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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4)

bb (판) 2019.01.25 23:29 조회1,868
톡톡 사는 얘기 혼자하는말
이어지는 판



안녕하세요, bb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해 인사 올린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한 주밖에 안 남았어요.

시간 참 빠르죠. 하지만 왠지 이곳에서 읽어주시는 분들과 몇 년을 지낸 것 같아요.



지난번 글 올리면서, 다음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이어지는 이야기 (1)에서는 그 애를 뺀 제 이야길 해봤었고,

(2)~(3)에서는 엄마와 그 애가 만난 이야기를 했어요.


그다음 이야기는 저를 뺀 그 애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쓰다 보니 제가 빠지질 않더라고요.;;


몇 토막에 걸쳐 긴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은데.


포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까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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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처음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 애에 대해 궁금한 게 더더 많아졌어요.


먼발치에서 가슴앓이만 하다가 사귀게 되니깐요.

몰랐던 걸 잔뜩잔뜩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나만 아는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있잖아요.


그 애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고 가수는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런 것도 너무너무 알고 싶었지만 그 밖에 일상생활에 대해서도요. 속속들이 염탐하고 싶은 맘이 드는 거예요.(사귀면서도 사생팬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그리고 그 애도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또 어쩔 땐 자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요, 집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등장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땐 좀 멈칫하더라고요. 뭔가 엄청 생략하면서 지나가거나, 아님 ‘재미없지?’ 하면서 다른 화제로 돌리거나 하는 거요.

제 입장에선 뭔가 말을 하려다 마는 것 같고, 막 재밌어지려는 부분에서 멈추니까 좀 답답하기도 하고, 아버지랑 뭐가 안 좋아서 그러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 걸 몇 번이고 느끼던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ㅇㅇ아, 너 혹시 아버지가 싫어?”라고요.


처음 고백한 그날 저한테 대놓고 아버지가 좋은 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꾸 아버지 이야길 피하길래 이상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 애 대답은 “아니. 나 아버지 좋아하는데.” 이거였어요.


“그럼 왜 뭔가 말하려다가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안 하려고 그러냐, 일부러 피하려 하는 거 같다.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다.” 그랬더니.


그 대답 자체를 좀 주저하더라고요.


말해보라고, 왜 그러냐고 재차 다그쳤더니 한참 생각하다가 이런 말을 해요.


“난 누나가 없잖아. 그래선지 누나 있는 친구들이 자기 누나랑 싸웠다는 얘기만 해도 좀 부럽더라고.”


그러더니 정말정말 조심스럽게, 그러니까 조심하는 티를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일부러 담담하게 묻는 투 있잖아요. 그런 투로 묻더라고요.


“넌 다른 친구들이 아버지 얘기할 때 어때? 듣기 불편하거나 그런 거 없어?”


그 말 듣고 알았죠.


아, 내가 아빠가 없으니까.

내 앞에서 아버지 이야기하기가 미안했던 거구나, 라는 걸요.


이때, 여러 은실이들이 생각났어요.

아빠가 없단 걸 공격하거나 놀리는 소재로 썼던 애들.

대놓고 자랑했던 애들. 그랬던 애들이 떠오르면서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제가 슬퍼질까 봐 자기 일상 이야기까지 조심해주는 그 애가, 새삼 더 좋아졌어요.


그래서


“아... 그래서 그런 거였어? 바보 같다. 난 괜찮은데.”라고 하는데,


“근데 왜 울려 그러냐?”래요.


니가 그렇게 배려해주는 거 보니까 고맙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져서 그런다,라고 말하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둘러댈 말 생각하다가 “아니 그냥, 듣고 싶은데 니가 말 안 해주니까.”라고 세상 싱거운 답을 하고 말았죠.


그러고선 막 졸랐어요.


제발 해달라고. 사실은 아빠가 없기 때문에 더 듣고 싶다고.

아빠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있고, 궁금한 것도 많고 하다 보니까.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다고.

(이건 약간 거짓말을 섞은 말이었죠. 사실, 어려서부터 누구한테서든 자기 아빠 이야길 들었을 때 대리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부럽기만 했고, 아프기만 했어요.

그래도 그 애한테서는 듣고 싶었어요.)



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제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호소하니깐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턴 적극적인 질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어요.


“아버진 어떤 분이셔?” “어머니하곤 사이가 좋으셔?” “너한텐 어떻게 대해주셔?”


이런 질문에 처음에는


“좋은 분이지.” “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셔.” “잘 대해주셔.”


이렇게 단답형으로만 답하다가

“왜 좋은 분 같은데?” “뭘 보고 그렇게 느꼈어?” “넌 어떤 때 아버지가 좋아?” 이렇게 더더 구체적으로 물으니까 그제야 하나하나 말해주는데,


열일곱 무렵부터, 그렇게 차곡차곡 들었던 이야기들은,

어제나 그저께 있었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저를 만나기 전 어린 시절까지로 가기도 했어요.


아주 가끔이긴 한데 이 애가 작정하고 뭔가 이야길 해주겠다 하면 그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슨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확 빠져들게끔. 찰지게 해주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입 헤 벌리고 넋 놓고서 듣는 편이었고요.




그 느낌이 글로 다 전달이 되진 않겠지만,


그 애에게 들은 에피소드 중에 말해도 될 것 같은;; 몇 가지를 이야기해볼게요.



1. 봉숭아 물


그 애 아버지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셨던 모양이에요. 회사 화단에 봉숭아꽃을 심었다고 하시더니 어느 날 퇴근하시면서 한 움큼 가져오셨더래요.

봉지에 싼 꽃잎이랑 잎사귀를 풀어놓으시더니 “봉숭아 물 들이자” 하시는데, 그때만 해도 그 애도 그렇고 두 동생도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는 게 생소하기만 했대요.


세 남매는 아버지가 뭘 하자는 건가 멀뚱히 있었는데, 어머니는 “번잡스럽게 왜 이런 걸 가져왔어요”라면서, 당신을 빼더라도 손가락이 총 40갠데(어머님 + 애 셋) 언제 다 하냐면서 울상이 되시더래요.


아버님은 “그럼 애들은 나중에 하고 당신부터 들이자.” 이러시고 어머님은 “싫다! 저녁 차려야 한다.” 이렇게 실랑이하시다가 아버님이 손수 마늘 찧는 절구를 꺼내셔선 꽃잎이랑 잎사귀를 찧으시니까 어머님도 한숨 쉬시면서 비닐이랑 실 같은 거 챙겨오시더래요. 그렇게 빻은 꽃잎을 어머님 열 손가락에 얹고는 비닐로 한 손 한 손 싸서 실로 칭칭 동여매주시더라고.


그러고 났더니 어머님은 손이 자유롭지 못하시잖아요. 손가락 하나하나에 작은 권투 글러브를 씌운 것처럼 꽁꽁 싸매놓은 거니까요.

그렇게 다 싸매고 나니까 “이러면 저녁은 어떻게 차려요.”라고 원망하시더래요. 그랬더니 아버님이 “내가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시면서 두 팔 걷어붙이시더래요.


이건 이렇게 하면 되냐, 저건 저렇게 하면 되냐, 하시면서 어머님 지시에 따라서 채소도 마저 썰고, 볶으란 거 볶고, 끓이란 거 끓이는 등 열심히 저녁을 차려 내신 모양이에요.

(어머님이 100프로 전업주부는 아니신데, 전공하신 피아노 개인 교습 말고는 따로 출퇴근을 하시는 건 아니어서 집안 살림, 특히 식사 준비는 어머님 몫이셨나 봐요. 청소나 정리정돈은 아버님이 주로 하셨고.)

 


그렇게 해서 밥을 먹는 동안도, 어머님은 젓가락질이 힘드시잖아요. 구운 생선도 못 발라 드시고, 두부조림도 못 집으시고, 그러니까 아버님이 “뭐 줘?”라면서 하나하나 밥에 얹어주시고. 다 드시곤 설거지도 하시고.


급기야는 “이제 씻어야지?”라고. 어머님이 “아까 샤워했는데?” 하니까 “안 돼. 더러워.” 하면서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시더니 머리 감기시고 세수 씻기시고 발 닦아주시고. 머리도 탈탈 털어서 말려주시고 그러시더래요.


어머님은 “불편하게 이게 뭐야.”라고 투덜투덜대시면서도 아버님이 하자는 대로, 욕실 데려가시면 욕실로 가시고 옷 갈아입자고 안방 데려가면 또 안방 따라가시고.


쌍둥이 두 동생이 “아빠, 우린 언제 해줘요?” 하니까 “생각해보니까 너넨 안 될 것 같아.”라고. 여기저기 묻히고 다닐 것 같아서 못 해주겠다고 하시니까 두 동생은 또 금방 울상 되었다고.


그때가 한 열 살쯤 됐을 땐데 그 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왜 저러시나 싶었대요. 어머니도 울상, 동생들도 울상, 아버지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시는 바람에 모두 괴로워진 거잖아요.


특히, 어머님이 “이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요?” 하니까 “그러고 자야 돼.” 하시면서 한두 시간 물들이는 걸로는 이쁜 색깔이 안 나온다고 하시면서. 자다가 밤 열두 시쯤에 빼야 한다고. 잠드시면 아버지가 빼주고 물수건으로 손도 닦아줄 테니까 걱정 말라 하시더래요.

그쯤 되니까 어머님이 벌컥 “애들도 더 챙겨야 하고, 자기 전에 로션도 발라야 하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등의 신경질을 부리시면서 방문 쾅 닫으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버리셨대요.


보다 못한 그 애가 항의를 했나 봐요.

“아버지. 엄마가 싫어하시잖아요. 왜 일부러 엄말 괴롭히세요?”라는 식으로요.

아마 자기 반에서 여자애 괴롭히는 개구쟁이 친구라도 보는 것 같았던 모양이죠.

지금이라도 어머니를 봉숭아 지옥에서 탈출시켜드리고 싶었던 건지 모르고요.

(이 애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교육 받았다고 해요. 아버님한테요. 그런데 어머님은 ‘엄마’라고 불러달라고 하셨대요. 쪼그만 아들이 ‘어머니’ 이러니까 무슨 청학동 온 것 같고, 애 같지가 않아서 부담된다고요. 그래서 아버님은 아버지라고 하지만, 어머님은 엄마라고. 성인 될 때까지 그리 불렀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아버님이 이러시더래요.

“아, 그렇다. 아버지가 실수한 것 같아. 엄마한텐 나중에 꼭 사과할게.” 그러시더니,

“근데 이런 실수라도 좀 하고 살았으니까 니들도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저절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


당시로선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더래요. 그러곤 쌍둥이들 씻기고 좀 놀아주시다가 주무시러 들어가셨다는데.


아버님이 뜻 모를 말씀을 하신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뒤로도 문득문득 생각나더래요.

나중에 깨달은 건데, “아버지는 어머닐 좀 쉬게 해주시고 싶었던 것 같아.”래요.

‘오늘은 내가 다 할게. 당신은 좀 쉬어’란 말을 대놓고 하시기가 겸연쩍으시니까 그렇게 짓궂게 장난치신 것 같다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얘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라고요.

그렇잖아요. ㅎㅎ... 열 손가락 칭칭 동여매서 손 하나 까딱 못하게 만들어놓고 씻겨주고 입혀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그냥이라도 그렇게 해주고 싶으셨는데, 아이들 보는 앞이니까 뭐라도 구실이 있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집안 살림 해주신 것보단 그게 더 어머님 마음을 달콤하게 간지럽혀주신 일 아닐지.





2. 포옹



그 애가 중학교 때, 어머님이 의외의 취미에 빠지셨대요.


그건 바로 동방신기.


어디서 구하신 건지, 아님 앨범 사고서 받으신 건진 몰라도 동방신기 다섯 사람이 부담스러운 포즈로 서 있는 대형 브로마이드를 거실에 걸어두시질 않나, 날이면 날마다 거실 오디오에서는 동방신기 노래가 흘러나오고. 티비에서 동방신기 나오면 꼭 챙겨 보시는 등.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머님이 입덕하셨던 거겠죠. 동방신기 오빠들한테요.;;

그 애가 볼 적엔 기겁할 일이었대요.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건가...’ 싶은 게. 어머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아이돌인데, 그 애는 자기 반 친구들이나 좋아할 만한 그룹에 어머님이 빠지셨다는 게. 나름 충격이었던 것도 같아요.

(지금이야 BTS 팬 분들만 보더라도 연령대가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흔치 않은 일;;)


충격은 그 애만 받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아버님도 드악한 반응을 보이시다가 나중엔 가끔 한 말씀씩 하시더래요.

“적당히 좀 하지.”라든지 “당신 혼자서만 사는 집이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줘야지” 라는 등. 몇 번 불편함을 호소하신 모양이에요.


그러다 한 번은 조금 싸움도 벌어졌었는데, 아버님이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가 안 된다시면서 “아직 솜털도 다 안 가신 어린애들이 뭐가 좋단 거야.”라고,

적당히 하랄 때 적당히 할 줄도 좀 알아야지, 사람이 왜 끝을 모르냐,라고 한 말씀하셨는데,


어머님이 그에 대고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동방신기에 대해 뭘 알아!”라면서 발끈하시더래요.


그러시면서 ‘내가 콘서트를 보내달라 하더냐, 아님 음방에 데려가달라 하더냐, 기껏해야 집에서 티비로만 보는 건데. 왜 이것도 못하게 하냐’고. 나는 동방신기도 못 좋아하냐고. 나이 든 아줌마는 동방신기도 좋아하면 안 되냐고. 이런 말씀하시더니 말미엔 목까지 메시는 것 같더래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당황하셨는지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야. 샘나서 그랬어.”라고. 그 애가 듣기에도 급조한 게 너무 티나는 변명을 하시더라는.;;


그 애 보기엔, ‘이런 걸로 우실 것까지 있나?’ 싶으면서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드린 모양이에요. 모쪼록 두 분이 얘기 잘 나누셔서 집 안에서 동방신기 노래나 그만 들렸음 좋겠다. 공부에 방해된다. 그 생각만 했대요.


하지만 다음 날이 돼도 동방신기 브로마이드도 그대로고, 또 음악방송이 나오면 어김없이 그 소릴 들어야 했고. 그랬다네요.

어머님은 더더욱 꽁해지신 건지 오기라도 부리시는 것처럼 더 열중하시는 것 같았고요.


.......


그러던 어느 날.


가족끼리 외식하고 노래방을 갔다가,

(그 애 표현대로라면) 결국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는 그 애.


아버님이 대뜸 “첫 곡은 내가 하게 해줘”라고 하시더니.


“이렇게 훌륭한 명곡을 내가 망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라시며,

그러시면서 첫 곡으로 누르신 게 바로 ‘Hug’


이 노래 아실지 모르겠어요.

동방신기 노래 중에 제일 스윗하면서. 달콤달콤, 말랑말랑. 포근포근.

듣고 나면 꿀물을 한 컵 원샷한 것처럼, 엄청 달달한 노래거든요.


이걸 부르시더래요.


“우와!”


이 대목에서 저는 환호를 질렀죠.

너무너무 멋지잖아요.


동방신기 왜 좋아하냐고 적당히 좀 하라고 하시던 아버님이, 어느 날 노래방에서 어머님을 위해 동방신기 노래를 불러주셨단 게요. 그것도 Hug를요. 얼마나 로맨틱해요.



그래서 제가 “진짜 멋지시다. 와아...” 하며 놀랐더니.


“너 그 노래 몰라?” 하는 거예요.


안다고, 아니까 멋지다고 하는 거라고 했더니,


멋지긴 뭐가 멋지냐고.

말로만 들으니까 멋져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걸 봤어야 한대요.


“상상을 해봐. 키가 지금도 내 키보다 조금 더 크셔. 기골이 장대하시다고. 키는 이만하신 분이 엄마 앞에서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네, 일기장이 되겠네, 하....”


모니터도 안 보고 열창하시는 게 무지 연습하신 것 같더래요.

출퇴근하실 때마다 차 안에 틀어놓고 흥얼흥얼하셨을 거 생각하니까 온몸에 소름까지 돋더라고.


노래나 못하시면 또 모르겠는데, 꽤 듣기 좋게 하시나 봐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가사 하나하나 귓속에 쏙쏙 들어오게,


‘나 없는 동안에 네 하루는 어땠냐’는 둥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궁금하다’는 둥 ‘너의 귀여운 입맞춤이 어떻고’ 하신다고 생각해보라고.



“애를 셋이나 낳으시고선!”


그러실 수가 있는 거냐면서 벌컥 분통까지 터트리더라고요.



그걸 보고서 큰 결심을 하나 했대요.


“아버지처럼은 되지 말자.”


다 좋단 거예요. 아내를 위해주시는 마음,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 평화를 되찾으시기 위한 그 용단, 다 좋은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하신 것 아니냐고.


2절쯤 되자 어린 두 동생들은 엉거주춤 일어나서 춤추고.

근데 흥에 겨워서 춘다기보단 그냥 앉아 있기 괴로워서 그런 것도 같은 게.


꼭 그렇게 온 가족의 닭살을 돋혀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하면서 몸서리를 치는 거예요. ㅎㅎ;;


“와, 차라리 콘서트 티켓을 한 장 구해다 주실 것이지. 그때 놀란 것 때문에 내가 아직 동방신기에 트라우마가 있어.”라면서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다음 날 바로 거실 벽에 붙어 있던 브로마이드가 떨어지더래요. 동방신기 노랫소리도 안 들리게 됐고요.


그 애 말로는 어머님도 ‘그래. 내가 졌다. 그걸 또 볼까 무서워서라도 내가 동방신기 오빠들을 포기하고 만다’라고 항복하신 거 아니겠냐는데,

이 또한 그 애가 모르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든지요.


항복은 항복일지 몰라도, 그 애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항복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 일과 관련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그 얘기 들었을 때가 고등학생 때잖아요.


그런 이야길 들을 때마다 저는 어땠냐면요, ‘이 애도 아버님하고 좀만 닮아주면 좋겠다’ 싶어지더라고요. 그 애는... 속 깊게 사람을 배려해주고 그런 건 좋은데 단맛은 좀 없는 편이었거든요. (자상함과 달콤함은 다른 거잖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나이 때는 특히 간질간질하고 달달하고 이런 재미도 느껴보고 싶던데, 그런 게 없음.

굳이 맛으로 치자면 몸에 좋은 맛 있잖아요. 먹으면 포근해진다거나, 건강해지는 느낌의 맛. 그러다 가끔 좀 매콤하게 자극적이든지, 톡 쏘는 맛이 들어온다든지. 어쨌든 단맛은 좀 부족한 거예요.


그런 게 좀 불만이면서도 ‘에효,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다’, 하며 한숨을 삭히던 고 2 어느 날.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매운맛을 느낀 사건이 있었어요.


그 애와 제가 크게 다툰 일인데요,


간단히만 말하자면...;


제 잘못도 좀 있었지만, 그 애가 너무 심하게 뭐라 했거든요.

별것도 아닌 일이었어요. 제가 다른 남자애한테 엽서 만들어준 것 때문에 그런 건데... 저는 그냥 만들어달래서 하나 만들어줬던 것뿐이고.


저한테 직접 들었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다른 아이한테 듣고 와서는


처음엔 “내가 누구한테 좀 황당한 얘길 들어서 그러는데, 사실 확인만 하자.”라고 하는데.


그 애가 오해를 할 만도 했지만, 제가 그런 거 아니라고 오해를 풀어주면 그만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만을 안 하고 계속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별 뜻 없었어.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해도 뜻이 없는 엽서가 어디 있녜요.

 

너는 아무 뜻도 없이 48색 색연필 동원해서 그림 그리고 꾸며서 엽서 만들어주는 애냐고. 네가 아무리 뜻 없이 줬어도 상대방이 의미 부여해서 받으면 그걸로 뜻이 생기는 거고 그 친구는 평생 간직할 수도 있는 거다. 내 여자친구가 준 엽서를 누군가가 앨범에 껴서 평생 보관할 수도 있는데, 남자친구 입장에서 이거 가지고 기분 나빠하는 게 이상한 거냐.부터...


나라면 그런 행동했다가 너한테 걸렸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너는 무슨 말이 그렇게 기냐면서



“잘못했다고 안 하는 거 보니까 또 그러겠단 것 같은데, 맞냐.”래요.


그래서 “친구한테 선물한 게 뭐가 잘못이야..” 했더니


“진짜 혼내주고 싶게 만드네.”라고. 엄청 싸늘하게 말하는데 여태 한 시간 내내 뭐라 한 건 혼내준 게 아니면 뭐냔 말이에요.ㅠㅠ



“내가 그 자식한테 가서 무슨 의도로 너한테 그런 거 만들어달라 한 거냐 묻고,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 더불어 너 또한 내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단도리 치겠다 작정하면 이렇게 치는구나, 경험 한번 시켜줘 보고. 그런 수순을 죄다 거쳐야만, 그제야 다신 안 그러겠단 말 나올래. 뭣보다 그 자식만큼은 용서가 안 되는데, 전교생 앞에서 ㅇㅇㅇ이 여자친구 건드렸다간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 보여줘야 할까.”


이러는데 기겁할 얘기잖아요. 


저도 저지만... 그 친구는 어떡해요. 엽서 한 장 달라고 한 죄밖에 없는 앤데. 그래서.


“건드린 거 아니야... 걘 잘못 없어. 내가 만들어준 거야...”라며 울었어요.


“아깐 걔가 만들어달래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준 거라며.”라고 다시 따지길래,


“맞아... 걔가 예쁜 엽서 모으는 게 취미래...”랬더니.


“퍽이나.” 하며 피식 웃더니만,


“안 되겠다. 당장 전화해서 불러내. 삼자대면 하자.”래요.


지금 같으면 제가 요령이 좀 생겼으니까...


‘ㅇㅇ아, 미안해. 기분 많이 나빴어? 담부턴 남자애들이 뭐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줄게. 아무것도 안 해줄게.’라면서 우선 풀어줬을 텐데, 그땐 그렇게까지 화낸 건 처음이어서 제가 많이 놀라기도 했고,


진짜로 그 친구 불러내서 막 뭐라고 하거나 아니면 학교 가서 발칵 뒤집거나 그럴까 봐,

너무너무 겁이 났어요.


(엽서 한 장. 그래봤자 달랑 엽서 한 장인 건데. ㅠㅠ)


그래서 “이럴 거면 나 너랑 못 사귀어. 무서워서 못 사귀어.”라고 도망치듯 집에 왔는데, 그 애가 붙잡지도 않으니까 길바닥에서 소매로 눈물 훔쳐가며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너무 서러워서요.


근데 저녁 때 저희 집 근처에서 절 다시 불러내더라고요.


그래서 안 나간다고, 사실은 안 나가는 게 아니고 무서워서 못 나간다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했어요. 자기가 감정조절을 못 했대요. 화나는 걸 못 참았다고.

그러면서 제가 외로웠던 모양이래요.


“친하게 말 걸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가 그립다 보니까 그 친구가 부탁해왔을 때 거절 못한 걸 거야. 그렇지?”래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도 같아서 맞다고 했더니,


“그 맘 모르겠는 것도 아닌데, 순간 너무 화가 나가지고 속 좁게 굴었어.”라고.


“좋은 말로 다신 안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해도 됐을 걸 그렇게 몰아세우고 윽박지른 건 내가 잘못한 거야.”라면서 용서해달래요. 자기감정만 생각한 죄가 너무 크다고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요.


“그게 뭐야... 실컷 뭐라고 해놓고, 후련해지도록 할 말 다 해놓고. 지금도 목소리만 다정하지 다신 그러지 말라고 또 혼내주고 있는 거잖아. 그러면서 무슨 벌을 받겠다는 거야. 벌을 주고 싶어도 무서워서 어떻게 줘”라고 하면서 또 울먹거려지더라고요. 나 혼자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요.


그다음 날 학교에서도 저희 반으로 찾아왔을 때 그 애랑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어요. 또 뭐라고 할까 봐요. 그리고 저 앞장세워서 그 친구한테 가자고 할까 봐요.

그래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복도로 불러내서는 “어떻게 하면 풀릴래.”라고 하면서 해달란 거 다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뭐라고 하지 마. 엽서 모으는 애야...”랬더니,


바닥 보면서 잠깐 웃더라고요. 그러더니,

“알았어. 그 엽서 모으는 친구한텐 뭐라 안 할게. 그리고 또.”래요.


아무튼 그거 하나면 되는데, 뭘 또 해준다니까....

정말인가... 싶기도 한 게 그때 번뜩 생각났어요. 전부터 꼭 받아보고 싶었던 거요.


그래서 “그럼 Hug 불러줘”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건 안 된대요.

차라리 이 자리에서 대가릴;; 박으라면 박겠다고. 제발 다른 벌 달래요.


그러니까 왠지 더 ‘아, 이거다’ 싶잖아요. 그래서 말했죠.


벌이라는 게 니가 골라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 너 하고 싶은 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거 말고, 니가 정말정말 하기 싫고 괴로워야 벌인 거 아니겠냐고요.


“뭐든 말하라고 해서 했더니.... 싫으면 마.”라고 들어가려고 했더니, 붙잡더라고요.



“일주일만 시간을 줘.”라고,


그리고 그다음 주에, 들었죠.


아무도 없는 밴드부실에서 저를 앞에 앉혀두고요,

기타 치며 부르는 Hug를요.


그때도 뭘 하나 하더라도 대강은 안 하려 들었거든요.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자,라는 주의다 보니깐.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까지 해 와 가지고 불러주는데.


관전 포인트는 달콤함, 로맨틱, 이런 게 아니고요

쪽팔림과 닭살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키려는 듯 최선을 다하는 그 애 모습.


감미롭기 싫은데 이 노랠 완벽하게 소화하자니 너무너무 감미로울 수밖에 없어서,

그 감미로운 목소리를 자기 귀로도 들어야 하는 그 고통에 찬 모습..


중간중간 인상 팍 쓰면서 입술 잘근 깨무는 게

정말, 진심으로 정말, 괴로워하더라고요. ㅋㅋㅋ


다 듣고는 “앵콜! 앵콜!” 막 이러니까 “너 애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냐”고... ㅎㅎ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쌤통... ㅋ


그게 그 애가 제게 불러준 첫 노래였어요.;;



그 엽서 친구의 일은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됐어요.

길어서 생략하려다가 그냥 넘어가기 찝찝해서 좀 짧게 말하자면요.


그 애는 애초에 그 친구가 엽서 모은다는 말 자체를 안 믿었더라고요. 그 애 말로는 고 2 남자애가 엽서 모으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부터가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냐, 더군다나 축구 하는 애다. 학교에선 흙먼지 날리면서 공 쫓아다니다가 밤 되면 꽃무늬, 무지개 무늬 엽서 들여다보며 흐믓해하고, 그런 게 넌 상상이 되더냐, 하면서. 자기 취미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가 엽서 그리는 취미 있다는 거 알고, 그걸로 접근하려고 했다고 이해하는 게 더 설득력 있는 거 아니냐고.


저하고 약속은 했지만 도저히 가만히는 못 있겠었는지.


저한테 Hug 불러주고 얼마 안 있어서 동네 문방구란 문방구는 다 돌아다니면서 엽서를 사 모았나 봐요. 일부러 엄청 예쁘고 귀여운 것들로만요. 귀여운 캐릭터나 꽃 그림 들어가고 순정만화 여주인공 그려진 그런 엽서 있잖아요. 그런 걸 100장을 사 가지고 그 친구네 반에 갔대요.


교실로 들어가서는 애들 다 있는 앞에서 “**한테 들었는데 너 엽서 모으는 취미 있다며.”라고. 그러곤 “내가 널 위해서 엽서 100장을 모았다. **가 준 거랑 이거랑 바꾸자” 하더래요. 그 친군 좀 벙쪄서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집에 두고 왔다면 내가 이따가 집으로 찾아갈게. 지금 가지고 있으면 내놔라. 부탁한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예쁜 엽서 100장과도 못 바꿀 만큼 **가 준 엽서가 소중하다면, 그다음엔 난 부탁 아닌 다른 행동을 하게 될 거야.”랬다고.


그랬더니 그 엽서 친구가 한숨 푹 쉬더니 주섬주섬 책갈피에서 제가 준 엽서 꺼내더래요. 다른 애들 의식해선지 얼굴이 시뻘개져선요. 그 애는 “고맙다. 내가 준 엽서 잘 간직해라.” 하곤 뒤돌아 나갔고.


제가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전교에 소문이 다 났으니까요. 바로 그날 제 귀에 들어오도록 삽시간에 다 퍼졌으니깐요. ㅠㅠ 엽서 친구랑 ㅇㅇㅇ랑 맞짱 뜰 뻔했다가 엽서 친구가 엽서 100장 받는 걸로 마무리됐다고.ㅠㅠ;;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 뒤론 그 친구는 저 마주쳐도 인사도 안 받아줬고요. 안 그래도 없던 친구 한 명 더 없어지고...ㅠㅠ


제가 나중에 “내가 준 선물을 니가 왜 뺏어. 안 그러기로 약속했잖아”라고 따지니까 죽어도 뺏은 거 아니래요. 선물 교환한 거래요. 아직도 그렇게 우기고 있어요.))



어쨌든, 그 애한테 아버님, 어머님 이야길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구마구 펼쳤던 것 같아요.


만약에 이 애랑 졸업하고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절대절대 없겠지만, 그러다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여기까지도 숨이 가빠오는 상상이었지만, (당시로선 거의 망상급)


만약에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이 애는 어떤 남편이 될까?

혹시 이 애 아버님처럼 다정하고 또 은근히 아내를 아껴주는 그런 남편이 되지 않을까?

그럼 얼마나 좋을까??


그치만, 나 아닌 다른 여자랑 결혼하게 된다면?

....그럴 거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매운맛만 잔뜩 있는 남편 돼라! 지금보다 백 배 천 배, 캡사이신 한 사발 부은 것처럼 더 매워져라! 하고 주문을 외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저주를 지금의 제가 받고 있는지도...)


이런 응큼한 상상을 여러 번 하면서, 저 혼자 설렜다가 부글부글했다가 시무룩했다가 또다시 설렜다가... 밤잠 설치고 그랬어요.





3. 반항


어머님이든 아버님이든 원체 성적 같은 거 신경을 잘 안 쓰시는 편이었대요.

늘 모범생 모습 보이면서 공부 잘하니까 그러셨을 것도 같은데,

그런다고 해서 ‘꼴찌여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편도 아니셨던 것 같고.


성적보단 ‘학생의 본분’을 강조하셨던 것 같아요.

생활 태도나 습관, 몸가짐, 마음가짐, 이런 거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해요.


어느 날부턴가, 어머님이 한 번도 그래보신 적 없는 일들을 하시더래요.

아무래도 곧 고등학교 가야 하니까 갑자기 긴장이 되셨던 건지, 왜 그러신 건진 몰라도...


몰래 이 애의 가방을 뒤져보신다든지,

들어오면 ‘너 혹시 담배 피는 거 아니지?’라면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신다든지.

도서관 다녀온 건데도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거 아니지?’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신다든지.


“왜 그러세요. 엄마 좀 이상해요.”

“엄마, 저 좀 피곤해지려고 해요.”


이 애가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 건 이 정도였대요. 이때까지만 해도요.


그런데 어느 날

주변에 다른 학부형님들하고 정보 공유를 하시고는 꽤 비싼 학원을 등록하셨다고 해요.

방학 시작하면 바로 다니라고 하시면서요.


“죄송해요. 저 안 다녀요.” 그랬는데,


어머님이 왜 안 다니냐고, 남들은 못 다녀서 안달인 데를 너는 왜 안 다니냐, 하시는데 좀 볶이는 기분이 들더래요.


그래서 “진짜 왜 이러세요.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공부 가지고 속 썩혀드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뭐가 불안해서 이러세요. 제 페이스대로 제가 알아서 한다잖아요.”라면서 좀 성을 냈나 봐요.


“이런 식이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해버릴까 보다.”라고, 반협박성 말까지 하면서요.


그때 아버님이 방에서 나오셔서는 “왜들 그래?” 하시는데,

평소에 어머님에게 불손하게 하면 크게 꾸중을 들었기 때문에 순간 움찔했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답답하니까 다 말했대요.


엄마가 제게 상의도 없이 학원 등록하셨다고 한다.

내 성적 내가 알아서 잘 관리하면 간섭 안 하시기로 하시지 않았냐.

왜 룰을 깨시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요.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대번에 “당신 왜 약속 안 지켜.”라고.

“애가 한다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했잖아. 학원 당장 취소시켜.” 하시고는 이 애한테는 “너, 학원 안 다녀도 되고 네 맘대로 다 해도 되는데, 한 번만 더 엄마한테 소리 높여봐라.”라고 하고는 들어가시더래요.


그런데 그 뒤에 어머님도 뭔가 부아가 치미셨던 건지...

모자 사이에 며칠 좀 냉기류가 흘렀는데


서로 대화가 없던 어느 날. 사건이 하나 터졌대요.


어떤 여학생 무리가 집 앞으로 찾아왔는데,


(간혹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약간 놀이 삼아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재미로... 아이돌 쫓아다니는 것 대신 실물을 볼 수 있는 그 애를 타깃으로 삼아서 무료한 학교생활의 자극제로 삼았던 느낌이랄까요?)


그런 아이들이 그 애네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터에 어머님하고 마주친 모양이에요.

그중 한 아이를 어머님이 알아보셨대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부모님들끼리 알았던 애였는지, 알아보시곤.


“너희 여기서 뭐하니?” 하시니까 “아, ㅇㅇ이 좀 보려고요. ㅇㅇ이 집에 있어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등

몇 마디 대화가 오갔겠죠.


그 애가 친구들하고 놀다 들어와 보니까,

같은 반도 아니고 말도 몇 번 섞어보지 않은 여자애들 세 명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자길 기다리고 있더래요.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어처구니도 없고 그래서 일단 애들더러 가라고 했대요.


“여기까지 와 준 건 고마운데, 나 너희랑 못 놀아. 미안하지만 집에 가라.”라고.


머릿속으론 내일 학교에서 뭔 소문이 날지. 어떤 말들이 퍼질지 이미 스트레스 받고.

(제 기억으론 실제 소문이 났어요. 누구누구들이 그 애 집에 가 봤단다. 어머님이 이쁜 찻잔에 차도 내주시고. 집도 구경시켜주셨는데. 방음벽 설치된 넓은 방도 있다더라. 그 방에 피아노도 있고 기타에 드럼 세트도 있고. 걔 방도 들어가봤는데 무슨 향이 나더라. 벽에는 무슨 포스터가 붙어 있더라, 우리도 가볼래? 등등;; 저도 귀 쫑긋하며 들었던 1인인지라... ㅜㅜ)


그러는데 어머님이 “아니, 내 아들 찾아온 내 손님인데 왜 쫓아내? 엄마 손님을 쫓는 경우도 있어?”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일부러 멕이시나 싶은 게 약이 엄청 오르더래요.


그래서 겨우겨우 화 가라앉히고는 애들한테 데려다주겠다고. 떡볶이도 사준다고 하면서, 나가자고 해서 나갔다가, 늦게야 들어왔는데


어머님 얼굴 보자마자 울컥 성질이 나더래요. ㅜㅜ


진짜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따졌더니,


어머님은 또 어머님대로 “그럼 너 보러 왔다는데 밖에서 떠돌게 해?” 이러시고.


그 애는


보러 온다고 집으로 다 들이시면, 나는 사생활도 없는 거냐고.

그 애들 만나셨을 때 저한테 전화 한 통 해주시는 게 그리 힘드시더냐. 어떻게 제 동의도 없이 저도 잘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들어올 생각을 하시냐.

내일부터 함 보시라. 이거 소문나면 다른 애들도 올지 모르는데, 그 애들 다 초대하고 제 방 보여주고 그러실 거냐. 애들이 장난삼아 그러는 건데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시면 어쩌잔 거냐고.


(정말 싫었던 모양이에요. 그 세 명한테도 떡볶이 먹으면서 부탁했대요. 다시는 이러지 말아달라고. 너희는 어떨지 몰라도 난 불편하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건 좋은데 학교에서 얘기하고 그러면서 친해지면 되지, 왜 사람을 구경하러 오냐 등등)


그러니까 어머님은, ‘그래 잘나서 좋겠다. 인기 많아서 좋겠다.’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잘난척하는 거 보니까 꼴사납다 야.’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비싼 척은...’ 등등 놀리듯 말하시고.


그러면서 그 애들 또 놀러오라고 하라고.

쪼끄만 애들이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곰살맞게 구는 게 너무 귀여우셨다고.

애들이 이런 것도 주고 갔는데 밥도 못 먹여 보냈다고 하면서 뭘 내미시는데,


작은 사탕 꾸러미더래요.


그거 보는 순간 이 애 표현대로라면 바로 눈이 뒤집어졌다 하더라고요.

너무나 화가 나서요.


이때부턴 말 그대로 퍼부었대요.


아니 이걸 왜 이제 말하시냐. 아까 애들 있을 때 말해야 돌려주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냐,

엄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아시냐.

이러면 내가 내일 그 애들 반에 찾아가야 하지 않냐.

‘어머님’ 소리 듣기 좋으셨다니, 그중에 며느리라도 보고 싶으신 거냐.

나 지금 중학생이다.

다른 친구들은 사춘기라고 부모님이 조심해주신다는데 우리 집은 엄마가 사춘기냐.

왜 뭐든 엄마 마음대로 다 저질러버리시냐.

제 입장에 서서 잠깐만 생각해보셨어도 이러실 수 없는 거 아니냐.

내가 엄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냐.

무슨 앙심을 품으셨길래 이러시냐.

일부러 골탕 먹이시는 게 재밌어서 그러시냐.

학원을 끊어줄 게 아니고 내 공부라도 방해를 말아달라,

오늘도 이게 뭐냐 저녁 스케줄 다 망친 거 아니냐. 엄마 때문에.


이런 식으로

어머님이 한 말씀하시면 얘는 열 마디 스무 마디로, 와다다다 쏴붙였대요.


그간 맺힌 거 다 쏟아내듯이요.


그러다 어머님이 ‘알았어. 내가 미안해. 그만해’라면서 물러서시려 하더래요.

보니까 어느샌가 아버님이 들어와 계셨고. -이 애는 등지고 있어서 몰랐는데 어머님이 먼저 보고 그만하자 하신 거더래요.


아버님이 분위기 보시더니


“뭐야. 왜 그래, 또.” 하시는데 아버지 들어오시는 소리도 못 들었을 정도로 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던 거고.


어머님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면서 좀 무마해보려 하셨지만, 아버님이 내가 본 게 있는데 뭐가 아무것도 아니냐고 똑바로 말하라고 하니까 있었던 일을 말하셨는데

아버님이 “알았어. ㅇㅇ이가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포악해질 애는 아니지. 당신이 뭘 어떻게 실수한 건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도 넌 나 좀 봐야겠다.”라고 하시면서 방에 들어가시길래 따라 들어갔대요.


아버지 앞에 고개 숙이고 섰더니,


“엄마가 잘못했어. 그렇지?”라고 하시더래요. 그래서 “네.” 했고.


“네 의견이나 기분 같은 거 전혀 존중도 안 하고, 오늘 일은 특히 그랬어. 그렇지?”라고 해서 또 “네.” 했고.


“근데, 부모가 잘못하면 자식한테 혼나야 하는 거냐?” 하시더래요.


“그런 적 없는데요. 제가 어떻게 엄말 혼내드려요.”라고.

이 애도 분이 덜 풀려서 좀 삐딱하게 말했더니,


어른한테 말버릇 곱게 하고 늘 공손한 태도 유지하라는 건 일곱 살 때부터 회초리를 수십 개나 부러뜨려가며 가르쳐온 덕목인데, 오늘 그게 말짱 헛일이 된 현장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더니 한 사람은 세 치 혓바닥으로 누군가를 사정없이 쥐어박고 있고 상대방은 입도 벙긋 못하고 맞고만 있었어. 둘 중 하나는 아들이고 하나는 어머니 같던데. 내가 잘못 본 거냐.”라고.



“엄마가 너한테 잘못하거나 실수한 건 아버지가 잘 얘기해서 다시는 그런 일 안 생기게끔 조치를 취할 거야. 그런데 너는 너대로 잘못을 했어. 아니냐.”라고 하시면서 다시금 물어보시더래요.


그런데도 이 애는

“엄마가 잘못하신 걸, 저는 왜 말 못해요.”라고 또 말대답을 했나 봐요.


그랬더니 아버님이

“네가 한 게 말이었던 거냐. 내가 듣기엔 뉘집 개가 짖는 소리로 들리던데.”라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너 잘못했냐, 안 했냐.” 하시더래요.



이땐 좀 반성하는 마음이 들긴 들었는데 반항심에 “잘못한 거 없습니다.” 해버렸대요.



그랬더니 바로 “엎드려.” 하시더래요.


엎드렸대요.


원래 아버지가 체벌하시거나 꾸짖으실 적엔 어머님은 절대 관여도 안 하시고 들어와보지도 않으시고 그러시는데.


이날은 들어오셨대요.


근데 들어오신 순간의 상황은 이미 그 애는 땀범벅, 얼굴에서 바닥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팔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잠깐 엎어졌다가 이 악물고 다시 자세 잡는데 꼭 온몸으로 지구를 떠받치는 것처럼 뼈마디가 뒤틀리고. 그러고 있던 때래요.


아무래도 어머님은 아버님이 좀 꾸짖으시다가 종아리 몇 대 치시고는 마치시겠거니 했는데 회초리 가지러 나오지도 않고 잠잠하니까 말이 길어지나 싶어서 쌍둥이 동생들 밥해서 먹이시고 설거지 다 하시고, 마음이 착잡해져서 산책로도 한 바퀴 도시고, 이쯤 되면 상황 다 정리됐겠거니 하고 들어오신 모양이래요.


그래도 방 안이 조용하고 누구도 나오지도 않고 하니까 들어와보신 건데,


이 애가 엎드려뻗친 채로 다 죽어가고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는 그 옆에서 책 읽고 계시고요.


어머님이 들어오시자마자, “으악! 뭐하는 거예요!” 하고 비명부터 지르셨다고.


“당신 뭐하는 거예요! 뭐예요, 이게!”라고.


무슨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본 것처럼. 길길이 뛰시는데.


그러니까 아버님이

“인정을 안 하잖아. 잘못해놓고. 아니라고 우기느라 저러는 거잖아.”라고.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면 되는 걸 그걸 하기 싫어서 세 시간째 저러고 있다고.


오히려 어머님한테 일러바치듯이 말하시는데.


어머님이 “뭐? 몇 시간?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라고, 발음도 정확하게 ‘미친 새끼’라는 말을 섞어 고함을 치시더래요. 그러곤 “애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당장 그만두지 못해요!” 하시는데



그 애는 엎드린 채로도 그 순간엔 웃음이 좀 나더라고.;;


“아니, 그게 왜 웃겨?” 했더니,


웃겨서 웃었다기보단 순간 좀 재밌었대요.

욕하시는 걸 처음 봐서 놀라기도 했지만 어머님도 나오시는 대로 질러버리시곤 스스로 놀라신 거 아니겠냐고.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만두지 못해요!’라는 식으로, 결국 존댓말로 마무리하시는 게. 그 와중에도 아차 싶어서 그러신 거 아니겠냐는 거예요.


게다가 그렇게 쌍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절박하셨으면 어머님이 직접 ‘ㅇㅇ아 일어나.’ 하실 법도 한데,


아버지가 벌 세운 걸 직접 깨버리실 수는 없으셨는지, “아후, 이걸 어떡해, 어쩜 좋아 이걸...” 하시더니 바닥에 납작 주저앉으셔서는 자기랑 눈 마주치시면서 막 “잘못했다고 해. 엄마가 미안해. 응? 잘못했다고 해...” 하면서 거의 비시듯이 그러셨단 거예요. 재밌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그땐 “안 재밌어... 뭔가 좀 무서워...” 했는데;;


하여간,


어머니도 그러시는 데다 자기도 도저히 그 이상은 못 버티겠고, 잘못한 건 한 거니까 “잘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그제야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아직 얘기 덜 끝났으니까 당신은 나가 있어.”라고 하시더래요.


어머님은 “밥도 안 먹고 왜들 저래..., 둘 다 진짜 너무 싫다...” 중얼거리시면서 넋 나간 듯이 나가셨고.


어머님 나가시자 아버님이, “고생했다.”라고 하며

말씀을 시작하시는데. 이런 내용이었대요.


“너무 힘들지.”라고. “죽을 것 같았지. 살려달라는 소리 나오고.”라고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니 엄마는 그 이상 되는 고통을 장장 열네 시간을 겪었어. 너 때문에.”라고.


너 낳느라고 온몸이 찢어발겨지는 고통을 열네 시간이나 견디는 걸 아버지가 다 봤다고 하시더래요. 간호사가 소리를 너무 지르면 아기한테 안 좋다고 했더니 소리도 삼키시더라고. 애기 다 낳고 봤더니 아랫입술이 다 피멍지고 너덜너덜해져 있더래요. 하도 입술을 깨물어서요...


그뿐인 줄 아냐고 하시면서,

그런 고통 속에 낳아놨더니 그때부터가 일이더라. 밤엔 잠 못 자고 낮엔 내도록 안고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도 안 내려놨다고. 아버지가 퇴근해서 아기 안아주시면 그제야 삼 일 굶은 사람마냥 허겁지겁 밥 한술 잡숫고, 눈 좀 붙이고 그러셨다고. 걷기 시작하면서는 더 불안한지 배 안에 쌍둥이 배고도 널 업고 다녔다고.


그렇게 땅에 한 번 내려놓기도 아까워하면서 키웠는데, 이제 좀 컸다고 바락바락 대든다고 생각해보라고.

그 속이 어떨지.


그러니까 네가 잘못한 거냐, 아니냐 다시 물으시더래요.


그래서 잘못했다고. 그랬대요.


그때 아버지가 대뜸 이러시더래요.


“난 목숨이 하나밖에 없어.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누구한테 바칠 거냐 묻는다면 난 저 여자한테 바친다.”라시면서


“왜겠냐.”라고 물으시더래요.



“사랑하는 여자여서요.”라고 정해진 것 같은 답을 하면서

그렇게 목숨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대들었으니 그 벌을 주셨단 건가 싶었는데


“아니지. 그것관 별개지.”라고 곧바로 오답 처리를 하시더니,


여태 뭘 들었냐. 사람이 말을 하면 맥락을 좀 파악해보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널 낳아줘서잖아.”라고.


내 목숨 같은 건 열 개, 백 개로도 바꿀 수 없이 귀한 널 낳아줬기 때문이라고.

널 갖고 낳아주고 젖 물리고 영양분 다 빨아먹히면서 너 키워낸 거.

그거 하나 고마워서라도, 모든 걸 다 바쳐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고요.



“나는 널 낳아줬단 것만으로도 내게 어떤 악다구니를 치든 들볶든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던데, 넌 널 낳아줬는데도 그런 마음이 안 들어?”


라면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이 말씀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듣다 보니 기분이 이상하더래요.


느닷없이 아버지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은 것도 같고, 내가 나 자신을 아버지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 건가 싶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을 거다.” 하시면서 나가자고 하셔서 “네.” 하고 따라 나가려는데,


문을 여시려다 말고 문득 발걸음을 멈추시더래요. 그러시더니,


“근데 ㅇㅇ아, 좀 아까 엄마가 무슨 새끼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무지 진지하게 이러시는데, ‘아...., 너무 충격 받으신 나머지 차라리 귀를 의심하고 싶으신가 보다.’ 싶어서


“네. 잘못 들으신 거예요.” 하고 나갔대요.



그런데 이때부터 또 다른 국면이 펼쳐졌는데...


나가서 그 애가 어머님한테 죄송하다고 재차 말씀드리고, 아버님도 옆에서 “다시는 당신 속상하게 안 하겠대요. 나하고 약속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님이 피식 웃으시더니만 “너나 잘하세요.”이러시더래요.


그러시더니 “무슨 인간 백정도 아니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잡는 꼴을 내가 언제까지 봐야 돼. 언제까지!” 하면서 결국 악을 지르셨다고...


아버님은 짐짓 당황하시는가 싶더니,


“애들 보는 앞에서 왜 이래. 화나는 거 있으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이러셨는데,


어머님이 “애들 보는 앞? 그렇게 누구 앞이 중요한 사람이, 애 엄마 보는 앞에서 애를 초죽음을 만들어놔? 뼈도 아직 덜 여문 애를... 그러고도 사람이야? 짐승도 안 그래. 저번에 티비에서 봤는데 사냥 중인 사자도 배 아파 낳은 어미 앞에선 그 새끼를 안 해치더라.” 이런 식으로 따지시면서, 우시더래요.


아버지는 “미안해. 내가 과했어. 다신 이런 벌 안 줄게. 울지 마.”라고.

무지 열심히 달래주려 하시고.


그제야 어머님은 늦은 저녁밥을 챙겨주셨는데, 씻으러 가면서 들으니까 그 뒤로도 울음 섞인 말로 꿍얼꿍얼하시는 게 뭐가 많이 맺히셨던 모양이라고 해요.


씻고 나와서도 밥을 좀 느릿느릿 먹었더니,


“왜 그렇게 못 먹어? 수저 들기도 힘들어서 그래? 엄마가 떠먹여 줄까?” 이러시는데,


갑자기 왜 이러시나, 싶은 게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더래요.


어머님이 ‘아~’ 하시면, 자기는 ‘맛있다’ 하면서 입 아 벌려서 넙죽 받아먹고. 그런 광경 상상하니까 

엎드려뻗쳐서 세 시간 버틴 것보다 그게 더 무서운 벌 같았다고.;;


그래서 기를 쓰고 씩씩하게 먹었대요.

“엄마.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하고는

반찬도 한 번 집어 먹을 거 두 번씩 집어먹고 그러면서요.



그런데, 어머님이 아버님의 체벌에 대해 딴지를 거신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셨다고 해요.

종아리가 터지도록 맞고 나와도 등 한 번 쓸어주신 적이 없고 드라마에서 보듯이 잘 때 몰래 들어와서 연고 발라주신다든지. 그러신 적이 없대요. 종아리 색 변색되는 것 같아서 자기 용돈으로 사두고 직접 바르곤 했다고.;;


제가 말했어요.


“그럼 그날 어머님 마음 알고서 감동받았겠다. 어머님이 그동안 많이 힘드셨다는 것도 알게 되고...”라고 했더니,


아니래요. 엄청 억울했대요.


체벌 수위나 방법 같은 거, 미리 두 분이 의논하셔서 합의점을 찾아두셨어야지, 몸 달달 떨리고 앉아 있기도 힘들게 어지러운데 뒤늦게 그런 말씀 주고받으셔봤자, 이미 벌 다 받은 자긴 어떡하냐는 거예요.


ㅡ.ㅡ;;


그치만 어머님은 말리실 틈도 없으셨던 거고...



그러곤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뒤로 엄마가 내게 불필요한 간섭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내가 싫어할 만한 일을 나 모르게 해버리신 적도 없고.”라고.


자기 또한 어머니에게 성질을 부리거나 그렇게 불손하게 대든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지만

어머님도 원인제공을 거의 안 하셨단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론 해피엔딩이래요.


“아버지는 한 사람한테만 벌을 주셨는데, 행동 수정은 두 사람이 했어. 그럼 의도하신 거든 아니든, 아버진 일타쌍피 치신 거 아니냐”는데,


그런데 저는 이런 말을 듣다 보니까요, 어머님 쪽에 이입이 많이 되면서 마음이 참 안타까워지더라고요.


어떤 이유에서든 아들과 다투시게 될 경우, 혼이 나는 건 당신이 아니고 아들이니까요.

게다가 이번엔 그냥 혼나는 것도 아니고 초죽음 되도록 무지막지 혼나는 걸 보셨으니까요.


그게 넘 마음 아파서라도, 아니면 또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땐 애를 진짜 잡겠다 싶으시니까 겁나셔서라도...

그 뒤로는 아들이 질색팔색하는 일은 아예 할 엄두를 못 내게 되시지 않았을까...

ㅠㅠ



그러면서 든 생각이,


달달하시지만 가끔은 너무 무서워지시는 아버님과 또 이런 아들.

두 사람 틈에서 어머님은 하루하루 행복도 하셨겠지만 살 떨릴 때도 많으셨겠다, 싶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죠.



이 애는 나중에 어떤 아버지가 될까?


아이들이랑 잘 놀아줄까?


놀아줄 때 놀아주더라도 엄마한테 대들면 이렇게 혼내주게 될까?


만약에 만약에 내가 이 애랑 결혼하게 되어서 어머님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난 과연 어머님처럼, 이 애한테.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애한테.

‘야 이 미친!’ 하면서 달려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푹 잠겨서 그 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뭘 그렇게 봐. 너무 잘생겨서 그래?” 이럼.



순간 확 깨가지고 “아니야, 그런 거!” 했더니,



“왜 화를 내. 얼굴 새빨개져가지고 계속 쳐다만 보고 있으니까 그런 건데.”래요.



‘니가 아빠가 되는 상상을 해봤어’라곤 할 수 없어서 말없이 눈앞의 파르페만 푹푹 퍼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 애에게 들은 이야기들,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어지는 이야기 (4), (5)’ 로 나누어 올리려 하고요.


(5)는 좀 정리를 더 해야 하기도 하고,

한꺼번에 읽기ㄷㅎ 힘드실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올려두고 저도 좀만 쉰 다음에 이어서 올릴게요.



* 오늘도 긴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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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 2019.02.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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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으면서 항상 재밌게 보고 있어요!! 감동 설렘 재미 다 있네요 ㅎㅎ 근데 가끔 글들 bb님 지인이 보면 어찌 될까 하는 걱정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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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01.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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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와 진짜 저도 이런 행복한 연애 한번 해보싶네요 꼭 결혼까지 하세요 응원하게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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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 2019.01.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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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생각을 하게 돼요. 말씀 한마디한마디에서. 아버님은 살면서 본을 보이신거 같고. 조금은 무서운 장면도 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키운다는게 맞는거 같아요. 그분은 아테네식교육과 스파르타식교육 두가지를 병행해서 받으신 분이네요....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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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덕 2019.01.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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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올리는 거 힘드시겠어요 ㅜㅜ 늘 감사히 잘 읽고 있어요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에 늘 아껴서 조금씩 조금씩 스크롤 내리면서 읽어요 ! 엽서 얘기에서 ㅋㅋㅋㅋ 글로 당사자 입장에서 읽으니까 설레는 거지 현실에서 그 광경을 제가 봤다면 "염병" 했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엽서 모을 수도 있지 ..! 진짜 사심 1도 없이 엽서 만들어달라 한 거면 그 친구 진짜 어이 없었겠어요 ㅋㅋㅋㅋㅋ 이번 주말도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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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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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오늘도 잘 읽었어요! 근데 여자애들이 집에 찾아오다니... 그냥 뭐 연예인 아닌가요?? 학교 밖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학교에선 오죽할까요... 근데 인기가 이렇게 많아서 그분도 좀 스트레스 받으셨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기 많으면 막 소문도 잘 나고 그러잖아요. 그 일 있고 나서도 소문 났다면서요ㅠㅠ 본인 얘기가 그렇게 소문나면 되게 부담될 것 같은데.. 인기 많은 것도 마냥 좋진 않네요. 반항 에피소드에 그분이 어머니께 뭐라고 하셨을때 또박또박 말하시는거요.. 뭔가 저랑 많이 차이난달까요ㅠㅠ 저는 엄마랑 다툴 때 또박또박 말하는 것보단 말하다가 말이 안 통하면 그걸 설명하려고 하기보단 '아 몰라' 이러면서 방에 들어가거든요;; 되게 버릇없죠? 지금 반성 중입니다. 그나저나 3시간동안 엎드려 있었다니... 온몸에 알 배기고 팔 다리 후들거렸을 것 같은데;; 어머님 반응이 충분히 공감돼요. 그래도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네요. 주말 재밌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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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돌이 2019.01.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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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꺄아아아악 첫댓첫댓첫댓 bb님만수무강하세요♡!♡♡!♡☆☆ㅐㅐ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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