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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커들의 선택홍콩처럼 될 뻔한 한국의 섬

ㅇㅇ (판) 2019.12.06 09:32 조회66,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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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웰컴투 거문도


1. 영국군은 대민 물의를 최소화하라는 지휘관의 명령으로 주민들 거주 구역엔 얼씬거리지 않았다


2. 특히 여자들과의 충돌이 있을까봐 빨래터 근처를 지날 때는 여자들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다고 한다


3. 진지보수나 포대 설치 작업시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거문도 주민들을 고용하여 작업에 동원했는데, 영국군은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고 식사를 제공하며 다치거나 아픈 사람은 군의관이 치료를 해주었다


4. 영국 화폐는 조선인들에게 쓸모가 없어서 통조림이나 술 등의 물건으로 지불하였다


5. 당시 조선은 관의 착취 등으로 민초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일은 일대로 혹되게 시키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조선의 관리들과는 달리

갑자기 등장한 유럽인들은 일을 시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 주니 주민들은 오히려 섬을 점거한 영국 해군을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그래서 2년 후 철군할 당시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했다고.


6. 야사에 따르면, 거문도에 살던 젊은 무당에게 반한 한 수병이 몰래 수영을 해서 만나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없었다는 것이 연구 결과이나 이런 야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영국군과 거문도의 백성들이 친밀했다는 이야기의 반영이라는 평가가 많다.


7. 한번은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날에 축포를 쏘기로 했는데, 주민들에게 함포 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미리 당부를 해두었다.

주민들은 대포가 터지는 것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문제는 개들이 포 소리에 놀라 산으로 도망갔고, 해군은 병사들을 풀어 수색에 나섰다.


8. 조선 최초로 전기를 들인 것은 공식적으론 1887년의 경복궁이지만 실제로는 1885년의 거문도이다.

그 밖에도 거문도에는 조선 최초로 축구, 당구, 테니스 등을 했다거나, 통조림을 먹었다거나 하는 일화들이 있다.


9. 1960년대에 들어서 당시 거문도의 주민이었던 노인들에게 영국군의 지배가 어땠는지를 묻는 설문 조사가 있었는데, 노인들은 영국 해군들에게 배운 영어와 노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10. 거문도에는 당시 질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 병사들의 묘지가 있는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왕이 방한 당시 거문도를 방문하여 묘소 참배를 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일정 상 들리지 못하였다.


11. 120여년이 지난 후 관리가 허술하던 영국군들의 묘지를 거문도 주민들이 수년째 자비를 들여 관리해오고 있다는 걸 알게된 주한 영국대사관은 감사의 표시로 논의 끝에 2005년부터 거문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12. 거문도 주민 윤덕춘 (尹德春.62) 씨는 "영국군들이 섬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깍듯하고 일을 시킨 후엔 노임을 후하게 줘 조선 조정의 철수 요구에 주민들이 항의했을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전해 들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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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ㅇㅇ 2019.12.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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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밑댓에 신사적인 개화라고 하지만 나중에 어케 될지는 모르는거임. 운이좋아 당시 영국군 장교로 있던 사람이 존경스러운거고 상식이 박힌 좋은 사람이라 그런거지, 영국이 인도에 한짓보면 또 모르는 일임. 물론 찐따처럼 개화 안하고 박혀있는건 조카 한심하긴한데 이 글로 영국 찬양하거나 뭐 그럼 글 안올라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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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ㅅㄹ 2019.1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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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거문도에서 군복무를 해봤는데 영국에서 1년에 한번 영국군묘지로 방문함. 2~3성 장군이 방문을 하는데 이것 때문이라도 우리나라랑 너무 비교가 되고 씁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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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 ㅎㅎ 2019.12.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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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런식으로 신사적인 개화가 시작되었다면 좋았을것을.. 조선정부의 썩어빠진 정치질에 썩고 썩어서 조선왕조 지들만 살겠다고 쇄국이니 뭐니 해대다가 결국 졸개 양아치 찐따 음흉국 이중인격 싸이코패스같은 일본에 강제로 개화당하고 일제시대라는 흉칙스러운 시대를 겪고 기형적인 개화로 남 북 갈라져서 친일파라는 잔재가 남음.. 남아있는 친일파가 대한민국 기득권층이 되어 일본의 사과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그 시대에 피흘린 청춘과 애국지사들이 빨갱이니 반열분자니 조롱당하는 나라..영국이나 미국에 의해 발빠르게 개화했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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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 2019.12.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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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리고 사실 영국이 한국으로 오지않았던건. 역시나 혹시나 지만 일본때문이었음. 일본에 먼저가서 무역했는데 조선이나 쪽국이나 짚신신고 나막신 신던시절이라 총 대포 주는데 환장을함. 은을 대신받았거든. 조선인삼이 좋다해서 조선갈란다 하니까.. 홍차쳐먹느라 인삼차를 먹고싶었던건지 ㅎㅎ 무튼 쪽국놈들이 가만 머무르면 사다준다고 눌러앉힘. 조선가면 거래끊고 은 안준다고 멱살쥠. 뭐 무기를 독점하고 싶었던거지. 그렇게 조선반도는 차단되서 교류든 개화든 쇄국이든 다늦어진거임. 방파제라서 커버링이 넓었음. 그래서 막힌거.. 태풍 막는거 외 크게 도움 안되고 해가 큰 열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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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 2019.12.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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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중국에 아편팔아 멍들게 한게 영국이다. 영국은 홍차를 쳐먹는데 그걸 인도에서 삥뜯고 은을 줬는데 그러다가 중국 일본으로 넘어온거지. 홍차는 쳐먹고 배설하지만 은은 광산 폐광되면 없어지는 자원임. 그래서 아편을 준거임. 아편전쟁으로 나라망할뻔한게 중국이고 마약연루되면 짤없이 사형하는게 그 이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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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2019.12.09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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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조선 후기 왕족들 양반들도 진짜 쓰레기 들... 일본 영국 제국주의 열강들 못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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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코짱 2019.12.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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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무능한 조선정부,, 임진왜란때 망하고 다른 왕조가 세워져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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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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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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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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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신사적으로 행동했다고 긍정적으로 볼게 아니라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곳의 실상을 더 알게되면 신사고 나발이고 없을걸요? 영국도 거문도라는 낯선곳╋ 적대감을 심어주면 안되는 것과 당시의 지휘관(장군)이 현명하게 행동했을 거라는 것이죠. 제국주의╋민족주의╋식민사관에서 신사적이었던 나라는 아마 없었을 것이에요. 당시에는 서양열강들이 땅따먹기 하던 20세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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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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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유명한 바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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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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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무척 씁쓸한 일. 당시 조선 정부와 기득권층이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 알 수 있음.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대한독립을 외쳐도 조선 왕실을 지지하던 이들은 별로 없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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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12.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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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영국을 찬양하자는게 아니라 이왕이면 일본보단 미국이나 영국에 의한 개화가 되었으면 좋았을것을 얘기하는거에요, 일제시대에 일본이 자본에 대한 수탈만 있었으면 몰라도 인적자본 그리고 그 시대에 인간에 대한 상식밖의 고문들과 살육행위들은 간과할 수가 없는 문제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정조시대에 정조에 의해서 서서히 개화가 진행되었다면 일본보다 한박자 앞서서 동아시아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견해 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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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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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당시 조선의 쇄국 정책을 두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역사를 조금 더 큰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쇄국 정책은 결코 틀린 정책은 아니었음 서양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에 비하면 조선의 수공업 제품들은 질적인 면에서나 가격적인 면에서나 상대가 안되었고 이 상황에서 개화를 하게 된다면 조선 경제가 파탄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음 게다가 조선이 최초로 외국과 맺은 강화도 조약을 살펴보면 관세에 관한 조항은 아예 있지도 않음 정부조차 외국과의 교역에 대해 이렇게 무지한데 외국 자본 들어오는 순간 끝나는거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술과 무기만 쏙 주는 신사적인 개화는 없음 당시의 쇄국정책이 무조건적으로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의 개화는 쇄국정책보다 최악임 쇄국정책 하는 동안 개화에 대한 준비라도 잘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나라에 빨대 꼽으려는 나라가 한둘이 아님╋정부의 답답한 정책 추진 때문에 그 준비 또한 제대로 안된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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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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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러나 거문도를 군사적으로 블법 점령한 이유는 러시아와 조선이 가까워지자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였음ㅇㅇ 즉, 열강패권다툼의 일환일뿐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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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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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밑댓에 신사적인 개화라고 하지만 나중에 어케 될지는 모르는거임. 운이좋아 당시 영국군 장교로 있던 사람이 존경스러운거고 상식이 박힌 좋은 사람이라 그런거지, 영국이 인도에 한짓보면 또 모르는 일임. 물론 찐따처럼 개화 안하고 박혀있는건 조카 한심하긴한데 이 글로 영국 찬양하거나 뭐 그럼 글 안올라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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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ㄹ 2019.1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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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거문도에서 군복무를 해봤는데 영국에서 1년에 한번 영국군묘지로 방문함. 2~3성 장군이 방문을 하는데 이것 때문이라도 우리나라랑 너무 비교가 되고 씁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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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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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1885 거문도 점령, 유길준 중립론은 아는데 나도 거문도 어딨는지 모르겠음ㅋㅋㅋㅋ 한국사 시간에도 위치는 안 알려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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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12.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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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남긴 댓글 이런식으로 신사적인 개화가 시작되었다면 좋았을것을.. 조선정부의 썩어빠진 정치질에 썩고 썩어서 조선왕조 지들만 살겠다고 쇄국이니 뭐니 해대다가 결국 졸개 양아치 찐따 음흉국 이중인격 싸이코패스같은 일본에 강제로 개화당하고 일제시대라는 흉칙스러운 시대를 겪고 기형적인 개화로 남 북 갈라져서 친일파라는 잔재가 남음.. 남아있는 친일파가 대한민국 기득권층이 되어 일본의 사과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그 시대에 피흘린 청춘과 애국지사들이 빨갱이니 반열분자니 조롱당하는 나라..영국이나 미국에 의해 발빠르게 개화했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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