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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 노예의 진실 (충격)

박진만 (판) 2019.01.02 17:26 조회5,137
톡톡 개념상실한사람들 빡침주의

 

일본군 성 노예제, 일본군위안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은 제도적으로 군 위안소를 설립하고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하여 성 노예로 만들었다. 일본군위안부는 범죄의 주최인 일본군을 명기하고 역사적인 용어로서의 위안부를 따옴표 안에 넣어 표기한 것이고, 일본군성노예제는 일본군의 제도적, 조직적 범죄임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이다. 영어로는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으로 표현하여 성 노예라는 범죄의 본질을 드러낸다. 종군위안부 : ‘종군에는 군을 따라갔다는 뜻으로, 자발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정신대 : 일본의 전시체제 돌입과 함께 조선의 노동력을 강제동원한 제도. 여성의 경우 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강제동원

1932년 초 상해사변 때 일본 군인들에 의한 강간 사건이 빈번해지자 점령지역에서의 반일감정이 고조되었고 군인들이 성병이 감염되는 일이 발생하여 전쟁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군은 조직적으로 위안소제도를 도입하고 식민지 및 침략지 여성들을 동원하였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연행 당시의 나이가 11세에서 27세에 이르며 대다수 취업사기나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위안소의 규정

군 위안소는 설립, 운영, 성 노예 모집에 있어 군이 직접 하거나 민간에 위임한 경우, 그밖에 시기와 장소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나타냈으나 어느 경우에나 군대의 보호와 감독,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위안소의 규정에는 계급별 사용시간, 요금, 성병검진 및 기타 위생 사항 등이 명기되어 있었으며, 많은 군인들이 몰려 20-30명이 문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일본 군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성 노예들의 생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일본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성병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했으며, 월경이나 임신 때도, 질병에 걸리더라도 무자비하게 강간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여성들은 마음대로 위안소를 떠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이동이나 생활도 통제를 받아야 했다. 성 노예들을 일컬어 천황이 하사한 선물”, “위생적인 공중변소라고 하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종전 시 성 노예들의 상황

일본의 패전과 함께 일본군 성 노예들은 현지에 버려지거나 폭격으로 사망, 혹은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생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고난에 직면해야 했고, 일부는 차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하기도 했다.

글: 정대협, 사진: 블랙비(박진만) 

https://blog.naver.com/pjmamm/221348525600  (또 다른 사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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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위안부,성노예,블랙비,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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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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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지금 스물 다섯 분이 살아 계신다.... 그 분들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 푸시고 편하게 가셔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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