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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3kg짜리 소화기로 8살 아이를 때리려 했습니다.

동생 (판) 2019.10.22 00:17 조회237,192
톡톡 결혼/시집/친정 방탈죄송


내가 7살에 겪은 일이다. 그날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열세 살짜리였던 나의 언니다.

지금 나는 20대고, 제목 같은 위협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럼에도 자극적인 과거 일을 표제삼은 것은 많은 여자들이 이 글을 읽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아직까지 기억한다. 나는 일곱 살이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까닭으로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뻗쳐 걷어차이면서 대여섯시간 동안 폭언과 고함을 듣고 있었다. 이유를 알고 있다. 집 전화를 통해 몇만 원인가 하는 금액의 영문 모를 전자 결제가 진행되었다. 당시 집에서 전화를 이용해 인터넷 결제 같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나 뿐이었다.


7살짜리가 그러는 법을 어떻게 알았느냐, 아버지가 포커 게임을 좋아해 종종 캐시 아이템을 샀기 때문이다. 구매를 내게 시켜서 방법을 익혔다. 그러니, 가족 중 결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뿐이니까, 분명 네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이유를 몰랐다. 몇 시간을 울며 빌었다. 내가 안 그랬어 나는 몰라…….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내가 아무에게나 어머니의 주민번호를 알려 주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땐 보안 인식이 적을 때라 주민번호나 전화번호 정도만 알아도 그런 결제가 가능했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이었던 건 맞고, 호되게 야단을 쳐서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일부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7살이었다, 7살. 뭘 안다고. 그럴 수도 있는 나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때 당시에는 내가 원인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고, 아버지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모른 채로 심증이 내게 있기에 쥐잡듯이 어린애를 잡았다. 너무 겁이 나서, 네가 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벌을 그만 서게 해주겠다기에 나는 반억지로 ‘내가 했다’고 말하고 말았다. 숫제 고문이다. 갓 입학한 어린아이를 몇 시간 동안 으르고 체벌하며 사실조차 아닌 답을 이끌어냈는데 고문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정말 억울했고 요령을 몰랐기 때문에, ‘일단 지금 그런 것으로 넘어가고, 내일 통신사에 전화해서 진위를 물어보라’는 식의 답을 했다. 그러자 대노한 아버지가 소화기로 나를 때리려고 했다. 소화기, 진짜 소화기. 손바닥만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3.3kg짜리 규격인 그걸 말하는 것이다. 아파트 복도에 두는 그것. 아주 무겁고 철제로 만든, 맞으면 성인이라도 당연히 죽을 수 있는 그것.


언니가 내 앞으로 뛰어들어서 남자를 가로막았다. 그때 언니는 열세 살이었고 초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이었으며 아버지에게 시달리긴 나보다 더한 시기였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소화기를, 소화기를 들고 달려드는데 내 앞으로 뛰어와 양팔을 벌리고 앞에 섰다.




나는 그날 키가 150cm쯤 되었을까 싶은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보여 주었던 등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상황이 다소 진정되고 이 모든 일이 내 고의가 아니라 그저 ‘7살짜리가 저지를 법한 실수’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언니는 다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 그의 ‘남성성’과 성질머리가 함께 한풀 꺾인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시절엔 더했다. 아버지는 방문을 때려 부수거나 선풍기를 집어 던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술에 절어 들어와 새벽 네 시까지 난동을 부린 후에도 사과하는 법을 몰랐다.


그때 언니는 나보다도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를 무서워했지만 그가 기분이 좋을 땐 또 살가운 아빠라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뭘 알겠는가? 매일 윽박지르고 고함치던 사람이 한두 번 잘해 주면 내게 애정이 있다고 믿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언니는 열세 살이었고, 어렸으되 아버지가 가정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은 알 법한 인지능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꼭지가 돈 아버지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언니는 나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소화기가 달려드는 내 앞을 가로막고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소리쳤다.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이 사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면 내 손에 소화기가 들려 있는데 열세 살난 내 딸이 7살배기 동생을 감싸고 섰다면 그 순간의 기억이 눈꺼풀 안에 새겨져 평생 부끄러움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그런 족속이다. 세상엔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기억을 편리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간들만이 청렴결백을 주장하고,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보통 정신과에 간다.


자라는 동안 언니는 착실하고 얌전한 모범생이었고 좋은 대학에 갔으며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 나는 중간부터 어디 한 군데가 어긋난 사람처럼 이런저런 사고를 쳤다. 세상은 분노와 공포로 직조된 거대한 수감시설 같은 것이었고 가슴으로부터 자라는 화는 아버지처럼 타인에게로 터뜨려지는 대신 내 안을 저미고 있었다. 내가 온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 이미 나는 나의 건강한 10대를 송두리째 어딘가에 뺏긴 후였다.


그러나 내 앞에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안락한 소녀 시절을 도난당한 그녀는 열세 살에 일곱 살 동생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내 언니는 나보다 몇 해 먼저 태어나 괴물 같은 아버지의 분노를 영문도 모른 채 걸머지고 질질 걸어갔다. 내가 걷지도 못하던 시절부터 그녀는 이미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는 투쟁을 시작하였다. 누구도 길을 알려 주지 않고, 잊을 만하면 세상을 두들겨 패는 폭력으로부터 자아를 지키기 위해 무한한 싸움을 반복했을 것이다. 나는 뒤늦게 그녀를 따라 걸으면서 ‘이미 아는 공포’와 싸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언니에게 산다는 것은 무수한 미답지의 반복이었으리라.


내가 열세 살이 되고, 열여섯 살이 되고, 다시 스무 살이 되는 동안 나는 언제나 언니의 열세 살과 열여섯 살과 스무 살을 생각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니에게 물어보았고 돈이 없어도 언니에게 빌렸다. 바짝바짝 가슴을 말리는 홧병 같은 것에 휩쓸릴 때에도 나보다 먼저 그 길 앞에 언니가 있었다.


나이차이가 나는 탓에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항상 어른이었다. 그녀가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도 내 눈에는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내가 자라며 앞으로 겪게 될 아버지보다 늘 여섯 살 젊어 더 기운이 넘치는 남자 앞에 서야 했을 때 언제나 놀라울 정도로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이십 대 중반이 된 지금 내가 나의 스무 살을 돌이켜 봐도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리고 실수투성이인데, 심지어 이 앞에 어떤 시련이 있을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그녀에게는 어땠겠는가? 열세 살이었던 언니가 내 앞을 가로막을 때 그녀는 저 시뻘건 소화기를 자신이 정말로 대신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과하라고 외쳐도 듣지 않는다는 것 역시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니는 내 앞에 섰고, 나 대신 사과를 요구했다.


나는 언니와 친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보통 자매들의 친밀함과 조금 다르다. 팔짱을 끼고 함께 쇼핑하거나 옷을 나누어 입는 대신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으로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신뢰를 나눠 가졌다. 자아가 일종의 철제 상자라면 우리는 언제나 상자 바깥에서 날아오는 폭탄 파편을 맞으며 살아갔기에 도저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서로 얽혀들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서, 우리는 비록 살갑게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결코 서로 부딪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없이 증명하는 날로써 유대감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자매애라기보단 전우애라고 해야 옳을 애착이 있다. 미답지를 걷던 그녀의 투쟁이 유산으로 남아 나의 투쟁이 되었다.


여성들이 함께 싸우는 여성을 자매라고 부를 때 나는 나의 언니를 생각한다. 이제 나는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누군가에게 귀속될 필요가 없는 사회인이고, 아버지가 또다시 소화기를 들고 달려든다면 절대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만큼 자랐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중년 남성을 마주치면 거리를 두고, 어디서든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재해처럼 나를 할퀴고 지나간 여러 문제 까닭에 다양한 우울증약을 먹지만 큰 호전은 없다. 때때로 나는 내 인생이 좁고 기나긴 굴방 안에서 좀먹은 이불처럼 얌전하게 썩어 가리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지금 헤쳐 걷는 이 괴로움을 나보다 앞서 나의 언니가 겪었다. 그녀에겐 편을 들어 싸워 줄 언니도, 날아오는 소화기를 막고 서서 대신 외쳐 줄 언니도 없었다. 나고 자라기를 당연하게 맏이였기에, 영문 모를 폭압에 맞서다 점차 망가져 가는 자신이 실은 옳은 것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직업을 가졌다. 그녀는 아직도 나보다 여섯 해 먼저 수많은 ‘아버지들’과 싸운다. 나보다 먼저 대학생이 되었고 나보다 먼저 직장인이 되었기에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한없이 연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도 반드시 먼저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내 자매는 걷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걸었다. 우리 앞에 먼저 걸어간 나혜석과 김지영이 그저 멈추는 방법을 몰라서 발걸음을 재촉했듯이 나의 언니 역시 쉬지 않고 걸었다. 그녀들이 먼저 헤쳐 걸은 방향이 내게로 와 길이 되었다.


그래서 여섯 해 뒤의 나는 폭세틴과 알프람을 양손에 쥐고서라도 따라 걷기로 한다. 내가 걷지 않으면 다음 여섯 해가 지났을 때 또다른 여성이 내 언니가 되어 누구도 답을 알려 주지 않는 수풀에 처음 길을 내는 역할을 짊어져야 하기에, 세상의 모든 개척지에 늘어선 여자들이 내 등을 보게 하기 위해 나는 걸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 태어날 나의 동생들에게 또다른 언니가 된다. 우리는 거대하게 순환하는 단 하나의 자매들이다.




내 앞에 나의 열세 살 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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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ㅠㅠ 2019.10.2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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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편리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간들만이 청렴결백을 주장하고,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보통 정신과에 간다.' 너무 옳은 말이라 어떻게 더 동의를 보내야 할지ㅋㅋㅋㅋ 정신과 가보면 알죠 진짜 와야 할 사람은 안 오고 그 사람한테 피해당한 사람들만 가슴치며 찾아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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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하마 2019.10.2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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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아, 글쓴 님!! 한없이 외롭고 슬픈 내용이나, 또한 반짝이는 모래알같은 투명함과 빛남과 씩씩함을 함께 보았습니다. 읽어내리는 짧은 순간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감동에 젖기도 했어요. 님의 우울감을 약물의 도움을 받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 손끝에서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힘 내길요, 부디!!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는 삶의 길에, 님 옆에는 항상, 평생 배반할 리 없는 든든한 아군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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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음음 2019.10.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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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나서서 동참하진 않더라도, 여자들 어디 가서 제발 난 페미 아냐 이딴 소리 좀 하지마라. 페미니즘이 여권신장주의=양성평등주의인데 난 페미가 아냐? 흑인노예가 백인 주인님 앞에서 난 흑인 인권에는 관심 없다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모두가 거지같고 입 더러운 한남이랑 싸울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앞에서 다른 여자들 팔아가면서 아양 떨지는 말자. 한남들이 개소리할 때 대꾸하기 무섭고 걱정되고 자신 없으면 그냥 적당히 듣는 둥 마는 둥 닥치고 있어. 나도 그렇게 해. 그 극성 맞은 페미 메갈 워마드가 저 ㅈㄹ을 떨고 있기 때문에 남성 기득권층이 그나마 오늘 날의 시월드의 부당함과 비혼 비출산에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하는 거니까 제발 흑인이 "마틴 루터킹 극혐!"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나는 페미 아냐 페미 극혐 같은 개소리 좀 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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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대결 ㅇㅇ 2019.10.2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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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아이가 어른에게 당한 폭력이에요. 얼마전 남자아이가 양아버지에게 맞아서 죽은 사건 아시죠. 당연하게도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너무 마음아픈 글이지만 결론이 왜 여성들만의 연대로 이어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피해자는 성별과 무관히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하고 가해자는 성별과 무관히 처벌받아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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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2019.11.0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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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안녕하세요. 제가 원래 댓글 잘 안남기지만 오랜만에 로그인 해서 댓글 남깁니다. 저는 현재 고1이고, 글쓴이분과 비슷하게 5살 위로 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글쓴이분보다는 양호하지만 굉장히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부친이 있습니다. 제가 한참 머리가 커 갈 때 본 것은 인사를 안했다는 이유로, 웃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벅지가 부어오를 정도로 효자손으로 맞는 언니였습니다. 그 당시 언니는 고등학생이었고, 저는 초등학생 고학년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언니와 둘이 마주보고 앉아 얘기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없었기에 그 당시에는 인사를 안하고, 웃지 않는 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언니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지금의 저는 부친이 역겹고 역겨워 웃을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 당시의 언니에게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부친 앞에서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쓴이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5년을 먼저 방향을 알 수 없는 이 길을 걷고 5년은 훨씬 팔팔했을 부친에게 당하며 살았을 언니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공격의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는 언니가 어린 저에게는 왜 무시만 하는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이제서야 언니가 무슨 생각이었을지 이해가 되어 이제는 제가 언니의 편을 들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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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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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글 삭제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매일 매일 읽고 되새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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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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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저는 10살부터16살까지오빠한테 폭력을 당했습니다. "기억을 편리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간들만이 청렴결백을 주장하고, 그렇지 못한 피해자들은 보통 정신과에 간다." 오빠는 기억도못하고 대화하다자기가 화나서 때리는건 너가 잘못했고 부모님이 너를 교육안하니 내가 하는것이다,말로못알아들으면 때려야한다고 당당히 본인입으로 내뱉습니다.고작 4살많다는이유로. 젓가락질 못한다며 접시에 머리가 박힐 정도로 내리치며 시작된 폭력은 16살 칼들고 나 죽을거라며 목에 들이밀었을때 멈췄습니다. 물론 폭력이 완전히 없어지진않았습니다. 한창 맞을때 잘때는 안때린다는걸 깨닫고 부모님이 오실때까지 억지로 잠들어 하루에12시간을누워있었습니다. 문을 부실듯이 걷어차며 방에 들어오면 폭력의 시작이었기때문에 큰 소리만나면 심장이 가쁘게 뛰고 손이떨립니다. 제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날 잘못한게있나 생각합니다.라면물 잘못부었다는 이유로 맞아서 물계량에강박증이생겼고 집에들어올때면 오빠있는지부터확인합니다. 16살 이후로 싸울때마다 나는 니 오빤데 왜 가족 취급을 안 해주냐며 화를내는 꼴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아직도 되새김질하며 고통스럽게 지냅니다. 벗어나야함을 알지만 겨우 20살이 된 저는 그게 너무도 어렵고 버겁지만 잘 버티고 있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가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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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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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린 서로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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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2019.10.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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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는 서로에게 자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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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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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감동적이에요. 우리 서로의 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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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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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저는 이렇게 유난히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아도
여성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자매애를 알 것 같네요.

오늘 처음 본 사이여도 생리대 하나 툭 나눠주는 그런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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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인생 2019.10.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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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는 어쩜 이토록 처절한지... 한 줄 한 줄 눈물이 나네요. 우리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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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2019.10.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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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저도 글쓴이같은 집에서 자랐어요 다만 동생이 아니라 첫째딸이였어요 어렸을땐 진짜 말도 안되게 맞고 산것같아요 그런데 도망칠수없었던건 내가 없으면 그게 동생이나 엄마한테 갈게 뻔했거든요 그렇게 미친사람처럼 화내고 패고 때려부순다음엔 언제그랬냐는듯이 멀쩡한 사람인척 위해주는척하고...20대 중반이 되고 처음으로 죽을듯이 대들었어요 어디한번 죽여보라고 니새끼인생에 빨간줄 그어버리게 어서 죽이라고...그때 아버지 눈을보고 알았어요 아 이사람은 내가 대들지 못하는 약한존재라서 지금까지 이따구로 했던거구나 내가 아들이였으면 이러지도 못했겠구나하고요..저같은 삶을 살아온사람들을 볼때마다 너는 또다른 나다라는 말이 떠올라요 글쓴이랑 언니분이 무사히 탈가정하고 행복하게 살았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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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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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눈물이 저절로 흘렀어요 지금까지 무거운 짐을 버티고 살아오신 언니와 글쓴이님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우리는 거대하게 순환하는 단 하나의 자매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맺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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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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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보다가 못참고 뛰쳐나와 울었네요.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글이에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김지영정도의 삶이면 유복하다고 하고있고, 남자들은 허구라며 여성이 목소리 내는 것을 분노하는 현실이 참담합니다. 내가 눈감고 모르는 체 하면 아직 어린친구들, 제 자식들, 그리고 다음세대가 저와 같은 성차별에 피눈물 쏟겠죠.. 그러지않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쳐보고 싶어요. 여성들이 겪는 차별은 여자가 압니다. "남자도 힘들어" "여자가 뭐가힘들어 꿀빠는데" 이런 이야기하지마세요. 여자라서 받은 차별을 이야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당장 김지영이 받은 차별도 허구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한 차별들을 나열하는것은 의미가 없을듯합니다. 그리고 성차별, 여성혐오등을 끝내자는건 남성인권을 끌어내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흑인인권을 주장한다고 백인인권이 낮아지는게 아니고 장애인인권을 주장한다고 비장애인 인권이 낮아지는게 아닌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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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 2019.10.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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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 글에서 페미니즘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 페미니즘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단순히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여 여자가 가해자인 경우, 남자가 피해자인 경우 등을 내세워 자꾸만 성별을 떠나자는 것인지. 떠나길 어딜 떠나는지... 이 글에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언급하는건 여성의 연대가 글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오는 여성을 위해 먼저 앞서 걷겠다는 글쓴님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또한 함께, 혹은 앞이나 뒤에서 걸어가겠단 생각을 하는 것이 페미가 아니면 뭐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힘들 때면 종종 이 글을 떠올리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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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늄 2019.10.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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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여기 댓글 보면 가정폭력이나 아동폭력을 왜 여성폭력으로 몰아가느냐는 항변이 많은데,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남자들은 지들끼리 치고 받고 싸워도 절대 여자는 때리지 않는다는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아버지도 딸자식은 절대 손대지 않았지. 일단 체급이 다르지 않나? 그게 내가 60평생 살면서 내 집안에서 경험한 상식인데, 너무 슬프게도 내 주변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지. 중학교 때,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온 내 짝을 때린 게 오빠였고 부모는 거기에 대해 상관 하지 않았다는 말에 나까지 너무 서러워붙잡고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충격적이라 집에 와서 오빠에게 그 얘길 했더니 나보다 4살 많은 내 오빠가 뭐 그런 불상놈의 집안이 다 있냐고 화를 내더라. 난 그 때까지 모든 오빠들이 다 내 오빠 같은 줄 알았는데, 살면서 아버지나 오빠에게 맞고 자랐다는 얘기 너무 흔하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남자 사람들은 더 많다. 아무튼 이 할머니도 페미니즘 응원한다. 저들이 실제로 겪어온 남자들이 그렇게 폭력적인데 지는 아니라고 피해의식에 페미들 어쩌고 하는 것도 웃겨서. 남자들이 본인이 떳떳하면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아. 오히려 여성 인권에 더 관심을 갖고 공감하력는 노력을 하지. 그냥 가만 놔두면 되는 데 왜 죽자고 덤비니? 공격 당하는 남자들에게 동류의식 느껴서? 동지애니? 그냥 조용히 당신들의 어머니, 누이, 아내와 딸들의 인권을 위해 응원하고 지지하는 성숙한 의식을 가져주면 안될까? 그게 결과적으로 남성 당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 째째하게 여기서 아픈 여성들이랑 싸우려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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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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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읽고 싶어 댓글 남기고 가요. 지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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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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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아빠는 자식들을 때리진 않았음..대신 엄마를 죽일듯이 때렸지.. 왜냐하면 우리할아버지가 못난 부모였거든.. 울아빠는 못난부모는 되기 싫었던거야.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참 못난 사람이다... 일방적으로 폭행당한적은 없지만 애정도 없었고 잘못하면 때렸지만 그걸 가정교육이라 생각했겠지. 엄마 목에 칼 들이미는걸 본 자식들은 생각안하고.. 항상 본인만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했지... 남자들은 여자가 남자를 싫어하면 아빠도 싫냐고 하겠지만, 여자들 기억속에서 가장 첫번째로 나쁜 사람이 아빠임... 남자에 대한 환상은 아빠가 진작에 다 깨줬는데 어떻게 좋게 보겠어... 좋은사람도 많겠지. 내주변에선 못본게 문제지.. 남자들은 이걸 남여 문제로 볼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해야됨.. 가해자가 남자였던거지 남자가 가해자는 아닌데, 왜 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날세우는지 모르겠음.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성별은 중요한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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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4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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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소설쓰시는 분이신가?????필력이좋네요... 근데 엄마얘기는 하나도 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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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19.10.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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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소설쓰나 말투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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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ㅕ 2019.10.2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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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처음으로 판 글을 보고 댓글을 남깁니다. 나의 아버지도 모든 가족을 정신병에 몰아넣은 가정폭력범입니다. 동시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능력좋고 인성좋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깥에서는 사람 좋게 웃으며 동료들의 회식비를 결제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내에게 연장을 던지고 주먹질을 합니다. 방학숙제를 다 하지 못하면 체벌이라는 명목하에 엎드려 뻗쳐를 세 시간 동안 시키고 발길질을 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맞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억울하다고 합니다. 1년 365일 맞아야만 맞은 거라고 생각하는 족속이거든요. 가장의 폭력으로 어머니는 아직까지 병에 시달리고 있고 동생은 입원을 한 전적도 있으며 저는... 연을 끊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꿈에 아버지가 나와서 고통 받습니다. 글에 쓰신 것처럼 중년 남자가 큰 소리를 내면 심장이 요동치고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일도 잦습니다. 12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어머니에게 유리그릇을 던지는 아버지를 말리고 싶은데 나도 벌벌 떠는 중이라 차마 다른 건 할 수가 없어서 그릇이 깨지는 와중에 큰 소리로 아빠! 하고 외쳤어요 아버지는 너도 맞고 싶냐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지 그 행위를 멈추지는 않았죠 가정폭력이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식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꾸역꾸역 살아남았다는 느낌이 매순간 듭니다 30대의 건장한 남성 앞에서 12살의 여자아이였던 내가 당해야했던 일은 고통과 수치로 남아있어요 한때는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지 않았으니 얻은 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의 결핍을 자기합리화하려던 무의식적인 시도였다는 것을 알아요 이겨내고 누구도 공격하지 못 할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은 내가 아니라 그 인간이 해야하는데... 아프게 공감가는 이야기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글쓴 분께서 살아가는 길에 이런 기억들을 상쇄할만한 좋은 일들이 많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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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2019.10.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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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와....판에서읽은글중 최고필력!! 소설책한편읽은느낌이에요 진심. 쓰니 뭐하는분인지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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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0.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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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저는 첫째이고 막내와는 5살 차이입니다. 몇 시간을 엎드려뻗치게 하고 회초리로 막내를 때리던 아빠한테 달려들었던 것도 이 글의 언니처럼 13살 때였어요. 처음으로 아빠한테 달려들었던 기억이에요. 내 일도 아니고 막내한테 그러던거였는데도 견딜 수 없어서 덤볐다가 발로 복부를 차여서 크게 다쳤던 기억이 나요. 내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집에서는 언니의 역할이지만 항상 힘이 되는건 이렇게 먼저 언니의 삶을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예요. 이런 걸 보면서 나도 더 살 수 있고 더 괜찮아질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함께 힘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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