나게 되버리는 거야. ㅠㅠㅠ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이런 심정 이해가 되려나 모르겠다. ㅠ
그 뒤로도 체육대회랑 축제 때 에피소드가 몇 개 더 있는데 다 건너뛰고...
그러던 어느 날 1학년 겨울방학 직전의 일이야.
방학 때 다닐 학원 알아보는데 중등고등 학원이 같은 건물에 있는 학원이 있었어.
그런데 친구가 말해주길 그 학원에 그애의 남동생 여동생이 다닌다는 거야. 중등반에.(남녀 쌍둥이 동생이었고 그때 그애들은 중1.) 소문 몇 마디 듣기로는 오빠이자 형인 그애가 두 쌍둥이 동생을 케어하는 입장이었다나 봐.
둘끼리는 되게 현실남매처럼 티격태격하는데 오빠형 말이라면 꼼짝 못한다고. 밖에서 가정교육 못 받은 애들처럼 굴면 엄청 혼나고 시험 성적 많이 떨어지면 둘이 나란히 서서 손바닥도 맞는다 하더라고.
아주 어려서부터 그랬다나 봐 ㅎㅎ ;;;
이건 좀 이질적일 수 있는데, 다른 애가 그러면 오글거리거나 똑같은 형제끼리 웬 훈장질이야 하고 반감 일어났을 텐데.
그애가 그럴 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더 두근거리더라.
쌍둥이니까 부모님이 다 보살피고 통제하기엔 무리였을 수도 있다 싶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그랬다니까 어린 그애가 어린 동생들 세워놓고 훈계하는 거 상상하니 그건 또 그것대로 귀엽기도 하고.
고등학생인 그애가 그럴 거 생각하면 이상하게 두근.
그애가 반장 노릇하는 거 보면 동생들한테 얼마나 극진할지도 다 그려져서 그애의 여친이 못된다면 동생이라도 되고 싶단 애들까지 있을 정도였어. ㅎ
그 쌍둥이 애들은 OO이 동생들로 더 유명했고.
암튼 그러다 보니 그 학원에 다니면 그애를 방학 때도 볼 확률이 있다는 거지.
걔가 챙기러 올지도 모르잖아.
참고로 그애는 학원이라고는 실용음악이나 복싱 같은 취미 학원만 다니고 공대 다니는 사촌 형한테 수학 과외만 받는다고 들었어. 영어는 인강 듣고.
나는 그 학원에 다니기로 했어.
그러곤 역시나 어느 날 그애랑 또 마주칠 일이 생겼지.
그 학원에는 나한테 그 정보 준 친구랑 같이 등록했어.
그런데 방학 하고 2주가 지나도록 그애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거야. 대신에 그애 동생들만 종종 마주쳤지. 귀엽더라. 둘이 같이 다니는 건 아닌데 그냥 따로 떨어져 있어도 둘끼리 너무 닮아가지고 누군지 다 알 것 같았고.
올 땐 각자 자기 친구들하고 어울려 오는 것 같은데 집에 갈 땐 둘이 같이 갈 때가 많은 것 같더라고.
하여간... 같이 등록한 내 친구는 학원 재미없다면서 자주 빠졌어.
그러다 보니 난 그애를 보겠다는 목적도, 또 친구랑 같이 학원 다니는 재미도 잃은 채로 혼자 그저 공부만을 위해 밋밋하게 다니고 있었어.
그러던 그날도 학원 마치고 나가는데 건물 밖에 그애가 떡하니 서 있는거야. ㅠㅠ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또 모른척, 고개 숙이려다가 용기 내갖고 그 애를 바로 쳐다봤다?
그랬더니 그애가 날 똑바로 쳐다보는 거야.
그러면서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 그 표정을 해석하자면 뭘 잔뜩 기다리는 듯이 기대하는 눈빛 있잖아.
귀쫑긋 표정. ㅋㅋ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할 거지?'라는 표정 있잖아. 하.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힘들다. 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 표정에 나는 말하고 말았어.
"안녕?"
이라고. ㅠㅠ
그렇게 먼저 인사했더니 그애가 한시름 놓인 것 같은 얼굴로
"응. 안녕."
하더라. ㅋㅋ
이 안녕이라는 말을 먼저 뗀 내가 나 자신도 너무 기특했고, 그런 걸로 기특한 내 자신이 좀 한심하기도 했어.
그때 걔가
"너 이 학원 다녀?"
묻더라고.
그러면서 자기 동생들도 여기 다닌대.
난 "다 알고 여기로 접수했다."라고 속으로만 이실직고를 하면서...
하, 좀 창피했어. 속으로나마. 스토커 같잖아 ㅠㅠ아니,
실제 스토커지 뭐야.ㅠㅠ
팬으로 치자면 사생팬이고. ㅠㅠㅠ
암튼, 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아, 그래? 그렇구나"
라는 아주 부자연스러운 답변을 했고,
그애는 나한테 묻더라고.
"중등부 애들은 아직 안 끝났을까?"
라고.
동생들 기다리는 모양이었어.
근데 건물만 같은 거지, 나도 언제 어떻게 시작하고 끝나는지 정확히는 몰랐거든, 그래서
"잘 모르겠어."
라고 이때는 거리낌 없이 정직하게 말했어.
근데 가만 보니까 그애 손에 봉투가 들려 있고 그 안에 핫도그가 있는 거야.
동생들 주려고 사왔나 봐.
품에 안고 있더라고.-겨울이어서 춥기에 식을까 봐 그런 건지. ;;ㅎㅎ
눈에 뭐가 씌다 보니까 별게 다 신선하더라.
보통은 분식집 같은 데 데려가거나 하지 그걸 싸들고 오진 않잖아. ㅋㅋ
근데 무슨 영감마냥 그걸 사가지고 품에 안고 온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친근했어.
(참고로 방학 전에 있었던 축제 때는 나와 그애의 개인 에피소드라기보단 그애 단독의 에피소드야. 그래서 학원 다니던 이때까지도 아직 마주치면 어색어색하던 사이^^;;)
그렇게 핫도그에 시선이 꽂히고 나도 모르게 풉, 웃었던가. 빙그레 웃었던가. 하여간 웃은 모양이야. ㅠㅠ
그랬더니 그애가
"왜 웃냐."
함.
그런데 내가 거기에 대고 "핫도그 사들고 온 모습이 귀엽고 의외여서'라고 할 만한 강심장이 못 되잖아.
그래서 그냥
"아, 동생들한테 주려고 사왔어? 맛있겠다."
라고 나답지 않게 길게 말했어.
그랬더니 핫도그 세 개 중에 하나를 꺼내들어 나한테 내밀더라.
다른 말도 안 하고 그냥
"자"
라고만 하면서.
나 먹으란 소린가?? 설마, 나 주는 거?라는 생각에 엉겁결에 받아 들긴 했어.
받아들자마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준다고 그냥 받은 거야? 사양도 한 번 안 해보고? 라는 생각에 뒤늦게 나 자신한테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멍을 때렸어. ㅠㅠ
그러자 그애가
"응. 들고 서 있으라고 줬어."
라고 하는 거야. 내 마음속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ㅎㅎㅎ ㅠㅠㅠㅎㅎ
난 또 볍신 오브 더 볍신처럼...
"아, 응. 그래... "
하고 때리던 멍을 계속 때리려는데,
그애가 그냥 풉하고 웃더라.
그러더니 먹으래 ㅠㅠ 나 먹으래 ㅠㅠㅠㅠㅠ
"먹어."
라고 짧게만 말하고 그냥 날 멀뚱히 바라보더라?
꼭 먹는 거 보겠다는 사람처럼. 그러니까 못 먹겠잖아.
그래서
"아, 그럼 나 갈게..."
라고 하고 가던 길을 가려는데 그 말 마치기가 무섭게 그애가
"앗. 안돼."
이러는 거야.
놀라서 멈칫했지.
하기사 지나가다가 핫도그만 하나 얻고 그냥 가다니 이건 먹튀니까 좀 그런가? 싶었는데
그애가 말하길
"걸으면서 먹는 건 없어 보여서 안 되고. 여기 서서 다 먹고 가."
라는 거야.
읭?? 서서 먹는 건 괜찮고 걸으며 먹으면 안 된다니. 이건 무슨 논리지? 싶으면서도 어쩐지 납득은 되더라.
포장마차 같은 데서도 서서 먹는 거니까 그건 정식으로 쳐줄 수 있지만 걸어다니며 먹는 식당은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그애의 논리를 내가 정당화시켜주면서 한 입 먹었어.
한 입 베어물고는 천천히 씹었어.
마치 잘 먹는지 못 먹는지 검사 받는 것 같은 마음이 되어서 땅바닥만 쳐다보고서 먹는데, 그애가
"그런데 OO야"
라고 다시 말을 거는 거야.
그래서
"응"
그랬더니
"혹시라도 네가 어른들 앞에서 실수할까 봐 말해주는 건데..."
라면서 살짝 말끝을 흐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씹던 거 멈추고 그애 얼굴을 봤다?
그러니까 그애가 되게 자상한 말투로
"누가 먹을 거 주면 먼저 고맙다는 표현부터 하고 먹어야 하는 거야." ....
그 말 듣고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막 숨고 싶어졌어.
그렇잖아. 좋아하는 애를 우연히 만나서 핫도그 맛있겠다고 탐내다가, 엉겁결에 핫도그 받고 그애 앞에서 우걱우걱 핫도그 씹다가 고맙단 인사도 안 하고 먹냐고 지적받고 있는 거잖아. 객관적으로 그런 거잖아.
그래서 씹던 거 삼키지도 못하고 굳어 있는데-아마 울상 지었을 거야 ㅠㅠ-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그애가 좋았어.
그 또래 애들 보면 특히나 남자애들, 그럴 때 보통 “야, 넌 고맙단 말도 안 하냐?” 이렇게 튀박 주잖아.
근데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는 게 좋으면서도 더 얄궂기도 하고. 그 말을 듣게 만들잖아.
그래서
“고마워...”
했어.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핫도그가 세 개였잖아.
그래서
“이거 너 먹으려고 산 거였지? 내가 뺏어먹은 거네. 미안해.”
라고...
예절 중시하는 애란 거 다시 상기하고는 최대한 또박또박 말했어. 그랬더니 그애가 나 빤히 쳐다보면서 이런다.
“그럼 한 입 주든가.”
그때 진짜 얼굴 터지는 줄 알았다.
후끈하게 달아오르다 못해서 터져버릴 상태... ㅜㅜ
그런데 한 입을 어떻게 줘.
내가 먹던 거여서 침도 조금 묻은 거 같고, 걔랑 나랑 한 입씩 핫도그를... 어떻게 나눠 먹어.
어떻게 그러냐고. ㅠㅠ
그래서 또 여기서 바보 같은 말을 했어.
“싫어, 그건...”
이라고. ㅠㅠㅠ
그랬더니 걔가
“와아. 하하하.”
웃더라고. 기가 찬단 듯이.
ㅋㅋ 내가 봐도 웃기지.
뺏어 먹어서 미안하긴 한데 한 입 주는 건 싫다라니...
이쯤 되니까 나도 그냥 어처구니가 없고 웃음만 나고 해탈하게 되더라.
어디 숨을 데도 없고 그냥 핫도그 들고서 냅다 튀고 싶은 심정이었어.
근데 그 애가 갑자기
“안 되겠다.”
이러더니
“들어가자.”
하는 거야.
어딜 들어가나 싶었는데 그애가 앞장서서 학원 안으로 들어가더라고.
이때다 싶어서 그냥 가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면 이제 진짜 영영 못 볼 것 같고.
귀신에라도 홀린듯이 따라 들어갔는데, 걔가 학원 로비에서 두리번대는 거야.
그러더니
“여긴 어떻게 자판기도 하나 없냐.”
라고.
그러면서 정수기 있는 데로 가서 일회용 컵에 정수기 물 받아가지고 오는 거야.
“마셔.”
라고 나한테 내미는데
으어... 떨려서 받을 수가 있어야지.
자판기 컵이 작잖아.
그애랑 손이라도 닿으면 어떡해.
그런데 그애 손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진짜 진짜 발끝에서부터 용기란 용기는 다 끌어내가지고, 내 육안으로 봐도 내 손이 떨리는 걸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았어.
근데 지금 생각해도 이 애의 자상함은 정말 완벽했던 게,
그 와중에 미지근한 물이었던 거야.
작은 컵에 찬물 뜨거운 물을 조금씩 받아서 준 거였어.
ㅠㅠㅠ 날도 춥고 거기다 지적까지 받아서 굳었으니 목 메여 보였나 봐.
물도 먹을 거니까 난 잊지 않고
“고마워”
라고 인사했고.
성수라도 되는 양 그 물을 조심스럽게 넘겼어.
휴... ;;; 솔직히 그때 그 물 받아 마시고는 그다음 그애의 멘트라든지 뭐가 더 있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
아무래도 그때 내 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아.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어.
그렇게 핫도그 하나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다 먹을 즈음에 중학생 애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오더라.
순간 꿈에서 깨는 느낌이랄까? 이제 동생들 오면 얘도 가는 거잖아.
짧지만 좋았던 꿈에서 깨는 기분.
그래서 “나 이제 갈게”라고 하려는데 그애가 중학생 애들 중에 누구 한 명 붙들고 뭐 물어보려는 거야.
그래서 인사할 타임을 놓치고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기 동생들 이름 대면서 아냐고, 둘도 곧 내려오는 거냐고 묻는 거 같았어.
그런데 붙들린 애가 “둘다 오늘 안 왔는데요?”래.
순간 그애 얼굴이 굳음. 몸도 경직됨.
순간 느꼈지. 얘 화났다.
그애가 우리 반 반장이었던 중 2때 가끔 봤거든.
걔 화난 모습. 화나면 순간 멈추는 게 그애 특징이야.
순간적으로 작동을 멈춘 것처럼 돼. 아주 순간이지만.
그래서 나까지 굳었어. ㅠㅠ
핫도그를 급하게 먹어선지 아님 그애가 화난 게 무서워선지 가슴팍이 콱 막히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말도 못 걸고 그렇다고 가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애가 로비에 비치된 의자에 털썩 앉더니
“이럴 줄 알았어.”
하는 거야.
뭔가 허탈해하면서 배신감 느끼는 표정?
난 뭐라 할 줄 모르고 있다가 주춤거리면서 말 걸었어.
“연락 해보고 오지 그랬어...”
그럼 허탕칠 일도 없으니까.
그랬더니 그애가 이러는 거야.
“불심검문할 때 전화하고 오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서 웃는데 순간 섬뜩하더라.
‘이럴 줄 알았지’란 말과 ‘불심검문’이란 말이 서로 연결되면서.
직감적으로 알았지.
쌍둥이 남매는 오늘 죽었다. ㄷㄷㄷ ㅠㅠ ;;
그런데 순간 왠지 좀.
그 동생들이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어.
2주밖에 안 됐지만 오며가며 그애들 자주 봤거든.
2주 만에 오빠 형이 애들 학원 잘 다니나 살피러 왔는데 딱 그날만 애들이 땡땡이 친 걸 수도 있잖아.
내가 맨날 확인한 건 아니어도 최소 애들이 맨날 그런 건 아니니까.
그래서
“동생들 학원 잘 다녀. 다른 날은 안 빠졌어. 진짜야.”
동생들 안 믿었다면 핫도그는 왜 사들고 온 건데?
라는 생각도 들면서... 내가 동생들 항변을 하게 되더라.
그러자 그애가 앉은 채로 날 올려다보면서 이러는 거야.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순간, 헉. 육성으로 헉 소릴 내고 말았지.
진짜 헉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였지.
멍청하려면 온전히 멍청하든가 아니면 완벽하게 영리하든가.
왜냐하면 그애는 내가 그애 동생들하고 같은 학원 다니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잖아.
좀 아까 학원 앞에서 만났을 적에 내가 모르는 척했으니까. ㅠㅠ 멍청한 주제에 그런 사실은 왜 그렇게 빠르게 떠오르는 거냐고. ㅠㅠ
그애가 그렇게 묻는 순간 동생들 다니는 학원으로 일부러 끊었다는 것까지 걸려버린 것처럼 몸둘 바를 모르겠는 거야.
울 것 같더라.
그래서 실제로 울먹여졌던 거 같아.
‘네가 어떻게 알아?’라는 한마디에 모든 걸 들켜버린 듯 당황스럽기도 하고.
왠지 너무 무서웠어.
꿈만 깨면 좋은데 좋은 꿈에서 갑자기 악몽으로 변하는 것처럼...
그렇게 울먹여지는 거 참으면서 서 있는데 그애가 돌연 일어서더니 내 어깨에 손 올리면서
“아 미안해.”
이러는 거야.
“내가 순간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랬어. 미안.”
하면서 사과를 해.
거기서 긴장 풀리면서 나도 모를 말들이 술술 나오더라.
“네 동생 모르는 애들이 어딨어. 너 유명하잖아. 그래서 네 동생들도 다 알아. 이 학원 다니는 사람들 다 알아. 나만 아는 거 아니야.”
라고.
두서도 없이. ㅠㅠㅠㅠ
말하다 보니 더 이상한 변명만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마음은 안정이 되더라.
그애는 내가 뭐라고 하든 다행히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바로 폰 꺼내더니 동생한테 전화하더라.
“어디야?”
라고 묻는데 동생이 뭐라고 대답하자 그애가 고갤 숙이더라고.
그러더니
“형은 지금 어디 있을 거 같아?”
이러는 거야.
으어. 이어서 입술을 한번 깨무는가 싶더니
“학원 빠지는 거랑 거짓말하는 거랑 뭐가 더 나빠?”
라고 하는데, 동생에게 내가 다 말해주고 싶더라.
남동생한테 건 걸 거니까,
그리고 남동생은 이미 형한테 학원 마치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뻥친 것 같으니까.
여동생한테라도 오빠한테 전화 오면 사실대로 말하라고 알려주고 싶더라고.
오빠 화 많이 났다고.
(일례로 그애랑 같은 반일 때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샛길로 빠져들고 싶은 걸 정신줄 잡고 이어서 씀)
아무튼 그애 말에 동생이 아무래도 굳어버린 것 같았어.
“대답 안 할 거야?”
라고 되묻는 걸 보니 그랬어. 그러곤 곧장 또 물어보더라고.
“**이는 지금 어디 있어?”
여기서 **이는 여동생.
그러더니 동생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더 말하려는 걸 끊는 투로
“형 한 시간 있다가 집 도착할 거니까 그전에 **이랑 같이 들어와 있어.”
라고 하고 끊는 거야.
그런데 그 말투가 화내는 것도 아니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실만 전달하는 것처럼 건조해가지고.
내 간담이 다 서늘해지더라.
난 거기서
“난... 갈게...”
라고 두 번째로 ‘가겠다’ 찬스를 썼어.
도망치고 싶어져서.
그런데 그 말을 너무 기어들어가게 한 건지 아님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그애가 대뜸 자기 말을 늘어놓는 거야. 
“쌍둥이들은 이래서 골치야. 무슨 잘못을 저지를 때 절대 단독으론 안 해.”
라고.
그 말에 문득 그게 뭔 말인지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그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는데 이런 논리였어. “한 녀석만 잘못하면 다른 녀석이 일러바칠 거잖아.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렇게 학원 빠지고 싶으면 다른 한 녀석도 꼭 공범으로 만들어. 너도 빠지라고.
그러곤 다음 잘못을 할 때 그 빚으로 같이 잘못해주고.
한마디로 연합군인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 묻더라.
“넌 동생 없지?”
다른 사람은 아마 웃을 거야.
그 말에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 뛰었는지 알면...
‘너는 동생 있어?’가 아니고 ‘넌 동생 없지?’라고 물은 거.
나에 대해 알고 있잖아.
내가 동생 없는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 바보 같지? ㅠㅠ
그러면서 두 동생을 케어한다는 게, 특히나 쌍둥이 동생 케어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를 알게 되면서 그애가 한층 더 우러러 보인달까.
다른 세계 사람 같았어.
나는 먼 터울의 언니만 한 명 있는데 언니랑은 집안 사정상 서먹했고, 그나마도 직장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산 지 오래였어서.
거의 외동딸처럼 지내던 터라.
더군다나 다른 친구들의 오빠들하곤 뭔가 많이 다르잖아. 쌍둥이 애들, 오늘은 엄청 혼날 테지만..
그래서 달아나라고 소리쳐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신경 써주고 관리라면 관리랄까, 내 행동이나 공부에 관심 가져주는 오빠 형이 있단 게 부러웠어.
그리고 학원 안 빠졌으면 핫도그도 먹고 즐겁게 집에 가는 거였잖아.
그런데... 내가 먹탐 부리는 애는 아니긴 한데...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 식어가는 핫도그가 너무 신경 쓰이는 거야.
그래서 
“집에 가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려?”
라고 물었어.
얼른 가서 더 식기 전에 동생들한테 핫도그는 줘야 할 거 아냐.
그래서 그렇게 물었던 건데 그애가 너무 간단히
“아니.”
라고 답하는 거야.
그럼 왜 한 시간 지나서 간다고 했을까, 생각하는데
그렇게만 답하고는 터덜터덜 학원 밖으로 나가더라.
뒤쫓아 나갔지.
이제야말로 진짜 가는구나 싶었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애가 하는 말이,
“돈 있어?”
이러는 거야.
나는
“엥?”
말 그대로 엥, 그러다가 속으로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카드 준 게 있었어.
“응. 있어.”
했더니
“시간은?”
이럼. ㅜㅜ 그냥 집에 갔어야 했나 봐.
그 순간에 심정지로 죽을지도 모를 운명이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있어.”
라고... 뜸 들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 적응하느라고 좀 시간차 두고 답했는데.
내 대답 듣자마자 말하더라.
“그럼 밥 사줘.”
응이든 아니든 뭐라 대답도 못하다가,
“아, 아니, 그게...”
라면서 머뭇거리니까
그애가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짓는 거야.
그러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한마디를 던지더라.
“배고파.”라고.
우리는 걸었어.
한동안은 둘 다 말이 없었어.
나는 그저 어지러워지더라.
‘돈 있어?’ ‘시간은?’ ‘밥 사줘.’ ‘배고파.’ ‘돈 있어?’ ‘시간은?’...
세 글자로 된 이 말들만 계속해서 머릿속을 뒤죽박죽 맴돌면서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겠고 아무 정신이 없더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라고 지금 처한 상황을 나 자신한테 설명해보려 해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거야.
생각해봐.
3년 가까이 짝사랑하고 있는 애랑 갑자기 이러고 있다는 게...
반이 갈리고 또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몇 마디 주고받아본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이렇게 얘랑 단둘이 길을 걷고 있다니.
걷고 있다는 그 자체가 현실감 없이 느껴지더라.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이기도 했어.
아니 남들이 뭐라 하기 전에 나부터가 내가 뭔데 얘랑 같이 밥을 먹으러 가지?라는 생각마저 들었어.
내가 자존감이 좀 낮을 순 있는데 꼭 그래서만은 아니야.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니야.
그 애 자체가 그런 애인 걸 어떡해.
누구랑 조금만 특별한 장면이 연출되어도 그날 바로
“야야, 알어?”라고 하며 소문 쫙 나는 그런 존재였는걸.
왜 드라마나 소설 같은 데 보면 인기 많은 훈남 주인공 주변엔 꼭 허물없이 대하는 여자친구가 있잖아.
모두가 그애 앞에 서면 얼굴 붉힐 적에 그 여사친만큼은 막 뒤통수도 팍팍 때리고 헤드락 걸고 그렇게 말괄량이처럼 구는.
그러다가 결국 둘이 썸타거나 사귀게 되거나 그런 패턴도 있고.
그런 여자친구가 그애에겐 없었어.
중학교 때부터 한 번도 못 봤다.
그 애 주변에는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 훨씬 많았고,
그 무리에 단독으로든 짝지어서든 끼어든 여자애는 없었던 거야.
왜 그럴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어떤 격 같은 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아.
그애부터가 여자애들한테 함부로 대하질 않았거든.
가끔씩 장난치는 말을 던져서 웃기는 적은 있어도 선을 넘지를 않는 거야.
마치 이 애의 뇌 속에 여자란 존중하고 조심해줘야 하는 존재, 라고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뭐라 설명이 안 되는데 하여간 모든 말이나 행동에서 그게 느껴졌어.
예를 들어 피구 같은 거 할 적에도 여자애가 공 맞는 거 막아주다 어쩌다 손으로 터치하게 되면 반사적으로
“아 미안”
하고 얼른 두어 발짝 물러선다든지.
그런데 그게 과장되어 보이지 않고 되게 자연스러운.
그렇게 섬세하게 조심해주는 게 있었어.
든든하게 흔들림 없는 건 좋은데 누구에게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포스.
그래선지 그 애를 대하는 여자애들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편함, 친숙함, 이런 것보다는 설렘이 깔려 있었고 어려움이란 것도 동시에 깔려 있었어.
불편함과는 달라.
그냥 좀 어려운 거였어.
그러니까 그 설렘 같은 걸 뚫고서 허물없는 관계로 진척시킬 만한 여사친이 없었을 거 같아.
내가 분석하기론 그랬어.
그리고 그 심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내가 자존감 없어서가 아니라는 거 설명하려다 이렇게 또 길어졌다. ㅠㅠ
되게 되게 긴장되고 몸둘 바 모르겠는... 꼭 내게 어울리지 않는 명품 옷을 갑자기 걸친 것처럼.
좋다는 걸 느끼기 전에 어쩐지 곤란하고 어색한, 그런 기분으로 그 길을 걸었던 거 설명하고 싶었어.
“어? 어, 그래...”
라고 대답하고 걸었던 걸로 기억해.
걷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해서 미안하지만,
암튼 한동안 둘 다 말없이 걷다가 그 애가 먼저 말했어.
“뭐 사줄 거야?”
라고.
난 정신이 멍해져서 목적지도 정처도 없이 걷고 있었던 건데 그 애가 보기엔 내가 어디 정해 놓고 가고 있는 줄 알았나 봐. 그래서 내가 가는 대로만 쫓아온 건 가 봐. ㅠㅠ
사실 다시없을 기회잖아.
그 애랑 단둘이 밥 먹는 거.
그래서 좋은 데 가고 싶었어.
어디로 갈지 뒤늦게나마 머리를 엄청 바쁘게 굴리고 있는데 
“너 좀 매콤한 거 먹고 싶지 않아?”
라는 거야.
“어? 어떻게 알았어?”
했더니
“핫도그 먹었으니까.”
라고 당연하단 듯 말하더라.
그러더니
“그럼 천국 가자.”
라는 거야.
그렇게 우린 천국에 갔어.
김밥천국에. ㅠㅠㅠㅠㅠㅠ 미안해. ㅠㅠ
지어서라도 더 근사한 데 갔던 걸로 해두고 싶은데. ㅠㅠㅠ 하지만 천국에 들어서자마자 유리창 앞에서 김밥 마시는 아주머니 있잖아.
그분한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더라고.
여기서 새삼 반했어.
식당 나올 때 ‘잘 먹었습니다’ 하는 사람은 많아도 들어가면서부터 인사하고 들어가는 사람 잘 없잖아.
근데 거기서 또 하나 배웠다?
김밥 마시는 아주머니, 바쁘셔서 건성으로 답하거나 본 척 만 척 하실 것 같잖아? 근데 아니더라.
단골도 아닌 것 같고 거의 처음 온 것 같은데도
“아유, 어서들 와요. 밖에 춥죠?”라고 너무 반갑게 인사 받아주시는 거야. 기분 좋아하시면서 말야.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어.
나중에 나도 혼자 오더라도 꼭 인사 해야지 하고.
그렇게 작은 깨우침을 하나 얻고 자리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그 애가 묻더라.
“내가 억지로 데려온 거 아니지?”
라고.
억지로라니..... 누가 나한테 수능 문제 다 알려준다 하더라도 이 기회랑은 안 바꿀 것 같은 순간인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어색한 얼굴로
“아, 아냐...”
했더니 이러는 거야.
“억지로면 어때. 데려왔단 게 중요하지.”
혼잣말처럼 툭 내뱉더니
“안 그래?”
하고선 해말간 웃음을 짓더라.
무슨 뜻일까?
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라고 어리둥절한 사이에 그애는 메뉴를 골랐나 봐.
“난 참치 김밥 먹을 거야. 넌?”
하고 묻더라고.
심장은 심장대로 나대도록 놔두더라도 그 말이 좀 속상했어.
더 좋은 거 사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비싼 거 먹어도 돼.”
라고 했다.
말하고 보니 여긴 김밥천국.ㅠㅠㅠㅠ 아무리 비싸봤자...;; 내가 말하고도 내가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그 애는 
“어, 진짜?”
라고 땡잡은 표정 짓는 거야.
그러더니 또 골똘히 메뉴 종이를 살펴.
이러다 막 이것저것 몇 만 원어치 골라버리려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고개 처박고
“음... 어....”
막 이러더니
“그럼 모듬김밥 먹어도 돼?”
이럼. -.-;;;
세상천지 가장 비싼 거 시킨 것마냥.
그나마 김밥 중에 제일 비싼 걸로 고름.
너무 늘어지는 것 같으니까 주문한 거 나올 때까지 세세한 과정은 생략할게.
참고로 난 쫄면을 시켰어.
걔 말대로 좀 매콤한 거 먹고 싶어서.
아, 근데 내가 쫄면 시킬 때 그 애가 그랬어.
“따뜻한 거 먹지 그래? 뱃속 차가워지잖아.”
이러는데 그 순간에 내가 만약 얘 여친이라면 그냥 먹으란 대로, 시켜주는 대로 먹을 것 같았어.
근데 여친도 아니면서 걔 걱정 받는다는 게...
그러면서 ‘아 그래.’ 하고 순순히 그 애 말대로 한다는 게 왠지 내가 너무 나대는 것 같은 거야. ㅜㅜ
좀 이상한 마음이지? 근데 그랬다. 그래서
“난 쫄면 먹고 싶어.”
라고.... 그 애랑 별 상관없는 애답게 굴었어. ㅠ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 애 눈치를 살피게 되더라.
그런데 그 애는 아주 잠깐 나 쳐다보는가 싶더니 바로 손 들어서
“저, 여기 주문하려고요.”
하고 아주머닐 불렀어.
아주머니 오시니까
“저희는요, 모듬김밥 하나하고.”
라고 한번 끊고는
“쫄면 맞지?”
라고 다시 내 눈 쳐다보면서 확인하는 거야. ㅜㅜ
그때 그냥 쫄면 철회하고 떡볶이든 오뎅이든 따뜻한 걸로 바꿔버릴까 하는 마음이 마구 샘솟더라....
근데도 그냥 끄덕여버렸어. 그랬더니
“쫄면 주문하겠습니다.”
라고. 가볍게 목례까지 하며 주문지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드리면서 주문을 마치더라.
내가 왜 그랬을까.
예뻐 보이고 싶었는데...
착해 보이고 싶었는데....
그 애가 바라는 모습대로 되고 싶고 그 애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싶은 게 내 소원인데ㅠㅠ
그렇게 쫄면과 모듬김밥을 앞에 두니까 그제야 뭔가 좀 실감이 났어.
그 애랑 둘이 밥 먹으러 왔다는 사실이.
김밥하고 쫄면이 동시에 나왔어.
보통 김밥이 먼저 나오는데 일부러 속도 맞춰주신 건가 싶을 정도로 한 쟁반에 담아다 주시더라고.
음식 나온 거 보더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한테 인사하곤 ‘이제 먹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잘 먹겠습니다.”
라고.
내 쪽 향해 살짝 몸 구부리며 꾸뻑하는데,
허억 ㅠㅠ 그야말로 먹지도 않고 급체할 뻔.
왜 이런 데서 심쿵거리는 건지.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인 걸 텐데도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는 게 함정. ㅠㅠ
나만 괜히 못 배운 티 내는 거 같아서 나도 덩달아서 한다는 말이
“네, 잘 먹겠습니다.”
였어.
걔가 그럴 땐 멋있어 보였는데 내가 하니까 되게 오글거리고... 으악.
당장에 이불킥을 못하니까 허공에 발장구라도 치고 싶어지더라고.
그앤 웃음 참는 얼굴 되어 있고. ㅠㅠㅠㅠㅠ
눈도 못 마주치겠어서 쫄면이나 한 젓가락 집으려는데
“김밥부터 먹어.”
이러는 거야.
“응?”
너 먹으라고 시킨 건데.
내 쪽으로 접시 조금 밀어주면서 얼른 먹으란 듯이 기다리더라고.
왜 그러지? 하고 있는데
“먹으라고 했다고 한꺼번에 두 개씩 집어먹고 그러진 마라.” 
하면서 픽 웃어.
헐... 모듬김밥이어서 한 입에 하나도 다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아니 설령 들어간다 하더라도 내가 설마 니 앞에서 김밥 두 갤 입에 집어넣을 수 있겠어?
속으로만 중얼거리는데
“속 버리니까 밥 들어간 것부터 먹으라고.”
라면서 쫄면 위로 하나를 살포시 올려주는 거야.
하... 자꾸 나한테 뭘 먹으라고 주니까....
아까는 핫도그 주더니 이제 김밥까지 주니까...
아까 그 애한테 배운대로
“고마워”
하고 먹었다.
그러곤 김밥에 국물 나오잖아. (쫄면엔 안 나왔음)
그것도 자기가 입 안 댄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먹어보더니 
“안 짜다. 이것도 먹어.”
라면서 내 쪽으로 밀어주고.
무슨 엄마인 줄...;;; 밥은 내가 사주기로 했는데 왠지 내가 대접 받는 기분이 되었어.
그러면서 너희 반은 괜찮냐느니, 공부는 잘 되냐느니 그런 것 묻더라.
마치 저녁식사 자리에서 식구끼리 이것저것 묻는 것처럼. 평범하지만 관심 가져주는 질문 있잖아.
나는 그렇게 재잘거리는 성격이 못되어서 거의 단답으로만 대답하는데, 하나 발견한 게 있었어.
그 애는 밥 씹을 때는 절대 말 안 하고 다 삼키고서 말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까 걔가 뭐 물어보고 그다음에 내 답이 짧으면 그 애가 씹어 삼키는 동안 또 말이 끊기잖아.
그래서 내 말이 조금씩 길어졌어.
그러다가 “너는 어때?”라고 물어보게도 되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게 아까 쌍둥이들 때문에 화났었잖아. 내가 쫄아버릴 만큼.
그거 다 풀린 건가 싶어서... 물어봤다?
“근데 너 기분 괜찮아?”
라고. 그랬더니
“응. 왜?”
하면서 먹던 거 멈추고 의아하단 듯이 되묻더라?
그래서
“아니... 아까 동생들...”
그랬더니
“아.”
하면서 갑자기 표정 굳음.
그러더니
“글쎄..”
라고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여자친구가 바람핀 거 보면 이런 심정일까?”
래.
그만큼 배신감 느껴졌단 건가 봐.
이럴 줄 알았다더니 그래도 믿었던 건가 봐.
근데 그때 나 자신도 못 믿을 만큼 대범한 말이 나왔어.
“근데 넌 여자친구도 없잖아.”
라고.
말하고 나니까 왠지 놀리는 멘트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다 아차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겁나는 거야. ‘아닌데? 나 있는데?’ 할까 봐...ㅠㅠ ;;
그때 그 애 표정이 갑자기 묘해지더라.
그러더니
“맞아. 나 여자친구 없지.”
그러는 거야.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게...
요즘 말론 갑분싸라고 하지? ㅠㅠ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었는데 그 애가 말을 이었어.
“그래도 짝사랑은 해본 적 있어.”
래.
허....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내 귀를 의심했지.
짝사랑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니가 짝사랑을 해?
갑자기 심멎되면서 머릿속에서 전깃줄 혼선된 것처럼 답이 안 나오더라.
그렇잖아.
중학교 때부터 내가 다 봤는데.
전교생이 전부 다 너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도...
거의 그럴 기세로 인기 많았고 지금도 많은데.
누가 너한테 짝사랑을 시켜??
멎은 것 같았는데 멎은 게 아니었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픈 거였어. 심장이.
너무 세게 맞으면 마비되듯이 묵직하게 아픈 거 있잖아.
근데 자랑처럼 말하더니만 다시 말이 없어지더라.
이상하게 진지한 얼굴이 되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더라고.
김밥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것처럼 그래버리니까 난 더 궁금해졌어.
“언제...?”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안 물어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내 말에 또 침묵이 흘렀어... 그래서
“미안해. 이런 거 물어봐서....”
라고 사과했어.
사실은 언제인지만 궁금했던 게 아니라
누구인지, 얼마나 오래 짝사랑한 건지 다 묻고 싶었는데... 그 애랑 분위기 나빠지는 게 너무 싫었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더라.
짝사랑은 내가 너한테 하는 게 짝사랑이지.
넌 아니었을 거야. 라고... 괜히 초라해지면서 먹먹해졌어. 그 애한테 짝사랑 받은 애가 너무 부럽고.
밉기도 하고.
왜 짝사랑에 그쳤을까는 너무너무 궁금하고.
“화난 거 아냐.”
그때 그 애가 그렇게 말했어.
안심시켜주듯이.
내가 또 울상되니까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나 봐.
그러더니
“무지 좋아했었다.”
라는 거야. ............
여기서 마비된 듯 저리는 심장에 큰 바위가 와서 박히는 것 같았어.
먹던 쫄면을 앞에 두고, 김밥 몇 개를 앞에 두고, 차라리 죽고 싶더라.
짝사랑하는 심정 누구보다 내가 잘 알잖아.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나한테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또 일기장에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가슴앓이.
몰래몰래 쳐다보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 펼쳐보고,
그러다 또 혼자 비참해져서 헛웃음 짓게 되고.
혹시라도 그 애가 다른 누굴 사귀게 되진 않나 노심초사 하게 되고.
미친 척하고 고백해볼까 하다가도 그러다 진짜 미치는 일 생길까 봐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누군가 그 애 마음에 그런 존재였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그 순간 나는 돌덩이가 되었어.
능청스럽게 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이것저것 뭐든지 말이야.
그런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 마음이 들통날 것 같아서. 몸은 경직된 채로 입만 겨우 움직여서 말했어.
“그랬...구나.”
라고. 오랜만에 나오는 볍신미였어. ㅠㅠ
그런데 그 애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 거야.
그럴 만도 하지.
힘든 얘기 꺼냈는데 고작 반응이 이거라니.
나 자신의 볍신미를 절감하는 순간, 각성이 왔는지 대뜸 이런 말이 나오더라.
“그런데 너라면. 절대 짝사랑만 하다 말진 않았을 것 같은데.”
역시... 아픔보다 창피함보다 무서움보다 더 큰 게 그 애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애라면 무슨 액션이라도 했을 것 같았어.
무조건.
절대로 그랬을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애답지 않게 다시 입을 꾹 닫는 거야.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나? 싶어서..
좀 친해졌다고 내가 너무 나댔나 싶어가지고 또 좀 주눅 들어 있는데 그 애가 김밥 하나 남은 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러더라.
“아무것도 못했어.”
헐.
너무 의외잖아.
고백은커녕 아무것도라니.
난 좀 흥분했어.
“왜에? 왜?”
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왜를 진짜진짜 진심으로 외쳤어. 그랬더니 그 애가 그러는 거야.
“맨 입으로는 말 못한다.”
그러더니 1초 있다가
“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겠네. 이렇게 실컷 먹었으니.”
ㅎㅎ 하... 내가 하도 발휘를 못하니까 이 애가 발휘해주더라고.
능청스러움을.
덕분에 엄청 긴장해 있던 게 좀 풀렸지.
겨우 얼굴 근육이 풀어져서 나도 그 애처럼 조금 웃음기를 띌 수 있었는데, 그때 대답해주더라.
“친구가 좋아했어.”
라고. .....
갑작스러운 말이어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그다음 말을 들으니까 알 것 같았어.
“좋아한 건 내가 먼저였던 것 같은데. 녀석이 나한테 먼저 고백을 해버리더라고. 그 애 좋아한다고.”
헐... 이 무슨. ㅜㅜ
그러니까 짝사랑녀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친구가 먼저 자기한테 그 짝사랑녀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렸단 거지? 그래서 아무것도... 못했단 거라고?
납득이 되면서도 안 됐어.
“그럼 뺏긴 거야? 아니아니, 양보한 거야?”
라고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어.
그 애라서 납득이 되기도 했고, 또 그 애라서 납득이 안 되기도 했어.
원하는 건 언제나 자기 노력으로 얻어내는,
그런 인상이 강해서.
단지 그 이유로 그렇게 아무것도 못해버렸다는 게 이해가 안 되면서도 정말 친한 친구라면, 죽마고우라면...
그 친구한테 상처 주기 싫어서라도 자기 사심 같은 거 그냥 넣어둘 수도 있을 애 같아서.
그런데 그 애가 그러는 거야.
“양보가 어딨어. 빼앗는 게 어딨고. 물건도 아닌데.”
라고.
난 다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지.
나도 여자면서 그런 생각 못하고 나오는 대로 막 말해버린 게 부끄러웠다.
“미안해...”
뭘 사과하는지도 모르게 사과하고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어. 
“그냥. 여기까지만 할란다.”
그 애도 부끄러웠던 걸까.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못했던 자신이?
아니면 역시 너무 힘든 이야기였던 걸까.
그만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응, 그래.”
라고.
더 이상 캤다가는 나도 감당 못할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어. 조금 남은 쫄면은 이제 불어가고 있었고 김밥은 언제 다 먹었는지 없었어.
“가자.”
하고 일어서는 그 애 뒤를 총총 따라가는데 카운터 앞에서 문득 멈춰 서더니 아주머니한테 이래.
“계산은, 이 친구가 할 겁니다.”
라고. ㅎㅎ
너무나 당당하게 중요한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투로 말야. 그 덕에 좀 유쾌한 기분으로 카드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그 애가 문 잡아주더라.
그런데 정작 나가려고 하니까 몸으로 입구 막더니 이러는 거야.
“너 바보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어.
아니 너무 정확히 들었는데 그냥 환청으로 치부하고 싶었어.
우선은 난 바보가 아니고.
아무리 바보여도 이 애한테 바보 소리 들을 일을 한 게 없거든.
절대절대 없거든.
그 순간에 또 한 차례 멎어버리는 심장이야말로 바보 같았지.
정말이지 검은 하늘이 샛노래지는 것 같더라.
무슨 의미?
무슨 뜻이야?
이러지 마.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래.
내가 잘못했어. 등등 오만가지 생각과 마음이 뒤죽박죽되어서 차라리 못 들은 척 시치미 떼는데,
그 애가 비켜주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아?”
하... 그 순간 진짜 하늘이 날 도운 것 같더라.
다른 의미가 아니었어.
누구나 상상할 만한 드라마 속 스토리는 역시 내 것은 아니었던 거야.
왜인지 모르게 다행이었어.
아무리 이 애가 좋다 하더라도 이 나이에 이렇게 김밥천국 문 틈에 끼어서 심장마비로 즉사해버리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면서 순간이나마 진짜 짧은 몇 초나마 천국행 급행열차를 탄 것처럼 아찔했던 그 순간이, 너무 짧았던 게 씁쓸했어. 
“아하하. 그렇지. 뭐라도 했겠지...”
라면서 영혼 없는 웃음을 날렸다.
그랬더니 그 애가 좀 , 특유의 그 표정 있거든.
일부러 지어내는 게 아니라 진짜 조금 화났을 때 내는 뚱한 표정.
그거 지으면서
“그래. 뭐라도 했지. 뭐도 하고 뭐도 했어. 그런데도 모르더라.”
라는 거.
맞아.
친구가 좋아한다니까 직접 고백은 못했더라도 조금이라도 내색은 했을 거야.
‘나 너 좋아해. 나 너 좋아해’ 하고.
그쪽에서 먼저 알아채주길 바래서 뭐라도 하면서 자꾸만 신호를 보내지 않았겠어?
알고 보니 바보는 내가 아니고 그 아이였어.
짝사랑녀. 정확히는 내 짝사랑의 짝사랑녀. 퓨...
“한심하지.”
그 짝사랑녀가 한심하다는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는 건지 한숨 섞인 말을 뱉고는 다시 날 빤히 보더라.
그 눈빛에 설레는 내가 너무 한심했어. ㅜㅜ
그래서
“그래. 정말 한심하다.”
라고 공감해주었지.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
짝사랑에게 핫도그 얻어먹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 끼로 김밥천국 모둠김밥을 대접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감당도 못할 짝사랑설 듣고,
이제 헤어질 일만 남은 내가 진짜 너무 한심해서 웃음도 안 나오더라.
‘이제... 갈까?’ 하고, 안 벌려지는 입을 억지로 벌리려는 순간, 그애가 먼저 입을 열었어.
“혹시. 내가 너희 집 알면 부담될 것 같아?”
... 이건 또 무슨 질문.
“아니, ... 왜?”
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그 애만큼이나 나도 조심스럽게 되물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이거였어.
“그럼 너 데려다줘도 돼?”

자꾸만 걸어서 미안하지만 우린 또 걸었다.
밥 먹고 나오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바람은 찼다.
그리고 내 곁에는 그 애가 걷고 있었어.
“데려다줘도 돼?”라는 그 애 말.
그 말에 내 반응이 어땠는지는 묻지 말아줘.
내 손으로 나 자신의 볍신스러운 모습 그리는 것도 이제 지겹다.
...그래도 이번은 쓸게.
그 애가 어떻게 했는지 말해야 하니까. ;;
‘우리 집 좀 멀어. 괜찮아?’라는 말 따위 하지 못했다.
‘아무렴 되지, 되고말고. 데려다줘. 두 번 데려다줘’라는
솔직발랄한 멘트 또한 그 순간엔 입 밖으론커녕 뇌에서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그 애는 그냥
“어?....어....”
하기만 하는 내 얼굴을 골똘히 쳐다보더라. 관찰하듯이.
그러더니
“어느 쪽이야. 이쪽? 아님 이쪽.”
하며 김밥천국 기준으로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가리키는 거야.
꼭 내 마음을 고스란히 읽은 것처럼.
방향만 알려주면 나머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단 것처럼 말이야.
왼쪽 방향 가리키니까 곧바로 앞장서더라.
어차피 그쪽으론 큰길이 하나였으니 그 뒤로는 내가 길 안내를 하긴커녕 걔를 따라가는 것처럼 갔어.
“어두워지는데 혼자 보내긴 좀 불안하지.”
걸으면서 그냥 툭 던지는 말인데도 또 가슴이 발랑거리더라.
별 말도 아닌데 그냥 멋졌어.
혹시 그거 알아?
짝사랑할 땐 말이야, 그 애가 멋져 보일 때 너무 좋고
그러면서도, 적당히가 아니고 너무 멋질 땐 설레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멋지면 그건 그거대로 아픈 일인 거잖아.
그래서 심장더러 ‘적당히 나대라’ 하다못해 그 애한테도
‘아 너도 좀 적당히 좀 해ㅠㅠ’라고 하고 싶어지는 거.
두세 걸음 뒤쳐진 채로 걸으면서 곁눈으로 그 애를 봤어.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거든. 그 애 뒷모습.
항공 점퍼 입고 있었는데 얇아서 좀 추웠는지,
한 손에 아까 남은 핫도그 봉투 들고서 살짝 몸 움츠리고 걷고 있었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노을을 등에 지고 걷던 그 모습.

그렇게 걸었어.
처음에 그 애는 정말 데려다준다는 목적에만 충실하려는 것처럼 묵묵히 걷기만 했어.
섭섭하더라. 그래도 좀 기대했거든.
뭐라도 더 얘기할 수 있을 줄 알고.
그러다 모퉁이 돌 때가 되니까 그제야 뒤를 돌아보면서
“꺾어져?”
하는 거야. 그래서
“어, 근데... 너 집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었어? 동생들이 기다리잖아.”
했지.
그렇잖아.
아까 한 시간이라 그랬는데 같이 밥 먹고 어쩌고 우리 집까지 갔다가 다시 걔네 집까지 돌아가려면 두어 시간은 훌쩍 넘길 것도 같은 거야.
게다가... 그닥 할 말도 없으면서 나한테 시간 빼앗길 필욘 없는 거니깐.(쳇 하는 기분도 들어서)
그랬더니
“아. 괜찮아. 둘 다 내가 더 늦게 들어가길 바랄걸?”
하고 피식 웃더라. 그 말이 바로 이해됐어.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단 듯이
“아, 잠깐만.”
하더니 폰을 꺼내서 전화 걸더라.
동생이 받았나 봐.
“들어왔어?”
하더니
“밥부터 먹어. 냉장고에 엄마가 찌개 끓여놓은 거. 응. 그거 꺼내 먹어.”
이렇게 되게 다정한 투로 말하는 거야. 좀.
이게 뭔가 싶었지. 그래서
“동생들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
했더니
“혼내줄 때 혼내주더라도 밥은 먹여야지.”
그래. 헉. ㅠㅠㅠ 혼내줄 거래.
너무 태연자약하게 말해서 그게 더 무서웠어.
그러곤 바로 또 입 닫고 가는데 순간 동생들이 걱정되더라. 학원 빠진 거 직빵으로 걸린 거잖아.
바로 들어오라고 호출도 당했고.
나도 혼나봐서 아는데 그럴 때 차라리 빨리 혼나는 게 낫지 그 시간 기다려야 하면 더 떨릴 거잖아.
밥을 어떻게 먹어. ㅠㅠ
그래서
“그냥 이번 한번만 봐주면 안 돼?”
했어.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야.
그런데 내 말에 좀 심기가 상했는지
“잘못은 동생들이 했는데 왜 네가 비냐?”
라는 거야.
좀 냉랭한 투로. ㅠㅠ 그래서
“미안... 그냥 좀”
하고 얼버무리니까
“이번 한 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래.
말 들어보니까 저번 여름방학에 둘이 서로 다른 학원 보내줬더니 둘 다 너무 많이 빠지더래.
그래서 이번에 학원 옮겨주면서 한 번도 안 빠지고 잘 다니면 학원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둘 다 평소 갖고 싶어 하던 거 사주기로 했대.
대신에 빠지면 정말 혼날 줄 알라고.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어.
“쌍둥이니까 뭐든 두 배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학원비도. 부모님이 남들보다 두 배 더 힘들게 돈 벌어서 보내주시는 거잖아. 그런데 빠져봐라. 두 배로 속상하시지.”
그 말 듣고 보니 그렇긴 하겠더라.
근데 그때 걔가 동생들 엄청 챙긴다는 소문이랑 또 무섭게 잡는다는 소문 둘 다 생각났어.
그리고 좀 궁금했어.
사생팬 같은 심리일 수도 있는데 평소 내가 못 보는 그 애 모습을 한 가닥 더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거?
그래서 넌지시 물어봤어. “어떻게 혼내줘?”라고.
그랬더니
“알고 싶어?”
라고 다시 물어.

“아, 아니.”
안 알고 싶었어.
묻긴 물었는데 정작 저렇게 말하니까 안다는 것도 겁나더라.
안 알고 싶다는데도 그 앤 말했어.
“그래봤자 손바닥 같은 데 몇 대 때려주는 게 다지 뭐.”
뭐어?
별거 아니란 듯 말하는 그 애 말에 진심 놀랐어.
쌍둥이들 나란히 세워두고 손바닥 때려주기도 한다는 그 소문.
물론 상상하면서 괜히 두근거린 적도 있지만
막상 그게 사실이라니까 사생팬처럼 엿보고 싶었던 광경 치고도 너무 생경한 장면이기도 했어.
잘 상상이 안 되잖아.
“오빠가 손바닥 대란다고 대?”
“응.”
“형이 대란다고 대?”
“응.”
“부모님이 그러라고 내버려두셔?”
나도 모르게 다다닥 물어보고
또 그 애도 재깍재깍 답을 해줬는데
마지막 물음엔 바로 답을 안 해주더라.
또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게 싫어서
“안 됐다, 동생들. 아프겠다... 얼마나 아프겠어... 슬프겠다...”
등등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웅얼댔어.
그랬더니
“뭐가 안 됐어. 그 정도면 그냥 귀엽다고 토닥여주는 거지.” 그러더니
“난 걔네만 할 때 종아리 무지하게 맞고 자랐어. 그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거야.
허얼... 그건 더 상상이 안 되더라.
평소 얘 행동하는 거 보면 엄청 곱게 자란 티가 났거든.
부모님도 엄청 다정하시고 또 뭘 잘못하더라도 자상하게
타이르시거나 오목조목 자기 의견 말하도록 할 분 같았거든.
그런 분위기에서 험한 꼴 한 번 안 당하고 자란 줄 알았는데...
게다가 자타공인 모범생인 그 애가 잘못을 해봤자 뭘 얼마나 했길래.
무지하게까지 맞어.
그래서,
“거짓.. 말이지?”
했다. 그랬더니
“거짓말하면 그날은 피 보는 거고.”
래.
헉 ㅠㅠ 들을수록 믿어지지가 않더라.
왜냐면 중학교 때 우리 반 반장이었던 그 애는
한 번도 그런 것 같던 날이 없었거든.
무슨 말이냐 하면 보통 부모님한테 심하게 혼나거나 맞거나 하면 그다음 날 무슨 티가 나더라도 나잖아.
어떤 애는 심지어 ‘와나 나 어제 디지게 맞았다’라는 둥 자기 입으로 떠벌리기도 하고 말야.
최소한 의기소침하거나 ....하... 하여간 맞은 티가 안 났어. 특히 피가 맺히도록 맞은 것 같은 날이 없었단 말이야.
단 하루도.
“몰랐어.”
괜히 무서워졌어.
이제 생경한 걸 넘어서 보지 말아야 할 걸 봐버린 것 같은 느낌.
“근데 그게 그렇게 상처가 된 적은 없어.”
라고 말하더라.
말투도 당당하게.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해.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굉장히 좋으신 분이야.”
그 말 자체도 참 신기하리만치 특이했지.
자기 아빠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듯이 하는 말,
처음 들어보잖아 그런 건.
“나에 대해 거시는 기대에는 언제나 정확한 근거가 있었어. 매를 드실 때는 언제나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뭔가 정형적으로 정해진 것 같은 말이었어.
체벌에 대한 올바른 해답법을 외워서 말하는 것 같은 거 있잖아.
그걸 지키셨단 건가 봐.
“그럼... 동생들도?”
그렇다면 동생들은 엄청 안된 거지.
아빠한테도 맞고 오빠 형한테도 맞고.
여기저기서 맞는 거니까.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의외였어.
“동생들한텐 매 안 대셔.”
래.
엥? 왜? 정확한 기준이나 근거, 이유.
그런 거 치곤 편애하시는 거잖아. 차별하시는 거고.
너무 이상한 거야.
“예닐곱 살까진 동생들도 종아리 몇 번 맞은 적 있어.
근데 어느 순간부턴가 안 맞더라.”
하면서 그애가 들려준 말이, 자긴 너무 억울했대.
같은 잘못을 해도 자기는 꾸중 듣고 종아리 걷고 막 눈물 나도록 맞고 그러는데 동생들은 말로만 혼나고 안 맞는 게.
그래서 어느 날 억울하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그러시더라는 거야.
“솔직히 힘에 부친다.”라고.
그 말하면서 막 웃더라?
아니 뭐가 그렇게 웃긴가 싶었더니
“내가 낳아놓고 이런 말해서 미안하다만 세 명 한꺼번에 커버하기가 너무 벅차.” 하시더래.
그러더니 그 애 기준으로 아버지의 명언.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냐.”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그러시더래.
“내가 너 하나만큼은 어떻게든 사람으로 만들어볼 테니. 나머진 니가 좀 알아서 해라.”
왠지 알쏭달쏭했어.
좋은 방법이신 건지 나쁜 방법이신 건지.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애한테 아버지란 존재가 되게 큰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내가 듣기에도 무서울 땐 엄청 무서우시지만 한편 진솔하시기도 하고.
또 그만큼 평소에 모범도 보이시겠지 싶었어.
아버지 얘길 재밌단 듯이 전해주면서 덧붙이더라.
“거짓말 한 거 열 대. 학원 빠진 거 다섯 대.
그래봤자 얘넨 손바닥 열다섯 대 맞는 걸로 끝나.
이건 애들 장난이지 혼나는 거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
안 그래?”
“아니지.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아?
넌 너고 동생들은 동생들이고...
오늘 맞는 건 동생들이잖아. 니가 아니고...”
했더니 걔가 갑자기 멈춰 서더라?
“근데 너 좀 재밌어 하는 거 같다?”
라면서.
...이때 내가 좀 말이 많아졌던가.
아님 밝아 보였든지.
어쨌거나 재밌긴 했지.
나 말고 아무도 모를 거 아냐, 이런 얘긴.
얘에 대한 무성한 소문 중에서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고. 솔직히 너무 신나기도 했어.
허물없이 이런 얘기 나한테 털어놔주는 게.
얼굴 표정 감추느라고 내가 먼저 막 걸어가는데
“너 웃겨주려면 내가 많이 맞아야 하나 보네.”
라면서 막 또 웃는 거야.
허.... 내가 무슨 변탠가.
니가 맞는 게 재밌단 게 아니라고... ㅡ.ㅡ;;
그때 처음으로 얘가 바보 같아 보이더라.
근데 맞는 얘기 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던 건 사실이었어.
사실이긴 사실이었는데...
그래도 왠지 가슴 한편이 묵지근하니 아파오더라.
그 애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종아리 맞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거 아냐.(난 안 맞아봐서 모르지만.)
이 모범생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어도...
아버지 앞에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앉아서 장시간 꾸지람 듣고, 그다음엔 이 악물고 아픈 매 참아냈을 거 생각하니까. 그러고선 또 다음 날 학교에선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반 애들 챙기고 그랬을 거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팠어.
내가 몰랐다는 게.
아무것도 몰랐잖아.
좋아한다면서....
몰랐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
생각해보니까.
종아리 피 터지도록 맞으며 자랐단 것도 몰랐고.
기흉이란 것도 몰랐고. (짝사랑녀 있단 것도... )등등...ㅠㅠ 지금이라도 알고 싶었어.
“요즘은 어때? 요즘도 가끔 그렇게 무섭게 혼나고 그래?”
물어봤어.
맞느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그렇게 물었더니.
“아니.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이제 회초리는 안 쓰시겠대.” 그러면서 그러시더래.
이제 매 몇 대 맞는 걸로 용서 받을 수 있는 때는 지났다고. 모든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법을 배우라고 하시더래.(그땐 그 말이 그냥 멋있게만 들렸지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젠 좀 알 것도 같아.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또 늘어지면 안 되니까 있던 얘기만 할까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이때 일에 대해 나중에 생각해본 바를 대충이라도 말해볼게.
그 당시 그 애가 날 반하게 한 몇몇 사건들이 있었는데
통틀어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또래 다른 남자애들하곤 다르게 느껴지는 어떤 격 같은 거, 또 애들 챙겨줄 때 문득문득 엿보이는 따뜻한 마음 같은 거.
근데 그 모든 거에 기본으로 깔려 있었던 게 이 애 특유의 자신감이었어.
예를 들어서 남들 학원 다닐 때 악기나 운동 배우러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 보였어.
불안하잖아.
성적 떨어질까도 불안하고 또 남들 다 하는 거 안 한다는 것도 불안하고.
그런데도 하고 싶은 건 그냥 하는 애였어.
그런데 ‘난 뭐든지 잘할 수 있다!’라는 면보다는 좀 다른 면에서 보이는 자신감.
난 그 애가 학교에서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변명이나 그 비슷한 거라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쩔 땐 다른 애가 잘못한 것까지 반장인 자기 책임으로 해버릴 정도니까.
우리 또래에선 상상하기 힘든 당당함으로,
대가를 치러버리는 거야.
친구한테도 선생님한테도.
그리고선 말을 해.
“아. 진짜 속상하다.”
“이건 내가 봐도 좀 아니었던 것 같아. 부끄럽다 진짜.”
“다신 안 그래야지.”
“미안하다. 그건 정말 내가 잘못했다. 어떻게 해야 화 풀릴지 말해주면 그렇게 할게.”
등등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야.
그런 모습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더라.
집에서부터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았던 거 같았어.
공부 학원 말고 기타나 운동 학원 다니는 것 허락해주시는 것만 봐도 성적 때문에 억압받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하고픈 거 하게끔 밀어주시는 건데 대신에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거 어길 때나 무슨 일에든 최선 다 안 하거나 할 때는 남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혹독하게 대하신 거 같잖아.
가까이는 자기 동생들보다도 더 말이야.
그러면서 ‘넌 그럴 만한 애니까 그래’ 란 신호를 계속 받아온 거 아닌가 싶어.
...어쨌든 이건 나중 생각이고 그 순간에는 그냥 그 애가 이제는 안 맞아도 된다는 것만 다행이었어. ㅎㅎ
그리고 이쯤 되니까 슬슬 몸까지 아파지더라.
아까 그 애가 내 어깨에 손 올렸을 때. 혹시 그런 느낌 아니? 어깨가 두근거린다는 느낌.
그리고 좀 이따 이 애한테 혼날 동생들 떠올리니까 내 손바닥이 다 아픈 것 같고, 피나게 종아리 맞았을 그 애 떠올리다 보니 내 종아리가 쓰리고.
심장은 마비됐다가 풀어졌다가 울컥했다가
이젠 완전 고장나버린 거 같고.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거의 집앞에 도착했을 때였어.
그 애는 방학 때 뭐하고 지내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학원이나 독서실 안 가는 시간엔 보통 뭐하고 지내냐도 물어봤어.
난 머릿속에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았지만...
그 애의 질문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일상 답하느라고
단지 입구에서 우리 동까지 가는 짧은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말았어.
동 앞에 다다라서도 그 애 말 끊기 싫어서 걸음 속도만 천천히 늦췄는데 그 애가 자기 하던 말 멈추고 먼저 서더라.
“여기야?”
라고.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
“얼른 들어가야지. 추운데.”
이래.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ㅠㅠ
근데 마주서다 보니까 여전히 그 애 손에 들려 있는...
그 핫도그가 또 보여.
이제 식다 못해서 딱딱해졌을 거 같았거든.
그래서
“아, 내가 버려줄까?”
하고 손 내밀었는데(사실 뭔 말이라도 더 걸어보려는 소심한 몸부림)
“왜 버려.”
하고 눈이 똥그래지는 거야.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단 듯이.
집에 가서 렌지에 뎁혀 먹으면 되는데 왜 버리냐고. ㅎㅎ
졸지에 난 먹을 거 막 버리는 무개념녀 되고... ㅠㅠ
하기사 버릴 거였으면 여태 들고 왔을 리가 없었겠지.
하여간 또 볍신미 뿜뿜 풍기면서 서 있는데 그때 그 애가 
“이제 어떻게 돌아가지?”
란다.....
처음 와보는 길이었으니까 다시 돌아가는 길이 헷갈릴 수도 있지. 싶었어.
나도 뭔가 얘 앞에서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게 신나서,
그리고 아쉬운 티 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그래서
“왔던 대로 가면 돼.”
라고 일부러 밝게 말했던 것 같아.
“여기서 다시 뒤돌아 쭉 직진해서 마트 보이면 돌아서 횡단보도 건너고...”
어쩌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애가 갑자기
“OO야.”
라고 날 부르더라.
이제 진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거였잖아.
최대한 잘 보이고 싶고 좋은 인상 주고 싶어서 표정을 되게 신경 쓰고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진지한 투로 부르니까 웃음 띠는 얼굴 만들려다 덜 완성된 어정쩡한 얼굴로 굳어 있었어.
그런 채로 그 애 말 기다리는데
“나 지금 너한테 뭐 하나 물어보려고 하거든?”
이라고.
그러면서
“내 딴엔 무지 용기 내서 묻는 거야.
그러니까 대답 잘해야 된다.”
이런다.
말투가 아주 가볍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거운 것도 아니었어.
평소에 말하는 그 특유의 말투인데도 긴장되잖아.
그래서 응 소리도 못 내고 있는데,
그 애가 묻는 말은 이거였어.
“너 언제부터 나 좋아했냐.”

무슨 뜻일까? 그 애의 말....
그때처럼 머리를 빨리 굴려보려 애써본 적도 없는 것 같아. 그 와중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로 차리면 된다’란 속담마저 떠오르더라고.
떠오르면 뭐해. 정신도 안 차려지고 머리도 안 굴러가는데. 그저 발뺌해야 한단 생각만 강하게 들었어.
평소에 그 애에 대해서 내가 소심하게나마 지키고 있었던 나만의 약속 같은 게 있었어서.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자리잡기도 한...
나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그 애를 바라보고 있었잖아.
그게 짝사랑이든 동경이든 막연한 호기심이든.
대놓고 좋아한다는 티내는 애들도 있었고 드물게는 고백하고 차이는 애들도 있었어.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 애에 대해 수다 떨고 정보 모으며 꺄꺄 거리는 애들도 있었어.
난 나만 알고 싶었어.
화끈하게 고백하고 차이는 식으로 짧고 굵게 끝내버리기에는 어차피 끝날 것 같지도 않은 마음이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에는....
그런 식으로 많고 많은 다른 애들 중에 섞여 있고 싶진 않았어.
그 애한테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만큼, 소중했어.
입 밖으로 꺼내놓지도 못할 만큼.
앓더라도 혼자만 앓고 싶고,
앓으면서 아픈 마음조차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고,
나 혼자 하는 상상조차도 아껴가면서 할 만큼.
단 한 톨도 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어.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가장 멀리는 중2때 단짝친구에서부터 가장 최근에는 학원 정보 가르쳐준 그 친구한테까지도.
그러면서 ‘난 그래도 좀 달라. 난 진짜로 좋아하는 거야.’라고 나 혼자라도 날 띄워주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렇게 오랫동안 얼마나 공들여 간직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당사자에게 말해버린다니,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잖아.
그런데 막상, 이렇게 내 앞에 서 있는 그 애를 보고 있자니, 모든 게 무너져도 좋고 다 잃어버려도 좋으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말해보고 싶었어.
나 너 좋아한다고.
너무 좋아해서 좋아한단 말도 못하겠다고.
너를 보면 그냥 울고만 싶어진다고,
매일 그랬고 매순간 그랬고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고.
그래서 더 아무 말도 못하겠다고.

“춥지 않아?”
한참 동안 내가 말이 없자 그 애가 이래.
“너 코 빨개졌어.”
추운지 더운지도 못 느끼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얼굴을 에는 찬바람이 실감났어.
“웃옷 벗어주면 좋은데, 니 옷이 더 커 보이네.”
그랬어.
난 패딩에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애는 잠깐 마실 나온 것처럼 항공 점퍼 하나 간단히 걸친 게 다니까.
벗어준다 하더라도 내 옷 위로 그 애 옷이 제대로 걸쳐지지도 않을 거였어.
“답은 들어야겠는데, 이렇게 계속 서 있게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게 고민하듯 말하는 그 애가 미웠어.
사람을 이렇게 괴롭게 해놓고 자긴 태평하게 특유의 챙김 본능이나 발휘하고 있잖아.
“그럼... 들어갈게...”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어.
챙겨주고 싶은 맘 생겼을 때 후딱 그 마음만 챙겨서 도망가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슬그머니 뒤돌아서려고 하는데
“어딜 가.”
하고 다급한 말로 잡아채.
그 소리에 잡혀서 어정쩡하게 멈칫했는데,
“날이 너무 추우니까. 그럼 내 계획부터 후딱 말할게.”
래.
뭐길래 ‘계획’이라고까지 하나.
듣기가 두려워 귀라도 막고 싶은데, 그 애는 멈추지 않았어. 
“나한테도 좀 급작스러운 일이어서 두서가 좀 없을 수 있어. 감안하고 들어.”
라면서 말하길
“긴가민가했었는데, 오늘에야 확실히 알게 된 게 있어. 직감이긴 한데, 거의 맞다고 봐.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조곤조곤 정리하듯 말하더니, 잠깐 뜸을 들이더라.
그러더니 이래.
“나는 내일 당장 친구부터 만나러 가려고 해.”
친구? 친구 누구.... 갑자기 친구는 왜.
게다가 뭐가 긴가민가고, ‘확실히 알게 됐다’는 건 또 뭐고. 의아해져 있는데 이런다.
“만나서 말을 해야지. 설명을. 그래서 욕하면 욕 듣고, 때리면 그냥 맞고, 그러고 올게.”
설명이라니, 욕은 왜 하고 왜 때려.
“해결할 일부터 해결하고 오겠다고.”
그 애의 말에 해결할 수 없이 어지러워진 건
내 머릿속이었어.


“그러니까 넌 답만 해주면 돼. 그다음부터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맞아. 
이 애는 그런 애였어. 
매사에 신중했고, 뭘 하나를 정하더라도 남들보다 깊게, 
남들이 생각 안 하는 것까지 따져보고 고민하다가 
‘이거다!’ 결정이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막바로 추진해버리는 스타일.
처음부터 답이 확실한 경우는? 
그러면 고민 않고 바로 행동으로 나갔어. 
‘이쪽? 아니면 이쪽?’ 하고 물었을 때, 
왼쪽을 가리키니까 바로 방향 잡고 앞장서 가버렸던 것처럼 말이야. 
그런 점 때문에 반장할 때도 선생님들한테 일처리가 시원시원하다고 좋게 평가받곤 했었지.
그건 그런데, 그렇긴 한데. 
지금 나한테는 왜 이러는 건데ㅜㅜㅜㅜ 
갑자기 내용도 모를 추진력을 발휘하려는 기세니까 어리둥절해져서 뭐라 대꾸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야. 
집 가는 방향 알려주는 것하고는 다르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자동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뭣보다 뭘 알아서 하려는 건지 그것부터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서 물어봤어. 
“아니, 그니까... 친구를 왜... 만나서.. 왜.”
라고 앞뒤도 안 맞게 버벅대면서.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로선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어서 물었는데, 바로 대답을 안 해. 
뭔가 생각하는 것 같길래 떨려도 참고 기다렸지. 
그랬더니, 애들한테 뭐 중요한 거 전달할 때 나오는 그 애 특유의 어투가 있거든. 
‘잘 들어.’라면서 집중하게 만드는. 
그런 식으로 말을 시작했어.
“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니 얘길 해. 나한테만 하는 거라면서. 그럴 때마다 난 그냥 듣기만 했고.” 그 친구? 무슨 얘기? 이런 거 궁금할 틈도 없이... 
“고등학교를 우리랑 다른 데로 가서 전보단 덜 그러긴 하는데, 
저번 주에 통화했을 때, 그때도 또 너 잘 있냐 그것부터 묻더라. 
난 또 관심 없는 척 모른 척했고. 
그러니까 난 그 친구를 계속 속여왔던 거야. 
그것도 2년이 넘도록.” 
이런 말을 하더니 ‘이해했어, 여기까지?’란 듯이 내 얼굴을 한번 살펴. 
나는 그냥 마른침만 삼켰던 것 같아. 
왠지 그 애가 말하는 흐름을 끊을 용기가 안 났어. 
왠지 조금은 말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같았거든. 
그랬더니 그다음 말 이어가도 되겠다 싶었는지 이래. 
“그런데 오늘 보니까 더 이상 속일 수 없을 것 같아서. 속여서도 안 될 것 같고.”
그리고 또 뭔 말인가 하려는데, 이때 나도 모르게 가로막았어. 
“잠깐만...” 
하고 그 애가 하는 말을.
왜 그랬냐면. 
좀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데... 
수학 문제 풀어달라고 할 때하곤 달라야 하잖아. 
같은 반일 때 딱 한 번.
정말정말 용기 내서 물어본 적 있거든. 
모르는 문제 가르쳐달라고. 
그때 그 애가 풀어주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정말 자세히 차근차근 설명해줬는데도 숫자는 눈에 안 들어오고 
그 애 목소리나 말투, 사각사각 쓰는 글씨체, 이런 것만 보여서. 
그런데도 알아들은 척 고맙다고. 
그랬더니 그 애가 ‘그럼 니가 다시 풀어봐’ 하면서 펜 건네주는 거야. 
그때 엄청 당황해서... 몰라도 풀어보는 척했더니 
‘거봐. 헷갈리지? 다시 줘봐’라면서 펜 뺏어서 다시 가르쳐줬었거든. 
그렇게 세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해줬었어. 
내가 이해해서 제대로 풀 때까지. 
그때 너무 창피했던 건 둘째치고 ㅠㅠ 
그 찰나의 순간이 왜 스쳐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러면 안 되잖아.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잘 말해달라고 하는 게 맞잖아.
그래서 그 애 말 끊었던 거야. 
그러고서 물어봤다. 
“근데... 뭐를.... 속였단 거야?” 
거짓말하면 종아리에 피 터지도록 맞고 컸다면서. 
그런 니가 왜 속여. 
뭘 속여? 
그것도 2년이나. 
모르겠어서, 아니, 왠지 너무 모를 수가 없는 느낌이 와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어. 
그렇게 묻고 났더니, 내가 대답해야 하는 상황보다 더 무섭고 더 떨리더라. 
내가 한 질문을 입 속으로 도로 집어넣고 싶을 만큼. 
그 애도 순간 멈춤이었어. 
그렇게 한동안, 내 느낌으론 3억 시간 정도 흐른 것 같은 시간 동안 말이 없다가 다문 입을 더 꾹 다물더니 바닥을 보더라. 
그러더니 몇 초 안 지나 곧바로 고개를 들었어. 
그리고 말했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마치 ‘그래서 답은 2.’라고. 
수학 정답 말해주듯이 단순명쾌한 투로.

“어..?” 
내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야. 
말이라기보단 소리였어. 
놀라서 내는 소리. 
그게 어떻게 답이 되냐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들었을 때 나오는 소리. 그랬더니 다시 분명하게 말하더라. 
“내가 너 좋아한다고.” 
속으로든 겉으로든 소리조차 못 내고 있는데 연이어서 이래. 
“너도 그렇고.”
뭐라고 토를 달 수도 없을 만큼 너무나 확고하게 하는 말이었어. 
터질 것 같던 심장은 언제 터져버렸는지 모르게 터져서 이제 감각조차 없는데,
그 애는 거침없이 그다음 말을 했어. 
나 때문에 끊어졌던 말을 이어서.
“이렇게 된 이상, 먼저 그 친구에게는 말을 해줘야 돼. 
자초지종도 설명해야 하고. 
시작을 하더라도 그러고 하는 게 맞지.”
이렇게 말하곤 ‘그렇지?’라고 내 답을 기다리는 눈빛을 쏘는데, 
엉겁결에 ‘응... 그렇지.’ 하고 수긍해버릴 뻔했다. 
너무 흐트러짐 없는 말이어서. 
이 애가 이 정도로 확신 갖고 말할 정도면 뭔진 몰라도 그게 맞겠지, 라는 조건반사로 말야. 
하지만... 그런 반사반응이라도 나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나는 그러한데 그 애는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내 입장 때문에 너까지 복잡하게 해서 미안하다. 
그 벌은 두고두고 받을게.”
라고, 잘못은 바로 인정하는 자기다운 모습까지 잊지 않았고.
“우선은 여기까지야.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은 이거고. 
친구 일 말고도 이것저것 내가 준비하고 생각할 일들이 있을 것 같아. 
너 최대한 곤란해지지 않는 쪽으로.”
그렇게. 
너무나 정확하게 계획을 말해주더니, 
“다 할게. 
그렇게 할 건데, 일이 간단치 않다 보니까,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가도 될지, 너한테 확인을 먼저 구하려는 거야.”
라고 해. 
그게 다라는 듯이 하는 그 말을 듣고 
“..무슨...뭐...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야. 
순간 그 애는 잠깐 말을 멈추고... 
입 다물고 하는 한숨 있지. 
소리 안 나는 심호흡. 
그걸 하더니 
“지금 내가 좀 긴장도 했고. 
아까부터 너 이렇게 세워두고 있는 게 굉장히 신경 쓰여. 
장갑은 왜 안 끼고 다니는지 손도 다 얼어 있고.” 
라고 해. 
‘아니, 장갑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 잠깐만.. 제발...’이라고 속으로 발이 동동 굴러지는데, 
“그러니까 오늘은 그 답만 듣고 갈게.”
라면서 단단한 눈으로 말했어. 
“말하기 힘들면 고개만 끄덕여도 돼.”
라고. 
‘괜찮아. 무서운 일 안 벌어져’라는 듯 안심시켜주는 투로 그러면서 다시 물었어.
“너 나 좋아해. 맞지.” 

그래. 
끄덕이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것조차 힘들다면, 
도저히 얼굴 보고 끄덕거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고개 푹 숙이고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그대로 숨만 쉬어도, 
그렇게 ‘끄덕’ 중에 ‘끄’만 하더라도 한 번 끄덕한 걸로 쳐줄 것 같았어. 
너무너무 그러고 싶었어. 
그 순간에도 ‘좋아해! 좋아해!’라는 마음속 외침이 
내 심장 박동을 대신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영화로 치더라도 그렇잖아. 
여기서 여주인공은 그냥 수줍은 고갯짓 한 번 하는 걸로 
긴긴 시간 동안의 가슴앓이는 달콤하게 끝을 내며 행복의 나라로. 
그러면서 화면은 두 사람을 줌아웃하며 엔딩. 
그렇게 간결하고 예쁜 여운이 남는 마무리. 
지금이라도 그렇게 각색하고 싶을 정도로. 
그러고 싶었어. 
그런데 현실은. 
“...이러지 마.”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 
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온 왕자님처럼,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애에게 내놓은 말은 
맞다도 틀리다도 아닌, 
“이러지... 마...”
였어.

3년이었어. 
짝사랑한 시간.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준다든지 
복도에서 각자 다른 무리에 섞여 놀다가 스치듯 눈이 마주친다든지. 
그런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전기에 감전되듯 숨이 떨리는 나였어. 
혹시 마주치진 않을까 해서 끊은 학원. 
‘오늘은 볼 수 있으려나? 에잇 허탕이다. 내일은 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2주를 지내다 포기할 때쯤 한번 마주치게 된 날이 바로 오늘이었어. 
그렇게 안녕만 하고 스쳐 지나갔어도 며칠 동안 콩닥콩닥했을 거야. 
핫도그만 받아 먹었어도, 밥만 같이 먹었어도 며칠 밤낮 멍해져 있었을 거고. 
집에 데려다주었단 것만으로도 침대에 엎어져 바둥바둥 발장구치다가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그동안 참고 있었던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었을 거야. 
그런데 좋아한대. 
나한테 좀 관심이 생겼다, 라는 정도도 아니고, 짝사랑을 해왔대. 
그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 그래왔대. 
이건 벅참이나 감동, 기쁨보다는 놀람에 가까운 일이었어. 
아니 그 모든 감정을 합친 것만큼의 충격이었어.
그런데 왜 난 그걸 몰랐을까? 
매일매일 단 하루도 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은 날이 없는데?? 
좋아한단 건 관심이잖아. 
관심이 있으면 매일 쳐다보게 되잖아. 
눈으로 보지 못할 땐 공기로라도 보게 되잖아. 
난 그렇게 이 애를 지켜봐왔단 말야. 
그런데 어떻게 몰랐어? 
기흉인 걸 모른 건 괜찮아.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호되게 혼나가며 자랐다는 거, 그런 거... 몰랐어도 괜찮아. 
그런데 어떻게 이걸 몰랐어?? 
한 달도 두 달도 아닌 2년 넘도록. 
그러고도 정말 좋아했다고 할 수 있어?
놀람으로 멍해진 머릿속에 와다닥 박혔던 화살들은, 곧장 심장으로 직행했어. 
짝사랑으로 아파했던 내 시간들이 졸지에 그 애의 시간으로 둔갑하면서 
슴 한복판이 수백 개의 화살에 꿰뚫린 듯, 헉 소리도 못 내게 아파왔어. 
그래서 고개조차 끄덕이지 못했어. 
‘이러지 마...’라고 했는데도, 그 애는 여전히 내 눈에 자기 눈을 박아두고 있었어. 
그 눈에 대고 다시 말했어. 
“아니니까 이러지 마.”

“아니라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 애 목소리가 일순간 굳었어. 
묘하게 경직된 목소리로, 다시 내게 물었어. 
“정말 아니야?” 
또다시 묻는 말에 앓는 소리도 못 내고 고개를 끄덕이니까 
“믿으라고, 그걸?” 
하고 재차 물어. 
“끙...” 
있는 힘을 다해 ‘응’을 하려다 보니 끙 소리가 나더라. 
그랬더니 날 골똘히 쳐다보면서 이래. 
“그럼 왜 울어.”
그러면서 정말 황당하다는 투로 
“좋아하냐 아니냐 확인하겠다니까 잘못한 것 들킨 애마냥 발까지 굴러가며 안절부절 못하더니만, 아니라고 하면서 갑자기 눈물 콧물 다 터트리는데, 그 말을 믿으라고, 지금?”
이래. 
“어?” 
몰랐어.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구치긴 했는데, 콧물까지 나오는 줄은 정말 몰랐어. 
그 애는 황당하단 얼굴 그대로 
“그 말 믿고서 ‘아 그러냐. 내가 실수했다. 못 들은 걸로 해라’ 하고 가면 되는 거냐.”
라면서 설핏 웃더니, 다시 정색하고 
“가방에 휴지 있어?”
라고 휴지부터 찾아. 
‘이 애가 날 좋아한단다, 왜 좋아할까. 난 왜 몰랐나’ 아픔, 벅참, 놀람 등 가슴을 가득 채웠던 감정이나 머릿속을 휘젓던 여러 생각들이 지금 당장 콧물부터 닦아야 한단 조바심에 다 밀려나고 말았어. 
창피했어, 절박할 정도로 창피했어. 
너무 숨고 싶은데 숨을 때 숨더라도 이 꼴로 숨을 순 없다는 절박함에 허둥지둥 가방 열어 휴지를 꺼냈어.
“풀어, 얼른.” 
눈물 때문에 그 애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그래. 여기서 코를 풀자. 시원스레 풀고서 차라리 죽어버리자.’란 심정이 되더라. 
도저히 다시 얼굴을 들 용기도 안 나고, 용기고 뭐고 간에 이제 죽을 방법을 뭘로 택할지만 떠올리며 바삐바삐 코 훔쳐내는데, 그 애가 이래. 
“진짜 한심하네.”
라고. 
“너 좋아하고부터 계속 한심하기만 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이 제일로 한심한 것 같다.” 
자기를 탓하며 중얼대는 말. 
“으헝. 크헝. 허어엉....” 
삼켜보려 할수록 더 이상한 소리로 커져가는 내 울음소리 때문에 그 애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듯 뭉개지게 들렸어.

그쳐보려 해도 그쳐지질 않았어. 
‘어허어허’ 심호흡하듯 가슴에 꽉 찬 것 같은 울음을 토해보다가 ‘꺽꺽’ 숨도 참아봤다가 했는데도 안 그쳐졌어. 
나중엔 우는 내가 창피해서라도 더 안 그쳐졌어. 
그 애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바닥 보고 
“하...”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동네라는 게 신경 쓰였는지 
“계속 울 거야? 그럼 어디 들어가서 울까?”
라면서 계속 울 의향이 있는 건지 물어보기도 했어. 
그래도 안 그치니까 주변 한번 돌아보더니 갑자기 큰 결심한 듯 한숨을 팍 쉬어. 
그러더니 갑자기 뒷짐 지고 고개를 팍 숙인다. 
“내가 잘못했다.” 
이러면서. 
왜 있잖아. 
때려도 맞고만 있겠다는 듯 방어를 포기한 뒷짐 자세. 
큰 잘못하고 교무실에 끌려간 애가 선생님 앞에 열중쉬어하고 꾸중 듣는 그 자세 말이야. 
지나다니며 힐끔거리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네, 맞아요. 이 아이를 울린 건 접니다’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것 같은 그런 자세. 
달래주는 건 포기하고 처분만 기다린다는 듯 그런 자세를 취해버리니까 오히려 내가 정신이 번뜩 들더라. 
이 애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야 하나 싶어서. 
울음이 조금 그쳐지면서 
“뭘...” 
이랬더니 
“너무 몰아붙였어. 
너한테도 용량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그런 건 생각지도 않고. 
급하게 굴었어.”
라고. 
너무나 딱 부러진 소리로 자기 잘못 브리핑하더라. 
어리둥절하긴 한데, ‘용량’ 그 말 듣고야 알았어.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아프고 벅차고 놀라고 등등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몰아닥쳐 울음으로 나왔던 건데, 그게 용량 초과여서 그랬던 거구나.
“처음이니까 용서해주라. 다신 안 그럴게.” 
이러는데 그 말 듣고 가슴에 박힌 화살이 뽑히듯 스르르 아픈 게 가시더라. 
‘처음’이란 말, ‘다신 안 그런다’는 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잖아. 
그 와중에도 그 말이 달게 들리면서 안심됐어. 
솔직히는 행복했어. 
그러면서 또 느꼈어. 
내 용량이란 게 여기까지구나. 
그런 나야말로 참 한심하다, 싶더라. 
이 애는 오늘 큰 용기 내서 내 앞에 고백까지 하고 앞으로 계획까지 말해줬는데. 
난...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것도 못해서 아니라고 우기다가, 아니란 말이 더 슬퍼서 울어버리고. 
망쳐버린 건 난데 이 애한테 잘못했단 말까지 듣고. 
그런데 다시 만날 수 있다니까 또 금세 배시시 기분 풀리고... 
울었더니 더 멍해지기도 하고. 
런 내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데. 
“용서 못하겠으면. 엎드릴까.” 
하는 거야. 
헉. 
그제야 부랴부랴 
“아니야. 아니야. 그만 울게.” 
하면서 눈끝에 매달려 있는 눈물을 얼른얼른 훔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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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8.10.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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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아니 이정도 했으면 뭔데 설마 설마?????이정도 반응은 해야되는 거 아니냐고 하고싶지만 나라도 못 믿겠다...하긴... 근데 빼박 아니냐 타인의 눈으로 보니까 ㅈㄴ티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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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8.10.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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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와 개설레 제발 짝남의 짝녀는 저 글쓴이였기를 ㅠㅠㅠ 쓰니야 이거 정리해줘ㅛㅓ 진짜 고마워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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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8.10.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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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주인공님 제발 뒷얘기써줘요(20대후반인데 고딩때 생각도 나고 읽는동안 설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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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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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설마 이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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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2018.10.1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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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근데이거 주작일수밖에없는게 글쓴이가 진짜 겪은 일이라 해도 저렇게 생생하게 기억할수있나 ㅋㅋ 대사는 물론 기억나는거에 상상붙여서 썼다쳐도 상황이나 다른 모든게 너무 구체적임 그래도 좋지만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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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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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오진다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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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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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ㅏ아ㅏㅏ아ㅏㅏ 주작이라도 괜찮아 뒷애기좀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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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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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더 추가하면 수정으로 복붙해서 올릴생각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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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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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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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짝남이 진짜 매너가 오졌어서 이런 애 없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주작각이긴 한데 믿고 싶어 그냥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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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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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레전드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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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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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2018.10.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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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ㅊㄱㅍ 레전으 절절한 짝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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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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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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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거 처음에 볼때 너무 좋았는데 추가글 보니 왜 주작냄새나냐 밑에 나랑 생각 똑같은것 보고 더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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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 2018.10.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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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ㅊㅋㅍ 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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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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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ㅅㅂ 뒷부분 젭알ㅠㅠㅜ 더 없냐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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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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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 대답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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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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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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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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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담편 기대할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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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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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2018.10.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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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집도착하기전상황까지 읽고 와 진짜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완전 몰입하면서 읽다가 뒷부분 아직 추가안됐길래 다른거하다가 다시들어와서 뒷상황 추가된거 읽는데 뭔가 주작삘남ㅋㅋ 주작이라고 욕하는거 아님ㅠㅠ 이렇게 긴 글 읽으면서 지루하지도 않았고 필력도 너무 좋고 무엇보다 개연성이 없는 부분도 딱히 없고..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0프로는 아니니까 진짜경험담이겠지 하고 읽었는데, 좀 쉬었다가 나머지부분 읽으니까 알수없는 위화감들기 시작함ㅋㅋ 남자말투가 너무 현실성없다고 해야되나 인소느낌남..오글거린다기보단 진짜 저런 말을 하는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정도 ..그냥 내느낌은 그럼. 근데 주작이라해도 진짜 설렜고 재밌었음 ㅋㅋ 실화라고 80프로는 믿을거임 상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순수한 짝사랑이야기이기때문ㅠㅠ 뒷부분 궁금해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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