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궁금한게 옛날엔 애를 어떻게 육아했을까요?

(판) 2020.11.16 12:15 조회9,603
톡톡 결혼/시집/친정 댓글부탁해
병원서 애낳고 다 수발들어주고 산후조리원 2주3주 다녀와 몇달동안 내내 누워있기만해도 산후우울증에 죽고싶고 힘든게 애낳고 키우는것인데...
옛날엔 그랬담서요?
아들낳으면 상으로 미역국한사발 삼일쉬게해주고
딸 낳으면 쓸모없는거 낳았다고 볏짚 넣어주며 처먹어라하고
당장 나와 집안일 밭일 하라고하고...
죄송하다 고개도못들고 일하고...
그랬다는데...
아니 그게 가능한가요? 진짜 그렇게들 살수가있나?
애키우는것만해도 울고싶고 해서 세식구사는 집안일 다들 못하는데 층층시하 대식구 밥하고 밭일하고 밤에는 식구들 옷 빨고 꼬매고...세탁기도 없이....
이렇게 사람이 생존 정말 가능했을까요?
5
45

모바일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태그
23개의 댓글

베스트 댓글

베플 ㅇㅇ 2020.11.16 15:05
추천
61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예전에도 삼칠일이라고 21일간 집앞에 새끼줄 꼬아서 사람 왕래 금지 시켰어요 산모도 당연히 집에서 쉬고 노비들도 애낳으면 지금의 육아휴직처럼 쉬는제도도 있었구요 애낳고 바로일했다는건 진짜 거지처럼 사는 사람들이야기고 대부분 그정도로 사는분들 드물었구요
답글 0 답글쓰기
베플 ㅇㅇ 2020.11.16 12:35
추천
30
반대
1
신고 (새창으로 이동)
그러니까 할머니들 골병 들고 허리도 안펴지고 그렇죠. 옛날 60대와 지금 60대를 비교해보면 보이지 않나요?
답글 0 답글쓰기
베플 ㅡㅡ 2020.11.16 13:11
추천
21
반대
1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때는 조부모가 양육 했습니다 김홍도 그림이었던가 그림에도 나와요 그런데 그 조부모가 외조부일 가능성이 높았음 위에서 아무리 지랄을 해도 못버리던게 풍습인데 우린 원래 처가살이 였음 장가간다고 하잖음 임진왜란 이후에도 못버린 풍습이고 후반때즘에야 바뀐 풍습임 며느리 구박하면 그때도 욕먹었음 자식 특히 아들 낳는건 의무나 다름없던 시대니 구박은 있었겠지만 그리고 그때도 산모는 안건드림 산후조리 하는 사람 건들지도 않고 6~70년대야 먹고 사는것도 힘들때니깐 지금 같은 산후조리가 힘들던 시절이니 골병들었던거지 할머니 시대땐 전쟁 끝난 직후인데 먹을게 어딨어 쌀도 없는데 뭔 미역국 부자 아니면 먹을 음식이 없어서 주한미군 음식쓰레기통 뒤지던 때임 박정희때나 되야 성장했는데
답글 0 답글쓰기
댓글 입력 영역
댓글쓰기
댓글운영정책

일반 댓글

ㅇㅇ 2021.03.01 22:11
추천
0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옛날엔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들 많이 봤죠? 근데 허리 꼬부라진 할아버지는
못 봤을거에요 그게 산후조리 못하고 먹고 살려고 노력한 댓가입니다
그것뿐이 아니에요 무거운거 이고 지고 다니느라 손 발 관절염에
자궁탈장까지 차마 자식에게도 말 못하고 숨기면서 사셨던 분들 많아요

제가 70년대 태어났는데 저희 엄마도 시가 구박에 병원한번 못가고
시골집에서 애 낳았어요 낳고 며칠 조리하고 분유 한통 살 돈을 안줘서
일하러 다니셨다고 합니다 아침에 애 젖 먹이고 분유 먹여서 눕혀놓고
나가서 점심때 들어와 먹이고 나가시고 그랬답니다
딸들 낳았다고 그렇게 구박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러다 아빠따라서 도시로 나가 살면서 바로 남동생 가지고 그때부턴
병원도 다니고 그러셨어요 근데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셔서
저랑 6살 터울 남동생 낳고 산후조리 제대로 받고 몸 좋아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유치원 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아빠가 앞치마하고 집안일 하고 계셨고
음식도 하시고 일하는 분도 들여서 집안 살림도 보게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선지 다행히 지금 70 중반이신데 산후통으로 인한 고생은 없으신거 같아요
근데 저 어릴적 봤던 할머니들은 정말 많은 분들이 허리 굽어서
땅만 보고 다니던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 노인분들은 그런 분이 드물잖아요
그렇게 산후조리가 중요한 거랍니다
그리고 저희 엄마때만해도 제대로 된 산후조리도 없었기도 했고
시집살이가 말도 못하게 심해서 그걸로 투정도 부릴 정신도 없으셨을 때였죠
저희 그렇게 먹이고 눕혀두고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며 가며
울때마다 들여다보고 그랬다고는 하더라고요

저 어릴때 생각해보면 그 7,80년대때도 이웃간 정이 있어서
서로 옆집 들여다봐주고 애 돌봐주고 남의 집 애 길거리에서 돌아다녀도
신경써주고 어디 골목 어느집 애인지 다 알던 시절이었어요
그땐 애 낳으면 온 동네가 도와주고 같이 키웠죠 하다못해 먹을거도 나눠주고
혼자 심심할까봐 찾아가 얘기도 하고...
지금은 애 키우기 더 힘든 시대에요 오직 엄마 혼자 키워야 하고
단절된 공간에서 얘기할 사람도 없이 애만 봐야 하고 거기다 요구되는것도
많잖아요 옛날처럼 그냥 막 키우지 않잖아요
애 옷 입는거며 먹는거며 다 주변 사람이 알려주는거 아니고 검색하고
공부해서 키우는거죠 요즘 방식에 맞게 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또 얼마나 노력합니까
요즘 엄마들이 애 키우기 더 힘들어요
그래서 더 산후조리 철저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1.03.01 21:36
추천
0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그러니 출산하면서 또 그 이후 많이 죽었죠 평균 수명도 훨씬 짧았고 어찌저찌 살아남은 사람들 후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지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산모가 죽거나 애들 한두명 죽는 거 흔했어요 그래서 많이 낳았던 것도 있어요
답글 0 답글쓰기
아이 2021.03.01 17:34
추천
0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 할머니는 요즘 엄마들 힘들겠다고 그래요. 혼자 애보면 얼마나 힘들겠냐고요. 옛날엔 좀 살던집은 집안일하는 입주도우미 같은 아이들을 몇명 두었고(가난한 집에서 식모살이 보내거나 고아인 아이들) 잘살지 않는 집도 친척들 이웃들도 오며가며 들여다보고 대가족이니 집에 잠깐씩 애 봐줄 사람은 넘쳤대요. 제가 애낳고 수유중에도 밥 제대로 못먹고 화장실도 애기안고 가서 봤다고 하니까 엄청 안쓰러워하심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ㅇ 2020.11.17 09:28
추천
1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옛날엔 다같이 살았잖아요. 울남편도 증조할머니까지 4대가 같이살았는데 증조할머니가 수유할때 빼고는 잘때고뭐고 끼고살았데요. 지금은 핵가족이다보니까 집에서 같이 육아해줄사람이없고요. 저어렸을때만해도 동네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애기도봐주고 그랬어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7 08:50
추천
2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그래서 수명이 많이 짧았죠 예전엔 60 환갑만 되도 오래살았다고 잔치했잖아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7 05:18
추천
4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건 막되먹은 집들 얘기 아닌가요 지금도 무슨 산후조리원을 가냐 운운하는 사람들 있는거보면 너무 일반화한것같아요ㅎㅎ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7 05:11
추천
5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요즘이야 애 수면,수유텀이니 애착형성이니 정성 절절하지 부모님 시절만 해도 방치육아였다던데요. 애 줄 묶어두고 일하고 오고...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7 05:01
추천
0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우리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당시 군인이라 집에 1년에 세네번오시고(전쟁끝나고) 큰집에 할머니혼자 온갖 시댁살이의 서러움을 참고사심. 할머니가 키도작고 여리여리해서 만만해보여서 엄청 부려먹었다함. 첫째삼촌 낳을당시 같은해에 할아버지 형님이 큰집에서 아들을 봤는데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한해에 한지붕에서 애 두명낳으면 안됀다나뭐라나 말도안돼는 이유로 헛간 짚더미에 이불깔고 동네 산파? 인가 한분 불러서 혼자 큰삼촌 낳았다 하심. 그얘기하면서 할머니가 우셨었음. 지금은 안계시지만 젊을때 너무 고생하셔서 허리가 진짜 곱추처럼 굽어있어서 똑바로 누워 잘수없어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새우잠 자셨었음. 할머니 보고싶다..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7 03:09
추천
0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냥 노비였죠 흑인들고 노예 시절 겪었어도 살아남아 대를 이은 것 처럼요
답글 0 답글쓰기
2020.11.16 23:45
추천
8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옛날엔 온가족 다 모여살고 애를 많이 낳으니 서로서로 되는 사람에 애를 보육만 한거죠. 그도 안되는 케이스면 애 방에 혼자 두고 울든지말든지 일하고 때되면 밥먹이고 오줌똥 치워주고요. 지금처럼 책읽어주고 하루종일 놀아주고 삼시세끼 아이영양식 차려주고 하진 않았어요. 35년생 울 할머니께서 저보고 애 참 힘들게 키운다고 머라하시더라고요.ㅋ
답글 0 답글쓰기
니나 2020.11.16 22:48
추천
4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제 친정 부모님때만 해도 가정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밭매러가야되서 안방에 눕혀놓고 갔대요.라디오 틀어놓구요.울던말던 점심에 밥가지러 올때 젖 한번 주고 밭매고 그렇게 키웠대요.저는 80년대생인데 친정엄마가 100일동안은 그냥 누워만 계셨다하니 케바케같긴 하지만 그옛날 조리를 그모양으로 했으니 허리가 굽고 비만오면 몸져 눕는거에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6 22:45
추천
3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제 친정엄마가 70대신데 저희 가졋을때 시골시가에서 생활하셨어요 아빠는 도시에 있고..
쉬는 시간 없이 임부 몸으로도 일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담배밭에서 담뱃잎 따고 하루 세끼 다 챙기고 어린 시누 도련님들 도시락 몇개씩 챙기고.. 제 할머니이자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생선 장사하는데 따라가서 일하고
그렇게 쉬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다 애 낳는 날에도
진통오는 배 붙잡고 저녁 상까지 다 차리고 방에 들어가서 애 낳았답니다
병원도 안 가서 쌍둥이 가진지도 몰랐데요
암튼 동네 사람들 모여서 애 받아주고 그랬고 하룬가 쉬었답니다
아빠가 돈 벌어서 시가에 보내면 엄마를 줘야 하는데 안줘서 따로 돈 벌어
분유 사야해서 쉬지않고 일했데요
당시 아침에 젖 먹이고 분유 타서 먹인 후에 방에 누여놓고 나와서
일하러 갔다 점심쯤 와서 젖 먹이고 했답니다 애 울면 동네 사람들이 와서 봐주고요
그러다 구박이 심해 아빠한테 편지로 같이 살자 해서 도시로 나와 살면서
동생낳았고요 그렇게 힘들게 사셨대요
답글 0 답글쓰기
삭제된 댓글입니다.
답글 2 답글쓰기
그르게 2020.11.16 21:21
추천
8
반대
1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집안마다 다르지 않겠어요? 울 엄마의 엄마 제 외할머니는 실어머니가(울 엄마의 할머니) 한 달동안 꼼짝도 못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나가고 싶어서 미칠 뻔 했다더라고 하던데 물도 묻히지 말고 산후조리 몇 달은 했다고 들었음 누구나 다 밭일 하지는 않았을 거고 애기들은 집안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봐줬죠
답글 0 답글쓰기
냥냥펀치 2020.11.16 17:57
추천
13
반대
1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옛날에 애를 많이낳은만큼 빨리 많이 죽었었어요 영아사망률 장난아니였음
답글 2 답글쓰기
ㅇㅇ 2020.11.16 15:05
추천
61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예전에도 삼칠일이라고 21일간 집앞에 새끼줄 꼬아서 사람 왕래 금지 시켰어요 산모도 당연히 집에서 쉬고 노비들도 애낳으면 지금의 육아휴직처럼 쉬는제도도 있었구요 애낳고 바로일했다는건 진짜 거지처럼 사는 사람들이야기고 대부분 그정도로 사는분들 드물었구요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6 15:02
추천
1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그시절 겪으신 어머니들 나이드셔서 여기저기 몸이 많이 성한곳 없어 관절꺾이고 허리 꺾이고 그런분들많아요
답글 0 답글쓰기
ㅋㅎㅎ 2020.11.16 14:17
추천
8
반대
0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믿어지지않겠지만 불과 50년전만 해도 집안에서 며느리는 종년같은 존재로 부리는 집이 수두룩 했죠. 우리 할머님들 어머님들 살아온 이야기 들으면 조선시대 종살이 못지 않아요. 이러니 요새 여자들 살기 좋아졌다 소리 나오는 거구요. 요즘 여자들도 여전히 힘든거 많고 애낳고 맞벌이까지 하면 난이도 헬이지만 솔직히 예전 어머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어요.
답글 0 답글쓰기
ㅡㅡ 2020.11.16 13:11
추천
21
반대
1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때는 조부모가 양육 했습니다 김홍도 그림이었던가 그림에도 나와요 그런데 그 조부모가 외조부일 가능성이 높았음 위에서 아무리 지랄을 해도 못버리던게 풍습인데 우린 원래 처가살이 였음 장가간다고 하잖음 임진왜란 이후에도 못버린 풍습이고 후반때즘에야 바뀐 풍습임 며느리 구박하면 그때도 욕먹었음 자식 특히 아들 낳는건 의무나 다름없던 시대니 구박은 있었겠지만 그리고 그때도 산모는 안건드림 산후조리 하는 사람 건들지도 않고 6~70년대야 먹고 사는것도 힘들때니깐 지금 같은 산후조리가 힘들던 시절이니 골병들었던거지 할머니 시대땐 전쟁 끝난 직후인데 먹을게 어딨어 쌀도 없는데 뭔 미역국 부자 아니면 먹을 음식이 없어서 주한미군 음식쓰레기통 뒤지던 때임 박정희때나 되야 성장했는데
답글 0 답글쓰기
ㅇㅇ 2020.11.16 13:10
추천
0
반대
11
신고 (새창으로 이동)
모바일로 남긴 댓글 조선시대때 노비들은 낳자마자 바로 일 투입됐다던데.... 눈물나고 뼈를 깎는 고통이었겠죠...? ㅠㅠ
답글 4 답글쓰기
1 2

책갈피 추가

이 게시글을 책갈피 합니다.
내가 쓴 글 보기에서 그룹관리가 가능합니다.

닫기