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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톡나쁜 것만 생각나서

띠부띠부씰 (판) 2019.12.05 10:20 조회13,183
톡톡 회사생활 개깊은빡침
퇴사를 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단 하루도 생각나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좋았던 기억들도 있고 고마웠던 점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포함해도 나빴던 기억을 이기지는 못하나보다.

20살때부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알바도 뛰어보고
졸업하고 1년은 전공살려 취업도 했는데 적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어 또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시 한번 배워보자, 이 악물고 버텨보자 결론지어 들어갔던 곳이 "000"이었다.

경력이 없고 졸업한지도 2-3년이 되니까 몇군대에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오질 않더라, 유일하게 전화가 왔던 곳.
간절하게 바랬고 배우고 싶었고 그 땐 이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했다.

1. 사무실
첫 출근 사무실은 지하, 다른 회사에 임시로 얹혀 지냈던 곳.
출근하고 한달 정도 그 사무실에 있다 어떠한 프로젝트 덕으로 골프 겸 헬스클럽장으로 옮겨졌다.
덕이라고 해야하나...처음엔 좋았다 골프장도 있고 커피머신기도 있고 크고 크고...
몇일은 좋다 생각하며 그 곳을 갔었는데 그냥 이름만 골프랑 헬스장이였던 거지, 사람 하나 없고 늙은 아저씨들 모여 담배피며 화투치더라. 가끔 그 골프장 주인한테 밀린 돈 월세 받으러 경비아저씨 들이닥치거나 빌린 돈 값으라며 건장한 아저씨가 찾아오거나..
그런 곳에 사장님은 나와 상사를 방치해뒀었다.
아니, 나를 방치하고 나몰라라 한건지도.

그 곳에서 한달, 두달은 상사랑 같이 있었다.
상사의 프로젝트 준비와 출장으로 그 사무실에 남겨진 건 나 혼자였다.
빛 하나 안들어오는 지하 골프장에 출근하면 더듬거리며 스위치 찾아 온 사방으로 불키고 다니기.
그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었다.
진짜 무섭더라 아직생각해도 그 지하는 정말 무서웠다.
여튼 나 그러고 있는 동안 사장은 찾아와 보지도 않고 전화 한통 없었다.
너무 무서울 땐 근처 커피집에서 일하기도 했고.
돌아와서 상사가 한다는 말이 "너는 무서우면 말을 하던가 해야지" 뭐...연락이 닿아야 이야길 하던가 하지.
그리고 일때문에 출장 간 사람한테 무서워서 사무실을 못가겠어요 라는 말을 나는 못하겠더라 애처럼 보이기도 너무 싫어서.
뭐 쨌든 봄부터 가을 막바지까지 그 곳에 있다 회사공장으로 옮겨졌다.

용인과 광주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던 공장, 컨테이너 사무실
차로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엔 집에서 10분 거리, 다음 사무실에선 지하철과 도보로 30-40분, 점점 출근 시간이 길어지는데도 좋다고 거기까지 다니겠다 한 내가 한심스럽다.
공장은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갈 수가 없더라 뭐가 그냥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 4월 까지는 상사 차로 출 퇴근을 했었는데
나는 급한일로 빨리 가봐야 할때 상사는 남아 있는 일이 있으니까 집에 가잔 소리도 못하고 그 일을 끝낼 때 까지 늘 기다렸다.
9시 출근이다 성남까지 너무 차가 밀려 8시 출근으로도 바뀌더라.
퇴근은 5시지만 그것도 사장 눈치보며 상사랑 퇴근하거나 꼭 그 시간에 맞춰 들어와서 밥먹자고 사장은 그러더라.
근데 상사는 늘 밥먹자는 사장말에 고기먹을까 치킨먹을까 뭐 먹을까, 먹고 출발해도 지금 출발해서 도착하는거랑 같다고 겁나 좋아했다.

떠돌이 사무실 생활로만 언 1년을 보냈다.
참고 견디면 뭐라도 있을 줄 알았지..이게 존재하는 회사가 맞긴 한가 싶으면서도 붙어 있었다. 그렇게 되더라

2. 급여와 복지, 기타이야기
첫 직장에서도 세금포함 180 실수령액 160정도. 밥값은 따로
퇴사할 땐 사장님의 배려로 실업급여 받으며 3개월 보냈다.
알바할때도 4대보험 가입은 필수로 해주었고.
경력도 단절, 아니 없다고 봐야하니까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돈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병신같은 생각을 입밖으로 면접때 꺼냈었다.
세금 다 떼고 150 준다고 했다. 4대보험은 전액 부담한다 말했고.
1년 반을 150 받고 일했다. 후엔 160주더라
월급날이 1일인데 늘 3-4일은 기본으로 늦게 주었다.
나같은 월급쟁이 그리고 제일 막내들은 하루 늦어지는게 얼마나 큰지 피가 말려 죽는 줄 알았다.
상사한테 한번 이야기 해봤는데 꼬박꼬박 돈 잘주는 사장님한테 감사하게 생각한다 말해서 그이야긴 걸렀다.
4대 보험도 들어준다고 약속했다. 근데 2년동안 퇴사할때까지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끝.
지금 생각해도 나는 이 회사에 병신같이 집착했다. 4대보험 그까짓거라 생각하는 사장밑에서 또 늘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기다린 나도.
퇴사할 땐 뭐 퇴직금 400준다해서 걍 더 있기도 싫어 알겠다 했다 근데 퇴직금도 두달 나눠서 줬다. 내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열받아 전화하니까 돈 보내주더라.

주 5일에서 사장의 심경변화로 격주 토요일까지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됬는데 상사는 뭐든 사장말에 오케이였다.
상사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였다. 시간이 늘 많았는지 내 의사따윈 존중하지 않고 뭐든 행했다. 반박하려 하면 사장님 말씀이니까~ 회사 사정상~ 점심먹고 퇴근하면 좋지~ 그러더라.
이런 뭣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나는 정말 토요일에 점심만 먹고 퇴근할 수 있다는 큰 착각을 했다.

빨간 날 따위 이 회사에선 중요하진 않았다.
남들 다 쉬는날인데 아니 달력은 그렇게 잘 보면서 빨간날이였다는걸 몰랐다 말한다. 첫 해엔 아.. 저도 몰라서 출근햇네요 하니 진작 말하지 그랬나 하더라. 보내줄거라 생각했는데 일했다.

뭐든 퇴근 전 아니면 당일날 통보를 해주었다. 장거리 출장을 시작하여 급한 업무까지도.
이런 일 때문에 친구들이랑 약속을 못잡게 되더라

출근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상사와 같이 다니면서 여러 말들을 했었다.
본인은 이 일을 하기전에 다른 꿈이 있었다 말하길래
저는 어떤일을 하고 싶었고 이런변화로 다른 일도 생각해보았다가, 어릴적 꿈부터 지금 뭐 요리가 배우고 싶다 라는 것부터 술술 말했었다.
상사는 본인 이야기를 하고 나에게 질문을 하길래 나또한 과거엔 이걸 배우고 싶었고 앞으로는 뭐도 배우고 싶다 라고 답했던건데 사장한테는 내가 이길과는 아닌것 같다, 다른걸 배우고 싶어한다 라며 말을 주고받았다 말하더라.
저 이야기를 하고 난 일주일 후인가 상사가 조심스레 다른일을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며 저번에 말했던 꿈들을 하고싶은거라면 그길을 가라고.
집에가선 엄마앞에서 엉엉 울었다.
너무 답답해서, 어릴적 꿈이야기를 하다 퇴사권유를 받았다는게 어이도 없었고 이때 결심한게 저 상사 밑에 내가 이갈고 버틴다 였다.

출퇴근 왕복 3시간, 차 밀릴땐 왕복 4시간 넘게도 걸렸고 매일 상사 차를 타기도 너무 불편해서 결국 부모님의 허락으로 차를 샀다.
차를 사면 출퇴근도 그렇지만 업무적으로 나에게 플러스가 될거라 좋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내 차는 사자마자 짐차로 변했다.
시간지나 장거리 출장도 자연스레 내 차로 움직이게 되고 나의 엄무는 제자리, 그저 차있어서 편한 직원이고 차로 심부름 다니기 좋은 직원일 뿐이였다.
1년 동안 6만키로 탔으면 뭐 말다한거겠지.

동생이랑 자취를 해서 자주 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는 장마였다.
퇴근하고 집에와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려니까 전화가 오더라
자료 좀 보내달라고. 그땐 노트북도 없고 집근처 피시방으로 미친듯 달려가 보내줬다. 비가 미친듯 오는데 자료는 보내야 하니까 정신없이 다녀오니까 옷이며 머리며 다 젖어있더라.
한시간 지났나? 다시 연락와선 자기 컴퓨터에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고 다시 보내달라더라ㅋㅋㅋㅋ
씻고 누워있다가 또 냅다 달려서 보내주고 돌아왔다.
10시가 넘었는데 비오는날 딸이 홀딱 젖어서 돌아다니니까 속상했는지 엄마가 울더라.
그러고는 다음날 노트북 사러갔다. 눈뜨자마자 엄마가 옷입으라더니 빗속을 뚫고 둘이 손잡고 사왔다.

다 싫었는데 유독 저 노트북때 기억이 가장 싫다.
엄마가 울었던것, 그리고는 그 다음날 나를 데리고 사러갔을때, 다는 모르지만 조금은 엄마 마음이 어떨지는 알 것 같아서
그래서 저 기억과 그때의 상사와 회사가 가장 싫은것 같다.

상사는 나랑 12살 차이였는데 여자라 늘 젊어보이고 싶은건지 많이 노력하더라.
얼굴은 젊은데 귀와 생각은 젊지 않다는걸 어느 순간 깨달았는데
내말을 잘 못이해할 때가 많았다.
그냥 자기 세상이 큰 사람, 뭐든 자기식대로 이해하길래 설명하다 나중엔 그냥 말았다. 나쁘게 생각하든 좋게 생각하든 이해시키고 싶지 않더라.
고집 쎈 사람한테 백날 말해도 본인이 느끼지 않으면 모르더라고.

생각나는게 지금 이것뿐인데 뭐가 많다. 한번은 알리고 싶었다.
그냥 끄적이고 싶고.
물론 내가 어딜 가서 이런 경험을 하겠나 싶었던 적도 있다.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주기도 했고 그사람들 나름에 방식으로 잘 챙겨주었다는것도..
본인들은 나보다 인생의 선배이고 어른이고 갑을 관계라 할말 다 하고 지나갔겠지만 나는 2년이란 시간속에서 단 한번도 싫은소리 말하지 못하며 지냈다. 이게 사람을 병들게 하더라.
그래서 좋은 기억보단 나쁜기억들이 더 크게 자리 잡아있다.
회사 마지막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우울증까지 진단받고 약을 먹었다.

월급 150, 모으고 모아도 2년동안 뭐가 없더라.
부모님이 좀 도와줘도 쉽지 않고 고생 끝에 그냥 없어서 빚까지 내고 도망치듯 한국 떠났는데 좋은 풍경들을 보면서도 나는 그 싫은 기억들이 하루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내가 다시 돌아가 사회생활을 시작 할 수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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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천사 2019.12.0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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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고생했어요. 잘 견뎌 줘서 고마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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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9.12.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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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2년동안 고생했어요. 고생한 만큼 앞으로는 더 좋은일만 생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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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ㅂㄹ 2019.12.0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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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나도 전직장에서 겪은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퇴사하고 반년 지난 시점에서도 굉장히 힘든데..... 꼭 이렇게까지 상처받고 그만두는게 맞는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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